히어로를 꿈꾼 점퍼스, 제명으로 막을 내리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지난 6월, 프로농구단 고양 데이원 점퍼스가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최초로 제명됐다. 점퍼스는 창단 당시 “모기업의 지원 없이 구단을 운영하겠다”라고 선언해 ‘농구판 키움 히어로즈’로 주목받았지만, 히어로즈와 달리 재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강제 해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이 때문에 데이원 점퍼스는 창단 직후부터 제명된 지금까지도 히어로즈와 비교되고 있다. 두 팀의 운명을 가른 요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창단 초기, 비슷한 처지의 두 팀

KBL 2021~2022시즌이 끝난 이후 고양 오리온스를 고용 승계해 창단한 데이원 점퍼스는 리그 가입부터 순탄치 않았다. 모기업 지원 없는 구단 운영 계획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KBL 참가가 보류된 것이다. 결국 점퍼스의 실질적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유사시 구단 운영자금을 지원한다는 공문을 KBL에 제출해 가입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국내 프로농구단 운영에는 한 해 60억~8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점퍼스는 입장 수익과 네이밍 스폰서 수익, 스포츠토토 배당금 및 구단 굿즈 등의 상품 판매 수익을 주 수입원으로 삼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점퍼스의 전신인 오리온스는 2018-2019시즌 기준 총 10개 팀 중 관중 수 8위(63,663명)를 기록하는 등 관중 동원력이 약한 편에 속했다. 2021~2022 KBL의 객단가가 8,338원임을 고려하면 점퍼스가 주 수입원으로 기대한 입장 수익은 연간 8억 원 내외로 예상됐다. 연 30억 수준으로 예상된 네이밍 스폰서 수입을 포함해도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하지만 직전 시즌 구단 연봉 총액 24억 5천만 원을 기록한 점퍼스는 창단 연도 연봉 총액으로 22억 9,500만 원을 썼다. 전년도보다 연봉 총액을 1억 5,500만 원가량 줄였지만, 연봉 순위는 5위로 리그 중위권을 유지했다.

이는 모기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점퍼스가 전력 보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창단 감독을 리그 최고 수준에 가까운 연 4억 원에 계약하고 연봉이 7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외부 FA 선수도 영입하는 등 성적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덕분인지 점퍼스는 창단 원년부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히어로즈에 이어 또 다른 자생 구단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한편 점퍼스의 롤모델로 꼽힌 히어로즈도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더군다나 재정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구단을 인수한 점퍼스와 달리 해체 직전이던 팀을 인수한 히어로즈는 프로야구 전반에 위기설을 불러오기도 했다.

당시 히어로즈는 전신인 유니콘스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41억 원에 달했던 연봉 총액을 29억까지 낮췄다. 이 과정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나거나 시즌 개막 이후 계약하는 등 선수단과의 재계약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어로즈에 부과된 리그 가입금은 120억 원에 달했다. 스프링캠프도 뒤늦게 국내에서 진행하는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히어로즈는 리그 가입을 승인받기 위해 가입금 120억 원을 5회에 걸쳐 지불한다는 계획을 KBO에 전달했다.

이를 KBO가 수용하면서 2008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리그 가입을 승인받을 수 있었지만, 가입금 납부 과정에서 히어로즈 측이 1차 추가납부일을 준수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스폰서 이미지가 실추되었다는 이유로 당시 히어로즈의 네이밍 스폰서였던 우리담배가 시즌 중 권리행사를 포기해 구단은 연 100억 원에 달하는 수입을 놓치게 된다.

 

생존과 성적, 그 갈림에서

히어로즈와 점퍼스는 많은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살아남았고 점퍼스는 제명됐다. 필자는 이것을 팀의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점퍼스는 성적을 우선했다. 외부 FA를 영입하는 등 대외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팀이라는 인식을 다졌다. 반면 히어로즈는 구단의 재정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원래 히어로즈 소속이었다가 2년 만에 돌아온 이택근을 제외하면 외부 FA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계약한 원종현이 최초일 정도로 히어로즈는 지출을 자제해 왔다. 

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팀에서 가치가 높은 선수들을 떠나보내며 현금을 확보했다. 히어로즈는 역대 MLB 포스팅 계약 건수 1위이며 지금까지 포스팅, 트레이드, FA 이적 보상으로 얻은 금액은 각각 약 312억 2천만 원과 206억 5천만 원, 66억 2천만 원으로 도합 약 584억 9천만 원을 선수 이적을 통해 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창단 초기에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의 주축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내보내면서 리그의 질적 저하를 불러온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과거 히어로즈의 많은 트레이드에 발표된 것 이상의 현금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장석 대표는 영구 실격되고 SK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징계를 받았다.

규약을 위반해 가며 현금 트레이드를 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다만 모기업이 없는 팀으로서 재정을 우선시한 방향성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점퍼스의 재정 구조에는 우려 섞인 비판이 뒤따랐다. 3억 원 가까이 지출했다고 알려진 창단식을 진행하며 몸집을 과시했지만, 실상은 리그 가입금 성격인 15억 원의 특별회비를 체납하는 등 프로스포츠 구단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가입금 문제는 스노우볼로 커지면서 점퍼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특별회비 체납 문제가 불거지자,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한 네이밍 스폰서 캐롯손해보험이 점퍼스와의 계약을 종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점퍼스는 3년간 연 30억 수준으로 알려진 네이밍 스폰서 수입을 놓치게 됐다.

더욱 심각했던 점은 선수들이 이용한 식당과 병원에 외상금을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구단이 경영난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특히 선수들을 비롯해 구단 관계자들의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것이 드러난 이후 선수단이 국회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자생을 꿈꾼 데이원은 뒤늦게 히어로즈처럼 현금 트레이드로 살아남을 길을 물색했지만 결국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지난 6월 16일, 더 이상 구단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본 KBL이 제명을 결정하면서 데이원 점퍼스는 1년간의 짧은 여정을 마쳤다. 데이원 점퍼스가 창단 초반 전력 강화보다 재정 안정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자생의 모범 사례, 히로시마 도요카프

< 2022년 KBO 구단 수입/지출 현황(단위: 억 원) >

모기업의 재정 지원이 없다면 순위 싸움에 어려움을 겪기 쉬운 KBO리그에서 히어로즈는 2022시즌을 정규시즌 3위로 마무리했다. 순이익은 리그 2위인 41억 원을 기록하면서 성적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리그 정착 과정에서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히어로즈의 선전은 프로스포츠 업계에 ‘자생 가능한 프로구단’이라는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일본 센트럴리그의 히로시마 도요카프를 자생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팀명에 모기업인 도요공업(현 MAZDA)의 이름이 포함되지만 모기업이 구단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고 직접적인 투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평균 관중 3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팬덤과 비용 절감 경영을 통해 1975년부터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까지 45년간 꾸준히 흑자를 냈다. 히로시마 도요카프도 히어로즈처럼 리그 내에서 자금 동원력이 약한 편에 속하지만 모기업의 지원 없이 자생에 성공한 사례로 보기에는 충분하다.

도요카프의 뛰어난 관중 동원력의 비결에는 공격적인 지역 마케팅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각각 2016년과 2022년에 포스팅으로 이적한 마에다 겐타와 스즈키 세이야의 포스팅비 중 110억 원가량을 지역 사회에 환원한 일이 있다. 이 덕분인지 처음 포스팅비를 환원하고 맞이한 2017년에 평균 관중 3만 명을 돌파해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8년과 2019년까지 평균 관중 약 3만 1천 명을 기록했다.

도요카프의 사례를 고려하면 구단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인 시장이 필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유한 팬층이 반드시 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키움 히어로즈의 평균 관중은 4,858명으로 리그 꼴찌였지만 순수익 41억을 벌었다. 큰 시장이 구단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자생의 필수 조건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점퍼스의 해체는 여전히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이 모기업 없이 자생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한 점퍼스가 해체된 사례는 앞으로 기업들이 스포츠구단에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야구계만이 아니라 프로스포츠 업계 전반이 외부 투자 축소를 대비해 자체적인 수입 구조를 형성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잠식에 빠져있는 많은 국내 구단이 제2, 3의 점퍼스가 될지도 모른다.

 

참고 = KBO, STATIZ,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재무분석 및 종합지수분석을 통한 국내 프로야구단의 경영성과 분석.” 국내석사학위논문 한국체육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서울, 장주화

야구공작소 김민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훈희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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