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전 승부치기, 만약 당신이 감독이라면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해준 >

만약 당신이 고등학교 팀의 감독이고, 이끄는 팀이 연장전 승부치기에 돌입한다고 상상해 보자. 과연 당신이 어떤 지시를 내려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높을까?

우선 상황을 고등학교의 감독으로 설정한 건 국내에서 승부치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환경이 고교야구여서다. 국내 고교야구의 승부치기 규정은 연장전인 10회부터 양 팀이 무사 1·2루로 시작하는 방식이다.

< 2012~2022시즌 메이저리그 상황별 기대 득점 값(RE24) >

리그 레벨과 시기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위의 표에서 RE24 값은 무사 1·2루 상황에서 1.487 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나타낸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희생번트를 통해 주자들을 진루시켰다면 기대 득점은 1.412 점으로 적게나마 낮아진다. 다득점을 고려한다면 승부치기에서 희생번트를 선택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 2012~2022시즌 메이저리그 기준 득점 발생 확률 >

그러나 연장전이라는 환경은 세 개의 아웃 카운트 동안 쥐어짠 1점이 승부를 가른다. 1사 2·3루가 무사 1·2루보다 득점 확률이 높고, 1사 1·2루와 비교하면 득점 확률에서 큰 차이가 생긴다. 이를 고려하면 승부치기에서 득점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희생번트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물론 경기의 흐름은 양 팀 전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이 글은 승부치기에서 어떤 전략이 조금이라도 높은 승률을 보였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표본은 2021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고교야구에서 진행된 101번의 연장전 중 126이닝 동안 진행된 승부치기다. 단 고교야구에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는 제외했다.

 

선 공격 vs 후 공격, 누가 유리할까?

< 선·후공에 따른 결과 >

승부치기에서 선공과 후공 중, 어떤 팀이 유리할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갈린다. 우선 선공이 유리하다는 의견은 점수를 내기 쉬운 상황에서 다득점 시 상대방의 추격 의지가 꺾이기 쉽다고 주장한다. 반면 후공이 유리하다는 의견은 상대 팀의 득점 상황을 고려하면서 공격을 진행하는 게 승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101경기의 표본에서는 선공과 후공에 따른 승 수 차이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공과 후공에 따른 유불리는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총득점에서는 큰 격차가 벌어져 있는데 이는 역전하는 즉시 경기가 종료되는 후공 팀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번트냐 강공이냐, 유리한 선택은?

< 선공 팀 득점에 따른 해당 이닝 결과 >

위의 표는 선공 팀 득점에 따라 해당 이닝에 발생한 결과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표에 따르면 승부치기에서 선공 팀이 1점 내지 2점을 득점한 경우에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선공 팀이 안도할 만한 격차는 최소 3점, 승부 주자만 불러들일 것이 아니라 3점 이상의 다득점을 노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 선공 선두타자 희생번트 및 강공 결과 >

그렇다면 승부치기에서 다득점을 위해선 번트와 강공 중 어떤 선택이 좋을까? 선공 팀의 선두타자가 희생번트를 시도했던 경우는 126이닝 동안 71번이었다. 번트를 시도한 횟수가 강공을 시도한 횟수보다 많았지만, 총득점은 오히려 적었다. 앞서 제시했던 RE24 값처럼 1사 2·3루를 만들기 위해 희생번트를 대면 강공을 시도한 경우보다 기대 득점은 크게 낮아진다. 만약 선공 팀이 3점 이상의 대량 득점을 원한다면, 희생번트보다는 강공을 선택하는 게 좋은 선택지로 보인다.

반대로 우리 팀이 말 공격이라면 어떨까? 우선 후공 팀은 3점 이상 점수가 벌어지면 번트를 통해 1사 주자 2·3루를 만들어 승부 주자를 불러들이는 시도가 의미 없다. 따라서 후공 팀의 선두타자 희생번트는 2점 차 이내에만 이루어진다. (이례적으로 후공 팀 선두타자가 3점 차에 번트를 시도한 경우가 있다. 후공 팀이 승부치기 상황에서 희생번트를 대어 2·3루를 만들면 가끔 수비 중인 선공 팀이 고의사구로 1루를 채워 병살타를 노린다. 하지만 해당 경기에서 상대 팀은 만루를 채우지 않고 승부 주자의 득점만 허용해 1점 차 승리를 가져갔다.)

< 점수 차에 따른 후공 선두타자 희생번트 및 강공 결과 >

앞서 설명했듯 승부치기에서 2점 차 이내의 접전은 후공 팀이 경기를 끝내거나 이어갈 여지가 크다. 특히 선공이 무득점으로 끝나면 후공 팀 선두타자가 번트와 타격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승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다만 적은 점수 차로 뒤처지는 상황에서는 강공이 희생번트보다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였다. 눈에 띄는 사안은 1점 차 상황에서 강공을 선택한 경우가 2점 차에서 강공 또는 희생번트를 선택한 경우보다 득점과 승률이 낮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표본이 많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후공 팀이 수비에서 1점으로 막으면 해당 이닝에 경기를 끝내려는 생각에 장타를 기대하며 강공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때문에 차라리 후공 팀은 기대 득점을 낮추더라도 희생번트를 통해 득점 발생 확률을 높였던 전략이 패배를 피하는데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며

이번 글은 승부치기 상황에서 양 팀이 선두타자에 어떤 지시를 내리면 좋을지 알아봤다. 선공 팀은 기대 득점을 높이기 위해 번트를 지양하는 방향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후공 팀은 2점 차 이내 접전인 상황에선 1·2루에 진출한 주자들만 무사히 불러들이도록 득점 확률을 높이는 전략을 통해 패배를 면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다.

다만 승부치기는 경기 상황과 팀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선공 팀에 믿을 만한 에이스 투수가 있다면 그 선수를 믿고 과감하게 희생번트를 대어 1~2점만 짜내고 수비에서 틀어막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혹은 선공 팀이라고 해도 타자의 기량이 낮다면 희생번트를 고려하는 게 옳은 판단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장전에 돌입한다는 것은 양 팀의 기량이 호각인 상황이다. 한 끗 차이로 경기 결과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무사 1·2루는 좋은 타자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감독이라면 승부치기에서 통계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선수를 믿어야 할까? 어려운 결정을 내리겠지만 확실한 건 선·후공에 따라 접근법을 다르게 고려하면 조금이나마 승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 www.tangotiger.net

야구공작소 김민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홍기훈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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