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주로(走路)냐 루로(壘路)냐, 그것이 문제로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KBO를 오랫동안 시청한 팬들이라면 위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15년 4월 15일 KIA와 LG 경기에서 김기태 당시 KIA 감독이 2루를 훔치던 LG 문선재가 3피트를 벗어났음에도 심판이 아웃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2루 베이스 위에 누워버린 사건이다. 김기태 감독의 키는 약 180cm이므로 김기태 감독이 알려주는 간격은 약 6피트에 해당한다. 

해당 경기의 장면을 다시 보면 1루에서 2루로 달리던 문선재가 2루 베이스에 안전하게 들어가기 위해 공을 잡은 야수를 크게 돌아가서 태그를 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 20대 남성의 평균 팔 길이가 58cm, 앉은키가 93cm이므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면 오른쪽 사진에서 문선재는 베이스와 약 110cm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3피트를 센티미터로 환산하면 91.4cm인 만큼 문선재는 베이스로부터 3피트 이상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문선재는 태그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이프 판정을 받았고 항의를 격하게 한 김기태 감독만 퇴장당했다. 

이번 심궁해의 주제는 지난번 주제인 홈플레이트와 1루 사이의 3피트 라인아웃과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3피트 이탈 아웃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3피트 라인아웃과 달리 3피트 이탈 아웃은 심판이 공격 선수의 방해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에 수비방해는 아니다. 3피트 이탈 아웃이 선언되었다고 해서 다른 루에 있던 주자들을 원 상태로 돌려놓지도 않는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주자가 수비를 방해한 것처럼 보이며, 또한 많은 사람이 이를 수비방해로 착각하고 있기에 방해시리즈의 두 번째 주제로 선정했다. 

 

주로(走路)의 정의와 3피트 이탈

3피트 이탈 아웃을 규정한 부분은 공식야구규칙 5.09(b)(1)이다. 아래에 원문을 그대로 첨부한 후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5.09(b) 다음의 경우 주자는 아웃된다

(1) 주자가 태그당하지 않으려고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 이상 벗어나서 달렸을 경우

단, 타구를 처리하고 있는 야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벗어났을 때는 무방하다

[주1]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라고 하는 것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의 좌우로 각 3피트(91.4cm), 즉 6피트(182.8cm) 폭을 가진 지대를 가리킨다. 이것이 통상 주자의 주로(走路)로 불리는 장소이다. 따라서 주자가 야수에게 태그당하지 않으려고 이 주로를 벗어났을 때는 신체에 태그하지 않아도 아웃이 된다. 주자가 주로 밖을 달리고 있을 때 태그 플레이가 일어났을 경우 주로로부터 멀어지면서 야수의 태그를 피하였을 때는 즉시 아웃이 되며, 주로로 되돌아오면서 야수의 태그를 피하였을 때는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하는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 된다. 

 

3피트 이탈 아웃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주로는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한 가상의 90피트짜리 길이의 영역이다. 주로는 이전 화에서 이야기한 3피트 라인이 가리키는 영역과 다른 개념이다. 3피트 라인이 지정하는 영역은 홈과 1루 사이 파울 지역의 중간 부분부터 시작하는 공간이며, 주로는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에 걸쳐 있는 공간이다. 3피트 라인 규정에 따르면 주자는 페어 지역에서 달리면 안 되기에 주루 가능 영역은 3피트X45피트지만, 주로가 규정하는 주루 가능 영역은 주로 좌우 3피트인 만큼 6피트X90피트이다. 

이렇게 보면 주자가 베이스 사이를 이동할 때 달릴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좁아 보인다. 주로 개념의 장점은 주로 이탈 여부를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다. 주로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심판 입장에서는 주자가 어떻게 달리든 고정된 영역을 벗어났는지만 관찰하면 된다. 하지만 이 상황이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금부터 소개할 것이다.

 

세계가 사용하는 규칙과 다른 공식야구규칙

Official Baseball Rules(메이저리그 공식 규칙, OBR)에서 3피트 이탈 아웃을 규정한 부분은 5.09(b)(1)이다. 아래 원문과 번역을 함께 첨부한다. 

 

5.09(b) Any runner is out when:

(1) He runs more than three feet away from his base path to avoid being tagged unless his action is to avoid interference with a fielder fielding a batted ball. A runner’s base path is established when the tag attempt occurs and is a straight line from the runner to the base he is attempting to reach safely

5.09(b) 다음의 경우 주자는 아웃된다

(1) 주자가 태그당하지 않으려고 “BASE PATH”로부터 3피트 이상 벗어나서 달렸을 경우

단, 타구를 처리하고 있는 야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벗어났을 때는 무방하다 

주자의 “BASE PATH”는 태그 시도가 발생할 때 확정되며, 주자와 주자가 안전하게 도달하려는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이다

 

보다시피 OBR이랑 공식야구규칙에서 규정하는 3피트 이탈 아웃은 큰 차이가 있다. 공식야구규칙에서는 3피트 이탈의 기준으로 주로를 언급하고 있다면 OBR에서는 Base Path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 등장한다. 

주로와 달리 Base Path는 주자의 위치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주로와는 달리 매 상황에 따라 바뀐다. 주자가 정확히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 위를 달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Base Path 주변 3피트 영역과 주로는 서로 다르다. 사실 팬들이 눈으로 더 많이 보고, 더 익숙한 가상의 선은 주로가 아니라 Base Path이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 3피트 이탈 아웃을 선언할 때는 주자가 태그를 시도하는 야수로부터 멀리 도망갈 때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식야구규칙에서도 Base path 개념이 등장한다. 5.09(b)(1)의 [주1]의 후반부를 보면 “주로로 되돌아오면서 야수의 태그를 피하였을 때는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하는 직선으로부터 3피트(91.4cm) 이상 떨어지면 아웃이 된다”라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가 사용하는 규칙과 비교하면 확연히 머릿속으로 그려내기 쉽지 않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OBR과 공식야구규칙이 서로 다른 걸까?

 

Base Path는 Baseline와 다르다

이 차이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규칙 위원회는 2007년 시즌을 위해 야구 규칙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현존하는 Base Path의 개념도 이때 등장했다. 메이저리그가 2007년 시즌을 앞두고 발표한 규칙 변경 목록을 보면 주자의 Baseline(이때는 Baseline으로 칭했다)을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으로 개정한다고 나와 있다. (Rule 7.08(a): 舊 공식야구규칙 조항 번호) 2007년 이전 OBR에는 3피트 이탈 아웃과 관련해 ‘He runs more than three feet away from a direct line between bases to avoid being tagged’라고 써있으며, 이는 현재 공식야구규칙과 같다.

메이저리그는 2012년부터 Base Path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 베이스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Baseline)과 주자와 베이스를 연결한 직선(Base Path)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물론 미국도 여전히 Baseline과 Base Path 개념을 혼동하는 야구인, 방송인, 팬들이 많지만 적어도 OBR에서는 이 둘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 메이저리그는 왜 주로가 아니라 Base Path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일까?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식야구규칙 [주1] 후반부에 설명된 상황을 쉽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주로에서 바깥쪽으로 벗어난 곳에서 달리던 주자가 태그를 피하고자 3피트 이상 피해 주로 바로 위로 도망가게 된다면 현재의 Base Path 개념처럼 3피트 이상 피했다는 이유로 아웃을 선언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는 주로와 Base Path 개념이 혼재되는 상황보다는 이를 하나의 Base Path 개념으로 통일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두 번째는 주자가 더 자연스럽고 역동적으로 주루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Base Path 개념이 도입되기 전, 주자는 주로 안 혹은 밖을 달리고 있을 때 각각 수비를 피해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서 주자가 주로에서 벗어난 곳을 달리고 있었다면, 태그를 피하기 위해서는 주로 쪽으로만 이동해야만 했다. 반대로 주자가 주로의 왼쪽 경계선에서 달리고 있었다면 주자는 태그를 피하기 위해 주로의 오른쪽 방향으로만 피할 수 있었다. Base Path 개념이 도입되면서 주자는 태그를 피하기 위해 양 쪽 모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Base Path의 적용과 사례

그러면 그림을 보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위 장면은 2023년 6월 28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간의 경기에서 발생한 상황이다. 1루주자였던 케이베르 루이즈는 도미닉 스미스의 타구 때 홈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그림에서 보이는 하얀 파울라인 주변 3피트 영역이 공식야구규칙에서 말하는 주로이며, 보라색 선이 태그가 이뤄질 때 주자와 도달하려는 베이스를 이은 직선인 Base Path이다.

루이즈는 위와 같이 포수 톰 머피의 태그를 피하고자 경로를 변경했다. 이를 보던 구심 데렉 토마스는 머피의 글러브가 루이즈와 한참 멀리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즈가 Base Path로부터 3피트를 이탈했다며 아웃을 선언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주로 개념으로든 Base Path 개념으로든 똑같이 아웃 판정을 받는다. 

 

 

다른 사례를 보자.

위 사진은 2023년 5월 6일 미네소타 트윈스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경기 상황이다. 그림에서 분홍색 선은 주로의 기준선, 파란색 선은 Base Path의 기준선, 우측 작은 초록색 반원은 유격수 호세 미란다가 태그를 시도할 당시 1루 주자였던 호세 라미레즈가 위치한 자리이다. 

1루 주자였던 라미레즈는 수비 실책을 틈타 비어있던 3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공을 전달받은 유격수 미란다는 라미레즈를 태그하기 위해 몸을 날렸고, 라미레즈 또한 태그를 피하고자 몸을 틀었다. 태그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3루심 댄 아이소냐는 세이프를 선언했다. 

공식야구규칙에 의하면 라미레즈는 주로에서 3피트 이상 이탈한 지역을 달리고 있었는데 태그를 피하기 위해 주로와 멀어지는 쪽으로 피했기 때문에 피한 거리와 무관하게 즉시 아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OBR은 주로가 아닌 Base Path에서 3피트 이상 이탈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의 Base Path에서 살짝 몸을 비틀었을 뿐인 라미레즈는 아웃이 아니다. 주로와 Base Path의 차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아웃이 될 상황이 미국에서는 세이프가 되었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규칙이 필요하다

한국 야구가 국제 대회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자 KBO를 비롯해 각계의 야구인이 힘을 합쳐서 한국 야구의 실력 향상과 장기적 발전을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발전 방안 속에도 야구 규칙의 현대화와 심판 역량 강화라는 내용은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공식야구규칙도 2015년 메이저리그가 OBR을 전면 개정한 것에 따라서 조항 번호를 대폭 개정하는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공식야구규칙에서 조항 번호와 규칙이 언급된 순서만 바뀌었지 속에 있는 내용은 상술했듯이 2006년 이전의 상태로 남아있다. 오늘 설명한 주로와 Base Path 외에도 공식야구규칙이 최신 OBR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한 부분은 상당히 많다. 

주로와 Base Path와의 개념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필자는 국제 대회에서 이 규칙이 적용되는 순간이 당분간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오게 된다면 우리나라 야구인은 익숙한 공식야구규칙에 근거해 어필하지 않을까? 혹은 한국 출신의 심판이 국제 무대에서 잘못된 근거에 따라 판정하지 않을까? 

 

참고 = MK스포츠, Naver, 사이즈코리아, MLB, 400 Hitter, Close Call Sport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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