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너 바이비, 그에게 익숙한 향기가 난다

< 사진 출처 =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공식 인스타그램 >

고교 시절 셰인 비버는 주목받지 못했다. 장학금 없이 산타바바라 대학에 입학했다. 체격은 너무 왜소했고 패스트볼 구속은 80마일 중후반에 머물렀다.

비버는 대학에서 차츰 성장해 나갔다. 체중을 찌우며 몸을 키웠다. 그러면서 패스트볼 구속을 90마일 근처까지 끌어올렸다.

물론 여전히 그의 패스트볼 구속은 지극히 평범했다. 2016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좋은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많은 유망주 전문가와 구단이 비버를 매력적으로 보지 않았던 이유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는 비버가 가진 강점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은 비버의 깔끔한 투구폼과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성실함이 구속 문제를 금방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2016년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가디언스는 비버를 호명했다. 그들의 예상대로 비버는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였다. 그렇게 2020년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팀의 에이스가 됐다.

지난 4월 27일, 비버와 같은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우완 투수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이 투수 역시 대학 시절 90마일 초반의 다소 느린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스카우팅 리포트처럼 ‘견고하지만 화려하지는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디언스는 그 투수가 가지고 있었던 강점, 즉 준수한 컨트롤에 집중했다. 그렇게 2021년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비버가 그랬던 것처럼 팀에 합류하자마자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1년 만에 최고 구속 99마일을 찍었고 빠르게 마이너리그를 주파했다. 팀 내 30위권 밖에 위치했던 유망주가 어느덧 전체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101.2이닝을 소화하면서 평균자책점 2.92로 순항 중이다. 태너 바이비의 이야기다.

< 참고 1 = 태너 바이비의 마이너리그 & 메이저리그 성적표 >

바이비는 51살까지 아마추어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올해 3월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비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커맨드, 다시 말해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꾸준히 공을 집어넣는 걸 강조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시애틀 매리너스의 마이너리그 투수 코치까지 맡았던 아버지 밑에서 바이비는 제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도 바이비는 볼넷과 거리를 뒀다. 하지만 느린 패스트볼이 계속 발목을 붙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5라운드로 축소된 2020년 드래프트에서 바이비는 그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바이비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서의 4번째 시즌을 준비했다. 평소에도 피칭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시즌을 앞두고 워싱턴주 켄트에 위치한 드라이브 라인의 피칭 연구소를 찾았다.

드라이브 라인의 도움으로 바이비의 패스트볼 구속은 최고 95마일까지 상승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안정적인 제구력을 뽐냈다. 대학 마지막 시즌 89.2이닝을 소화하면서 내준 볼넷은 21개였다.

가디언스는 일찍이 투수 육성에 엄청난 강점을 드러낸 팀이다. 2020년 리그 고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MLB 파이프라인이 주관한 설문조사에서 가디언스는 33%의 득표율로 투수 육성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뛰어난 투수 육성 시스템 안에서 바이비는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갔다.

앞서 언급했듯 패스트볼 구속이 평균 90마일 중반, 최고 99마일까지 올랐다. 패스트볼의 무브먼트 역시 상당 부분 개선됐다. 지난 5월 팬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비는 “당초 매우 평평한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디언스에 와서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깨닫고, 투구 메카닉을 다듬으면서 전보다 더 많은 상승 무브먼트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변화구도 더욱 날카롭게 갈고 닦았다. 동일한 인터뷰에서 바이비는 본인의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시에 같은 브레이킹볼 계열인 커브와 구분이 더 명확해진 것을 핵심으로 지적했다.

< 참고 2 = 바이비의 커브(좌), 슬라이더(우) 그립 & 비교 >

높은 타점에서 뿌려지는 바이비의 슬라이더는 떨어지는 각이 상당하다. 비슷한 구속, 비슷한 릴리스 포인트, 비슷한 익스텐션을 가진 투수들과 비교해 2.9인치 더 하강한다.

하지만 바이비의 말처럼 커브와는 확연히 다른 공이다. 당장 구속도 6마일 이상 차이가 나며 슬라이더의 경우 최근 리그에서 유행하는 스위퍼와 같이 뛰어난 수평 무브먼트를 자랑한다.

체인지업 역시 눈에 띈다. 철저하게 좌타자를 상대로 사용하는 만큼 슬라이더에 비해 활용도는 다소 떨어진다. 상하, 좌우 움직임도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포심 패스트볼과 거의 비슷한 궤적을 그려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가디언스의 백업 포수 캠 갤러거는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비의 체인지업에 대해 “포심과 동일한 속도로 손에서 나오면서 구속은 10~15마일 정도 차이가 나 타자 입장에서 굉장히 치기 힘든 공”이라 평했다.

이렇게 완벽히 타자를 속여내는 체인지업은 현재 바이비의 좌타자 공략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바이비의 체인지업 헛스윙률(45.2%)은 좌타자를 상대로 100개 이상의 체인지업을 던진 선발 투수 가운데 전체 3위. 피장타율은 0.255에 불과하다.

< 참고 3 = 바이비의 좌/우타자 상대 구종 구사율 & 스플릿 >

지난 10년 동안 가디언스의 선발 로테이션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사이영 2회 수상에 빛나는 코리 클루버 다음에는 트레버 바우어, 마이크 클레빈저가 중심을 잡았다. 이들이 팀을 떠난 시점에선 비버가 뒤를 이었다. 이제 바이비가 그 바통을 넘겨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디언스의 크리스 안토네티 사장은 2년 전 지역 매체 ‘클리블랜드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비버에 대해 “계속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며 결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는 투수”라고 이야기했다.

바이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5월 3일, 뉴욕 양키스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이비는 “전 완벽하지 않아요. 아직 멀었어요. 앞으로 분명 성장통을 겪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자기반성은 지금의 바이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의 에이스 옆에서 더 큰 꿈을 꾸며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태너는 비버를 굉장히 좋아해요. 그와 함께 이야기하는 걸 즐기고 그로부터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 스캇 바이비(태너 바이비의 아버지)

msblnational

 

참고 = The Athletics, FanGraphs, Cleveland.com, MLB.com   

야구공작소 이한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재성, 전언수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