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살타, 불명예지만 어쩌면 명예로운

[야구공작소 박주현] 9회 말, 주전포수가 퇴장 당한 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1사 만루를 맞았다. 3대 2 한 점 차, 안타 하나면 역전패하는 상황. 모두의 손이 땀에 젖었을 때 공이 투수의 손에서 떠난다. 공은 타자의 배트에 맞은 후 유격수의 정면으로 빠르게 굴러간다. 공은 유격수에게서 2루수에게로, 2루수에게서 1루수에게로 도달하고 결국 수비 팀의 승리가 확정된다. 많은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나온 병살 상황이다. 그 경기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최고의 병살로 기억될 장면이다.

병살, double play는 야구에서 수비 팀이 연속된 수비 동작으로 공격 팀의 선수 2명을 동시 아웃시키는 것이다. 주로 타자가 친 땅볼 타구에 의해 일어나며 그 중에서 가장 흔한 형태는 위 사례와 같은 6-4-3(유격수-2루수-1루수) 병살이다. 물론 이외에도 뜬공 이후 주자의 귀루 실패로 인한 경우 등 병살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장 흔한 ‘내야 땅볼’ 병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역대 병살왕들

 <7경기 연속 병살타 기록을 보유한 2011년의 홍성흔 /사진제공: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가장 많은 병살타를 기록한 선수는 홍성흔이다. 오랜 기간 동안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2003, 2004년과 은퇴를 앞둔 시즌인 2016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10개 이상의 병살타를 기록했다. 18시즌 동안 총 230개. 약 35년이라는 프로야구 역사상 통산 200개 이상의 병살타를 기록한 것은 그와 209개의 정성훈이 유이하다. 홍성흔은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1년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7경기에 출장해 매 경기 병살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종전의 기록은 1997년 김기태의 ‘5경기 연속’ 병살타다.

통산 개수로 많은 병살타를 기록한 선수는 아니지만 병살타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이도형일 것이다. 홍성흔의 기록이 많은 타수에서 비롯된 것임에 비해 그의 기록은 기괴할 정도다.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2007년, 그는 총 177타수에서 안타는 33개였는데 병살타가 무려 11개였다. ‘병살타율’로 계산하면 무려 0.062로 이는 2007년 10개 이상의 병살타를 친 선수 중 가장 높은 수치다(그 해 이도형의 뒤를 이은 선수는 197타수에서 10개의 병살타를 친 유한준(0.051)이다). 이는 역대 단일시즌에서 11개 이상의 병살타를 친 선수 중 2009년의 용덕한(0.06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이 기록 덕분에(?) 아직도 그에게는 병살왕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차세대 병살왕

 


<2014년 이후의 통산 병살타율 1위인 윤석민 /사진제공: 넥센 히어로즈>

그렇다면 향후 병살왕의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선수는 누가 있을까? 첫 번째 후보는 넥센 히어로즈의 윤석민이다. 그는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후 매년 병살타 개수에서 10위 안에 들고있다. 병살타율 기록이 제공되는 2014년 이후의 통산 병살타율에서는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심지어 2014년 이후로 매년 병살타율이 오르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다.

<표 1: 윤석민의 2014~2016시즌 병살타 개수와 병살타율>

* 병살타율 = 병살타 개수/병살타 상황(2사 이전, 1루 주자 있는 경우)

또 다른 유력한 후보들은 주로 포수들이다. 포수들은 대체적으로 발이 느리다보니 병살타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리고 그 편견이 편견이 아님을 입증하듯 이재원(14.9%), 박동원(14.4%), 김태군(16.1%) 등 발 느린 포수들이 당당히 통산 병살타율 10위 안에 올라있다(2014~2016년 기준). 그들이 각자의 팀에서 한동안은 대체될 수 없는 포수자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포수 출신인 홍성흔이 그랬듯 앞으로도 많은 병살타를 기록할 것이라 예상된다.

 

많은 병살타의 의미

<표 2: 통산 병살타 개수 상위 5명의 통산 OPS>

하지만 많은 병살타 개수가 팀 입장에서나 타자 입장에서나 꼭 불명예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많은 병살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살타 상황, 즉 1루를 포함한 1명의 이상의 주자가 있는 경우여야 하고 연속한 수비가 가능하도록 타구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래서 특정 타자가 많은 병살타를 기록했다는 것은 팀에서 그 선수 앞에 자주 밥상을 차려주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타자가 잘맞은, 속도가 빠른 타구를 자주 만들어냈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래서 통산 병살타 순위에서 상위에 오른 선수들은 팀에서 타점을 기대하는 ‘뛰어난 타자’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타자들이 병살타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물론 병살타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달갑지 않은 기록으로 기억될 가능성도 높다. 실망은 기대의 크기에 비례하는 법, 베이스가 비어 있을 때의 땅볼과 채워져 있을 때의 땅볼은 기대하고 응원하는 입장에선 실망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해 본다면 그 오랜 기간 동안 큰 기대를 받았다는 명예로운 기록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병살타는 불명예이지만 명예로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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