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현서 >
메이저리그에는 매년 평균 239명의 마이너리거가 데뷔한다. 그들 모두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후 자신의 재능을 만개하기도 한다. 이 글의 주인공 맷 브래시 또한 그랬다.
2019년 지명된 브래시는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선발투수로 나선 첫 5경기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ERA 7.65). 반전은 불펜으로 보직을 옮기고 나서 일어났다. 중계 투수로 등판한 30.2이닝에서 ERA 2.35를 기록했고, 피홈런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번 시즌도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브래시는 팀 내 등판 횟수 1위(52경기)를 기록하며 시애틀 불펜의 믿을맨으로 거듭났다. 진가는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ERA는 3.08로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FIP는 고작 1.79에 불과하며, 이는 아롤디스 채프먼에 이은 리그 2위의 기록이다.
< 맷 브래시 2023시즌 성적 >
브래시의 도약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드래프트 순위는 113위에 그쳤으며, 당시<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유망주 순위에서도 28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3년 만에 마이너리그를 졸업했고, 만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악마의 구위
브래시는 제구력이 좋은 투수가 아니다. 팬그래프 닷컴은 20-80 스케일 리포트에서 커맨드에 40점(평균 이하)을 주었다. 또한 마이너리그 통산 BB/9가 4.3에 달하며 지난해에도 5.86의 BB/9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최상급의 FIP를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워낙 많은 삼진과 적은 피홈런에 있다. 브래시의 이번 시즌 K/9는 14.86으로 이는 펠릭스 바티스타와 채프먼에 이어 불펜 투수 중 리그 3위의 성적이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피홈런이다. 이번 시즌 그가 허용한 피홈런은 단 1개에 불과하다(HR/9 0.18).
강력한 구위 덕이다. 브래시는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너클커브, 커터를 던지는데 이 중 포심과 슬라이더의 구사율이 높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는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유리한 카운트에서는 슬라이더로 마무리를 짓는다. 평균 구속 98마일, 27%의 Whiff%(스윙 중 헛스윙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포심의 위력도 대단하다. 하지만 최고의 공은 바로 슬라이더다.
< 맷 브래시 피치 플링코(카운트 별 구종 구사율을 파악 가능) >
드래프트 당시부터 브래시의 슬라이더는 스카우터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드라이브 라인의 피칭 디렉터인 존 래인은 올해 초 인터뷰에서 구속과 무브먼트만을 고려했을 때 그의 슬라이더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구종이라고 평한 바 있다(링크).
브래시는 불펜 전향을 하면서 84마일 초반대의 슬라이더 구속을 88마일까지 끌어올렸고, 이번 시즌에는 89.1마일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리그 17위). 슬라이더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엄청난 구속과 함께 남다른 무브먼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종 무브먼트는 리그 평균 수준이지만, 횡 무브먼트가 평균 대비 7.1인치에 이른다. 베이스볼 서번트는 이 공을 ‘슬라이더’로 분류하지만, 횡 무브먼트는 웬만한 ‘스위퍼’ 수준이다.
단적인 예시로 이를 확인해 보자. 이번 시즌 캘빈 포셰의 87.2마일 스위퍼는 평균 10.7인치의 횡 무브먼트를 기록했다. 반면 브래시의 89.1마일 슬라이더는 평균 11.6인치의 횡 무브먼트를 기록했다. 구속이 더 빨랐음에도 더욱 큰 횡 무브먼트를 보여준 것이다.
< 브래시 슬라이더 그립 >
슬라이더의 그립이 남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브래시의 슬라이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부분은 바로 그립을 잡는 ‘중지’다. 브래시는 인터뷰에서 슬라이더를 던질 때 중지에 많은 힘을 주고 최대한 세게 던지며, 이것이 많은 사이드 스핀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브래시의 슬라이더는 회전 방향이 지면과 거의 평행하며 평균 회전수는 2,851RPM에 달한다(슬라이더를 250구 이상 던진 선수 403명 중 8위). 기울어진 회전축과 많은 회전수가 많은 사이드스핀을 만들어 냈고, 회전 효율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40%) 수준급의 횡 무브먼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래인은 브래시의 특이한 중지 덕분에 이런 투구가 가능하며, 이런 식으로 공을 챌 수 있는 선수는 리그에서 브래시, 알렉스 콥, 마커스 스트로먼이 전부라고 밝혔다.
< 맷 브래시 슬라이더 회전 방향 >
구속과 무브먼트가 모두 갖춰진 슬라이더는 효자 구종이 되어 타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번 시즌 슬라이더의 Whiff%는 49.5%로 50타석 이상 소화한 선수 중 8위이며, 슬라이더의 Put Away%(2스트라이크 때 투구가 삼진으로 이어진 비율)는 36.8%로 리그 2위에 이르렀다.
마지막 남은 과제, 좌타자 극복
하지만 브래시도 고민은 있다. 우타자를 상대로 압도적이었던 반면 좌타자를 상대로는 다소 고전했다.
< 좌/우타자 스플릿 성적 >
물론 올해 BABIP가 워낙 높았고(0.413) 좌타자 상대 타율과 장타율 또한 기댓값을 웃돌았다. 따라서 개선 여지는 충분하다. 아쉬웠던 부분은 좌타자 상대 삼진/볼넷 기록이다. 좌타자를 상대로 삼진은 더욱 적었고 볼넷은 훨씬 많이 허용했다.
< 슬라이더(위), 포심패스트볼(아래) 좌/우타자 스플릿 성적 >
좌타자를 상대로도 슬라이더는 위력적이었지만, 우타자 상대보다는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브래시가 우투수인 만큼 우타자보다는 좌타자가 타석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좌타자를 상대할 때 슬라이더를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 슬라이더 히트맵 좌타자(위)/우타자(아래) >
먼저 제구에 실패했다. 좌타자 상대 시 많은 슬라이더가 존 한복판에 몰렸다. 이는 피치 히트맵뿐만이 아니라 기록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우타자 상대 시 슬라이더가 존 중심부(Heart)에 투구 된 비율은 19.4%에 그쳤지만, 좌타자 상대 시에는 26.3%가 투구됐다.
< 3D pitch 사진 좌타자(위)/우타자(아래) >
터널링도 완벽하지 못했다. 3D 투구 로케이션으로 이를 확인해 보자. 우타자와의 승부에서 브래시의 포심(빨간 선)과 슬라이더(노란 선)는 타자가 스윙 여부를 결정하는 지점(Commit Point)(보라색 점)까지 동일하게 날아오다가 이후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로케이션이 분리됐다. 반면 좌타자와의 승부에서는 공이 투구 되는 순간부터 다른 궤적을 그렸다. 좌타자 입장에는 두 구종을 구별하기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주 무기인 포심과 슬라이더가 간파당했기에 좌타자 승부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써드피치로 너클커브를 던지지만, 우타자들에게는 위력적이었던 반면 좌타자들에게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또한 오프스피드 피치를 구사하지 않는 만큼 좌타자를 잡아낼 만한 구종이 전무했다.
최고의 불펜 투수를 꿈꾸며
좌타자 상대 해법을 찾는 문제는 이제 브래시의 마지막 과제다. 이번 시즌 100타석 이상 투구한 선수 중 브래시보다 우타자 상대 xwOBA가 낮은 선수는 브라이언 우, 조쉬 헤이더, 맥스 프리드 3명이 전부다. 좌타자만 잡아낸다면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더군다나 브래시의 나이는 아직 25살이다. 그동안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전망은 더 긍정적이다.
최고의 자리까지 마지막 한 퍼즐만을 남겨놓고 있는 맷 브래시. 앞으로 그가 보여줄 멋진 투구를 기대해 본다.
참고 = FanGraphs, SeatleSports, BaseballSavant, 시애틀 매리너스 트위터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현서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