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대표팀에 대한 MLB 구단의 간섭에 대해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

“힘들다. 투수들을 보호하고 이닝 관리를 해야 한다. 구단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It’s tough. You’re trying to massage innings. You’re trying to protect these guys. You’re trying to honor their parent clubs.

WBC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 마크 데로사가 1라운드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뒤 한 말이다. 구단들의 요구로 선수마다 한정된 투구 수, 투구 이닝을 지키며 선수를 기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미국 국가대표팀 선수 기용에 대한 구단의 간섭 문제는 꾸준히 존재했다. 메이저리거급 선수는 차출부터 쉽지 않다. 특히 이번 대회는 ‘ALL I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정도로 선수 차출에 힘썼지만, 팬의 기대에 충족하기엔 아쉬웠다. 지난 시즌 WAR 상위 20명의 투수 중 14명이 미국인이지만(Fangraph 기준), 단 한 명도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사이영상 수상 경력이 있는 선수도, 62홈런의 주인공도 없었다.

설득 끝에 가까스로 차출한다고 해도 항상 조건이 따라붙었다. 역대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선수 기용에 대한 질문에 ‘구단과 상의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승리를 위한 선수 기용보다는 투구 수 관리와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용이 이어졌다.

 

메이저리거가 WBC에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는?

국가대표가 명예로운 자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은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국가대표 자리를 고사한다. 선수가 참여 의사를 밝혀도 MLB 구단의 반대에 막혀 출전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팬의 입장에서 해당 선수와 구단이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여기엔 국가대표팀과 구단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WBC는 전 세계 야구팬이 관심을 가지는 국가대항전 경기다. 국가대표팀은 최선의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을 기용해야 한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구단의 입장에서 국가대표 차출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선수는 구단의 자산이다. 특히 국가대표급 선수라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혹여 부상이 생긴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결국 선수에게 연봉을 지급하는 주체는 구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호세 알투베가 사구에 맞아 2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에드윈 디아즈는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국가대표팀과 구단 간의 이해관계가 아니더라도 WBC 참가가 쉬운 결정은 아니다. 2월에 시작하는 대회 특성상 선수는 평소보다 컨디션을 더 빨리 끌어올려야 한다. 타 스포츠 종목보다 루틴이 부각되는 야구선수에게는 부담이다. 

특히 투수 포지션에서 그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투구 수와 투구 이닝, 장거리 여행 등이 컨디션과 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 시즌 초 감기, 몸살 등으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던 오승환(당시 세인트루이스 소속)도 “시즌 앞두고 장거리 여정을 보내고 온 부분도 원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야구 현장 밖 제삼자와의 이해관계로 출전이 무산되기도 한다. 이번 대회 미국의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클레이튼 커쇼는 보험 문제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타 스포츠 종목과의 차이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타 스포츠 종목에서도 국가대표, 구단, 선수 간 이해관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야구와 달리 많은 슈퍼스타가 국가대표팀에 합류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축구의 경우 FIFA가 국가대표팀의 경기 날짜를 지정하는 A매치 데이 제도(International match day)가 존재한다. A매치 데이에는 월드컵 본선 및 지역 예선 등 대표팀 공식 경기가 펼쳐진다. FIFA 규정에 따라 구단은 이 기간 국가대표 선수의 차출을 거부할 수 없다. 국가대표 소집에 불응한 선수는 A매치 기간 종료 후 5일 동안 경기 출전을 금지한다는 처벌 규정도 존재한다. 

미국의 4대 인기스포츠 중 하나인 농구는 강제 차출 규정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올림픽마다 NBA 올스타급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최고의 NBA 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의 등장이 그 전통의 시작이었다.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매직 존슨 등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전승 우승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차지했고, 농구 세계화의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야구는 사정이 다르다. 강제 차출 규정도 없고, 선수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드림팀’도 만들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메이저리그를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선수 차출과 기용 간섭 문제로 1회 우승(2017)에 그쳤다.

 

WBC에 MLB 슈퍼스타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야구는 타 스포츠 종목에 비해 슈퍼스타 출전 비율이 낮다. WBC의 흥행부터 MLB가 목표로 하는 ‘야구의 세계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표다.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이 WBC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 쉽게 차출할 방법의 하나는 규정을 통해 차출을 강제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던 축구의 사례와 같이 공식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선수 차출을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우선 WBC는 MLB와 MLBPA가 주관하는 대회다. MLB 구단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FIFA와 달리 다른 나라 또는 대륙 야구연맹을 관리하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규정이 다른 국가에 제대로 적용되기도 힘들다.

‘강제’가 힘들다면, ‘회유’가 필요하다. 구단 보호를 위한 적당한 보상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로 A매치 기간 차출 거부 금지 규정이 있는 FIFA는 클럽 보호 규정 또한 마련하고 있다. 차출된 선수가 28일 이상의 부상을 당한다면 선수의 고정 급여에 비례한 금액을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구단은 최대 750만 유로(한화 약 107억 원)를 보상받을 수 있다. 선수 개인을 보호하는 규정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KBO 야구 규약이다. 제17조의 2에 따라 국가대표 선수 부상 시 부상 기간의 1/2을 현역 선수 등록 일수로 보상받을 수 있다. 이런 사례처럼 구단과 선수를 위한 보상안을 마련한다면, 선수 차출에 대한 거부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 KBO 야구 규약 제17조의 2 – 국가대표 선발선수 부상 시 보상 >

좋은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선수와 구단의 협조다. 선수 개개인과 구단에 WBC 참가를 꾸준히 독려해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NBA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처럼, WBC에 ‘드림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실제로 WBC는 이번 대회 최대 흥행을 끌어내며 팬들의 기대를 더 크게 만들었다. 야구의 세계화를 실현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다음 WBC에서는 적절한 대책과 선수, 구단의 협조로 더 멋진 대회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참고 = Fangraphs.com, KBO 야구 규약

야구공작소 정민혁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이재성, 도상현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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