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야구박물관, 더 가치 있는 기억을 위해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은서 >

12년째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는 KBO 야구박물관(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사업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가 최종 통과된 것이다.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는 지방자치단체가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까다로워 많은 지자체가 고배를 마셨고 지난 2017년 야구박물관도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업추진에 걸림돌이었던 운영비 문제해결이 결정적이었다. 야구박물관 완공 뒤 운영비는 연간 20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부담스러워한 KBO 대신 부산시 기장군이 직접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됐다.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까지 마친 야구박물관은 계획대로라면 2024년 상반기 착공하고 2026년 정식 개관한다.

소리소문없이 무산될 수 있었던 야구박물관 건립사업은 이렇게 12년에 걸쳐 다시 속도를 내게 됐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노력을 쏟을 정도로 야구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박물관의 역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야구 ’박물관’이 필요한 이유

야구박물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한국 야구 역사의 보존이다. 여기에 조금만 시선을 돌려 ‘박물관’의 기능에 집중해 본다면, 야구박물관은 생각보다 더 많은 역할과 의미가 있다.

 

1. 수집, 보존, 연구 공간의 역할

박물관은 자신의 주제를 표현하는 각종 물품을 발굴 및 수집한다. 또한 수집품들을 장기간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존하고 연구하는 기능을 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새롭게 알아내기도 한다.

야구박물관에 전시될 물품들은 현재 야구회관 지하 1층 KBO 아카이브 센터에 보관되고 있다. 항온 항습 시스템으로 보존에 힘쓰고 있지만, 55평 남짓한 공간에 무려 2만여 점의 수집품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야구박물관이 개관한다면 더 넓은 공간에서 수집품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한국 야구 역사 및 그 자료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야구박물관은 공식적인 연구의 장이 될 수 있다.

 

2. 전시 공간의 역할

아무리 가치 있는 물품을 수집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기 쉽다. 박물관은 수집된 물품들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전시의 기능을 한다.

한국 야구는 프로야구 41년 포함 약 110년의 역사가 있다. 리그 규모 또한 전 세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며 그만큼 열정적인 야구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에게 다양한 수집품들을 선보이는 것은 단순한 전시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 줄 것이다. 수집품을 통해 야구의 짜릿한 순간을 되새기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을 영상자료로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3. 교육 및 체험 공간의 역할

박물관은 관객과 참여자들에게 체험과 교육을 통해 물품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전파한다. 이런 활동은 대중들이 해당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해 연구가 이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창이 되기도 한다.

과학, 미술 못지않게 스포츠인 야구도 체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주제다. 야구를 직접 경험해 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애정도의 차이가 천지 차이다. 야구박물관은 전시 공간과 더불어 정식 야구장 4면, 리틀 야구장 1면의 건설이 함께 계획되어 있어 충분한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심판, 기록원, 박물관 관리위원 등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지속적인 관람객 유치가 중요

박물관이 지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관람객이 찾아오지 않는 박물관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도심에서 1시간이 걸리는 기장군 일장 유원지에 지어질 야구박물관은 접근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람객을 꾸준히 유치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앞서 운영되고 있는 MLB 명예의 전당과 NPB 야구 전당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MLB 명예의 전당은 뉴욕 도심에서 차로 4시간이 걸릴 만큼 접근성이 좋지 않다. 하지만 박물관을 다 둘러보는데 평균 4시간이 걸릴 정도로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NPB의 야구 전당은 도쿄돔에 위치해 접근성은 좋지만, MLB 명예의 전당만큼의 규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대신 쇼핑몰과 놀이공원이 있어 관람객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 MLB 명예의 전당(위)과 NPB 야구 전당(아래) >

긴 역사를 가진 MLB처럼 절대적인 전시 작품 수를 늘릴 수 없다면, KBO가 앞서 선보인 체험형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예시로 2022년 올스타전 팬 페스트 존에서 선보인 ‘러닝 LED’가 있다. 전광판을 통해 이종범, 이정후, 이대호 등의 선수와 1루까지 달리기 시합을 할 수 있는 콘텐츠로, 팬들의 좋은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도’ 전준호와 도루 대결, 스크린 야구 시스템을 활용한 ‘무쇠팔’ 최동원과의 투타대결 등의 콘텐츠를 상상해 보자.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할 만할 것이다.

< 2022 KBO 올스타전 팬 페스트 존에 마련된 러닝 LED 행사 >

또한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기장-현대차 드림 볼파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전국 단위의 유소년 및 청소년 토너먼트나 은퇴선수의 자선경기 등의 행사를 개최한다면 관람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회에 참가한 선수와 팬들을 박물관으로 유도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대회 관람으로 유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야구박물관 부지 옆에 위치한 기장-현대차 드림 볼파크 >

야구박물관의 접근성이 아쉽다면 팬들이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시야를 넓힌다면 관람객을 끌어들일 만한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다.

KBO가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더 가치 있는 기억을 만들어 주는 진정한 의미의 야구박물관이 되지 않을까.

 

참고 = baseballhall.org, baseball-museum.or.jp, KBO, 기장군 도시관리공단

야구공작소 정민혁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유은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은서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