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백충헌 >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가 결국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17경기 68타석에서 타율 0.127, OPS 0.335. 그동안 삼진은 무려 31개를 당했지만, 홈런은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미 한화는 외국인 투수 버치 스미스를 떠나보내며 막대한 손해를 본 상황이다. 오그레디까지 교체하기엔 부담스럽다. 스미스는 어깨 부상이 있었지만, 오그레디는 건강하다는 점도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만든다.
수베로 감독은 “서산에서 한창 좋았을 때의 모습을 찾아오라고 주문했다.”라며 오그레디에게 재정비 시간을 부여했다. 오그레디는 약 열흘 동안 서산에 머문 뒤 콜업될 예정이다. 한화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치가 아프게 됐다.
컨택이 안 되니 장타를 보여줄 수도 없다
오그레디의 현재 기록을 살펴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삼진이다. 그러나 많은 삼진은 구단조차 예상했던 부분이다. 오그레디의 컨택 능력은 마이너리그 포함 규정타석에서 한 번도 3할 타율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아쉬웠다. 그런데도 오그레디를 영입한 이유는 매력적인 장타력을 갖춘 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점인 장타를 보여주기도 전에 단점이 발목을 잡았다. 공에 배트를 맞추질 못하니 장타도 보여줄 수 없었다. 오그레디는 스트라이크 존 안쪽과 바깥쪽 할 것 없이 컨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 오그레디 스트라이크 존별 스윙 비율과 컨택 비율 >
오그레디는 전체 스윙률 54.6%로 적극적인 스윙을 보여줬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 안쪽(IZ)과 바깥쪽(OZ) 모두 리그 최하위권의 컨택률을 기록했다. 선구안이 완전히 무너져 존 바깥쪽 공에도 쉽게 스윙하고, 존 안쪽 공에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 오그레디 스트라이크 비율 >
만약 컨택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라운드 안으로 타구를 보내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오그레디의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공 중 34.8%는 파울이었다. 63%의 낮은 컨택률로 만들어 낸 타구조차 대부분이 파울이라는 소리다. 파울 타구 비율이 30%가 넘는 선수 중 컨택률이 65% 이하인 선수는 오그레디가 유일하다. 타격 결과를 만들어 낸 스트라이크 비율은 16.2%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리그 평균 28.8%)
그라운드 안으로 타구를 보내질 못하니 마음은 더 급해졌다. 기습번트까지 시도하며 출루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부진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여줬을지 몰라도, 구단과 팬이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한화는 결국 오그레디에게 서산행을 통보했다.
아직 희망은 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심각한 타격 부진이다. 이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한화는 스미스에 이어 오그레디까지 교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가 많지 않지만, 외국인 타자가 부진으로 2군에 다녀온 뒤 부활한 사례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2017~2019시즌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다린 러프가 있다.
러프는 삼성의 새로운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개막 후 18경기에서 타율 0.150, OPS 0.551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퓨처스리그로 향했다. 약 열흘 동안 조정 기간을 거친 러프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17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15, OPS 0.965, 홈런 31개. KBO 타점왕까지 수상한 러프는 3년간 좋은 활약을 펼치며 메이저리그 재입성에도 성공했다.
오그레디처럼 NPB 출신 외국인 타자들이 퓨처스리그에서 재정비한 뒤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사례도 있다. 前 두산 베어스의 닉 에반스는 2016시즌 개막 후 18경기에서 타율 0.164, OPS 0.543을 기록했으나 퓨처스리그에서 경쟁력을 회복했다. 타율 3할 – 출루율 4할 – 장타율 5할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前 SSG 랜더스의 제이미 로맥도 2017시즌 중반 부진에 빠졌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재정비 기간을 거친 뒤 완벽히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5년 동안 SK와 SSG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155홈런을 기록했다.
< 러프, 에반스, 로맥 1군 말소 전, 시즌 최종 성적 비교 >
위 사례의 선수들이 퓨처스리그에서 특별한 훈련을 받고 온 걸까? 아닐 것이다. 외국인 타자를 퓨처스리그로 보내는 목적은 기량 향상이 아니다. 약 열흘 정도의 시간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재충전’ 시간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퓨처스리그 투수들을 상대하며 자신감을 되찾으라는 의미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신력이 흔들리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SNS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던 오그레디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약 열흘 가까운 시간 동안 정신력과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오그레디는 퓨처스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답지 않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까지 보여주며 부활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부활에 성공해 최하위에 쳐진 한화의 순위 경쟁을 도울 수 있을까?
참고 = STATIZ
야구공작소 정민혁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백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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