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KBO리그 버두치 리스트, 요주의 대상 투수는?

[야구공작소 박기태] 선수가 구단의 귀중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선수의 건강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장차 구단의 기둥이 되야 할 젊은 투수들의 건강 상태 보호는 모든 구단들의 체크리스트 1순위다.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이 곁들여지고 있다. 투구수 관리도 그 일환이다.

이와 관련해 ‘버두치 효과’라는 것이 있다. 2006년 말, 미국의 스포츠 기자 톰 버두치가 젊은 투수들의 건강과 부상을 연구해 제창한 일종의 가설이다. 25세 이하의 투수가 전년도보다 30이닝 이상을 던지면 이듬해 부상을 당하거나 성적이 떨어질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운동생리학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투수들은 실제로 그 밖의 투수들보다 부상을 당한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성적이 떨어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최근에는 버두치 본인이 내용을 다듬어 추가적으로 전년 대비 이닝 소화량이 30% 이상 증가한 이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있다. 근래 버두치 효과를 ‘입증’한 사례로는 랜스 맥컬러스, 제시 한, 네이선 이볼디,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이 있었다.

버두치 효과는 KBO리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 초 그 대상에 근접했던 넥센 조상우가 팔꿈치 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대중에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조상우는 2014년 정규시즌, 퓨처스리그, 포스트시즌, 올스타전을 통틀어 79.1이닝을 던졌고, 2015년에는 6.1 102이닝을 던졌다. 이닝 증가량은 30에 가까웠고, 비율도 30%에 가까웠다.

투수 관리에 있어서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여전히 버두치 리스트에 오르는 선수들이 나온다. 선수층이 얕은 KBO리그 역시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짐을 지울 때가 있다. 지난해에는 어떤 선수들이 버두치 효과의 대상인 ‘버두치 리스트’에 올랐는지, 그들의 미래는 어떨지 한 명씩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 명단 선정 기준: 2016년 100이닝 이상 소화, 전년대비 30이닝 이상 & 30% 이상 이닝 소화량 증가, 혹은 근접한 수준.
** 이닝 산정은 KBO리그 정규시즌, 올스타전, 포스트시즌 및 퓨처스리그 경기를 대상으로 함.
*** 1년차 선수의 경우 전년도 기록으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기록실에서 제공하는 아마추어 경기 기록을 사용.

 

1. 주권(kt 위즈), 1995년 5월 31일생(만 21세)

2017 WBC에도 출전한 주권(사진=kt 위즈)

2015년: 89.1이닝
2016년: 134이닝
증가량: 44.2이닝, 50.0%

주권은 만 21세의 어린 나이에 2016년 kt 위즈의 선발 로테이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팀의 투수진 깊이가 부실한 탓에 기회를 따낸 것이기도 하지만, 창단 최초 완봉승이라는 값진 기록을 따내는 등 실력 면에서도 선발진의 일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에는 중국 WBC 대표팀에 승선하며 기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주권은 2017년에도 계속해서 kt 위즈의 선발 로테이션 한 축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가 짊어진 짐이 나이보다 너무 무겁다는 것이다. 아직 만 21세의 젊은 선수이기에 급격히 늘어난 투구수를 견뎌낼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최근 추세는 오히려 젊은 투수일 수록 투구수를 더욱 관리해주는 쪽이다.

다행히 kt의 신임 사령탑 김진욱 감독은 투수들의 관리를 중요시하는 지도자다. 시즌 초반 쾌조의 출발을 선보인 kt인만큼, 주권의 어깨가 한층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2. 박세진(kt 위즈), 1997년 6월 27일생(만 19세)

형만큼 유명한 아우, 박세진(사진=kt 위즈)

2015년: 67.1이닝(고교 3년차)
2016년: 102.2이닝
증가량: 35.1이닝, 52.5%

박세진은 형 박세웅과 더불어 차세대 KBO리그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드래프트에서는 삼성에 지명된 최충연과 함께 경북고의 에이스로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삼성이 고민 끝에 최충연을 지명하면서 박세진은 전국 단위 지명권을 가진 kt 위즈의 1차 지명자가 됐다.

박세진은 만 20세도 되지 않았음에도 1군 정규 경기에 7번이나 출장했다. 그 중 3번은 선발 경기였고 최고 투구수는 90구(4월 28일 롯데전)에 달했다. 그가 지닌 실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실력에 취하기보다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다.

박세진은 올해도 퓨쳐스리그에서 출발하며 담금질을 이어가고 있다. 사령탑 교체와 함께 kt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박세진의 미래가 kt의 청사진 속에서 빛을 발하길 기대해 본다.

 

3. 장현식(NC 다이노스), 1995년 2월 24일생(만 22세)

NC의 든든한 마당쇠, 장현식(사진=NC 다이노스)

2015년: 43이닝
2016년: 114.1이닝
증가량: 71.1이닝, 165.9%

6월 1군의 호출을 받은 장현식은 불펜으로 기용되다가 9월부터 선발의 한 축을 맡았다. 10월 4일 넥센전에서는 8.2이닝 1실점의 괴력투를 펼치며 자신의 이름을 팬들의 머리 속에 당당히 새겼고, 기세를 몰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도 1경기씩 출장했다.

장현식은 최고 시속 150km의 빠른 공이 돋보이는 투수다. 만 21세의 젊은 나이에 1년만에 퓨처스리그, 정규시즌, 포스트시즌까지 한달음에 내달은 그의 성장속도는 많은 이들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좋은 기세만을 생각하기에는 지난해 그가 소화한 이닝 숫자가 너무 많아 보인다. 정규시즌에서만 76.1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4월이 아닌 6월부터 쌓아올린 것이다.

2017시즌 개막 5경기만에 장현식은 두 차례 중간계투로 등판해 7이닝을 소화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기용이 이어진다면 시즌 종반에는 얼마나 많은 투구수를 소화하게 될 지 우려된다. 올해 NC의 중요 전력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만큼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4. 박주현(넥센 히어로즈), 1996년 6월 19일생(만 20세)

깜짝 등장 이후 아쉬운 후반기를 보낸 박주현(사진=넥센 히어로즈)

2015년: 24.1이닝
2016년: 122.1이닝
증가량: 98이닝, 402.7%

박주현은 신재영의 뒤를 잇는 지난해 넥센 히어로즈의 최고 신성이다. 류현진을 연상시키는 체형과 완급조절로 5월까지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6월과 7월 들어 크게 부진하며 아직 가다듬을 곳이 많은 유망주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1996년생인 박주현은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2014년 말 팔꿈치 통증을 겪었고, 2015년 전반기에는 재활만을 했다. 이 탓에 2015년에는 24.1이닝만 소화했다. 2016년의 이닝 증가량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이를 두고 1년 전 쉰 탓에 명단에 오른 것이라고 하기보다, 1년 전 재활을 한 선수이기 때문에 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작년 후반기 성적 하락세가 눈에 띈 선수인만큼, 조상우의 아픔이 있는 넥센인만큼 올해는 더 신중한 관리가 요구된다. 또 냉정히 말해 성적이 작년 후반기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1군에서 그를 계속 기용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5. 박진형(롯데 자이언츠), 1994년 6월 10일생(만 22세)

롯데의 5선발 카드로 등장한 박진형(사진=롯데 자이언츠)

2015년: 53.1이닝
2016년: 97이닝
증가량: 43.2이닝, 81.9%

선발 공백으로 고생했던 2016년 롯데 자이언츠 투수진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던 좋은 점은 박진형의 등장이었다. 5.81의 ERA는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 신예 투수 발굴에 어려움을 겪던 롯데로서는 박진형만한 인재의 발견도 오랜만의 희소식.

박진형의 부상 이력에는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입단 1년차였던 2013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수술)을 받은 그는 2014년을 통채로 재활의 시기로 보냈다. 재활을 마친 2015년 53.1이닝, 복귀 2년차인 지난해에는 97이닝을 던졌다. 순조롭다면 순조롭다고 할 수 있는 절차다. 다만 이닝 증가량은 확실히 눈에 띄는 만큼 그의 팔꿈치 건강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처럼 선발과 불펜을 오가게 된다면 건강에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올해는 4월 2일 NC전에 등판해 개막 위닝시리즈를 이끌기도 했지만, 투구수 탓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조원우 감독이 직접 ‘체력이 약해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만큼, 합리적인 기용과 함께 순조로운 성장을 기대해볼만 하다.

 

6. 배재환(NC 다이노스), 1995년 2월 24일생(만 22세)

선동렬을 닮은 투구폼의 ‘배동렬’ 배재환(사진=NC 다이노스)

2015년: 9.1이닝
2016년: 81이닝
증가량: 71.2이닝, 767.9%

배재환은 드래프트 직전 팔꿈치 수술을 받았음에도 NC 다이노스에 2차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다. 그만큼 NC가 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눈에 띄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입단 직후인 2014년 재활에 전념했지만,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다시 1년 가까이 재활을 더 해야 했다. 그가 1군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16년이었다.

6월 초까지 퓨처스리그에서 선발로 등판하던 배재환은 7월부터는 구원 투수로 나섰다. 1군에서는 계속 구원 투수로 나섰다. 이닝 증가량이 768%에 달하지만, 배재환이 2016년 소화한 이닝 절대량은 앞서 소개된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편이 아니다. 그만큼 ‘버두치 효과’의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며, 건강에 대한 우려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만 어린 나이에 2년 가까이 재활을 한 선수인만큼 장기간 건강 관리에 소홀치 않아야 할 것이다.

올해도 배재환은 1군에서는 구원 등판을 할 것으로 보인다. 4월 4일 한화전에서도 3회부터 구원 등판해 3.2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앞서 같은 팀의 장현식과 마찬가지로 배재환의 기용법 역시 조심스럽게 지켜봐야할 듯하다.

 

7. 김주한(SK 와이번스), 1993년 2월 3일생(만 24세)

2016년 후반기 12셧다운(2멜트다운)을 기록한 특급 불펜 김주한(사진=SK 와이번스)

2015년: 51.1이닝(대학 4년차, 고려대-연세대 정기전 포함)
2016년: 85.1이닝
증가량: 34이닝, 66.2%

고려대학교의 에이스였던 김주한은 프로 입단 첫해부터 팀의 불펜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 시즌 후반기 경기에서 김주한이 선보이는 안정감은 팀 마무리 박희수의 그것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였다.

대학 시절과 달리 구원 투수로 나서면서, 김주한은 1군에서 많지 않은 이닝을 소화했다(39경기 59.1이닝). 문제는 퓨처스리그 기록을 더하면 그 숫자가 85.1이닝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구원 투수가 1년간 59.1이닝이 아닌 85.1이닝을 소화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 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주한의 경기 내 등판 시기, 소화 이닝 숫자는 오락가락하기 일쑤였다. 올해 그의 보직과 등판 시기를 더 일정하게 한다면 앞으로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SK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트레이 힐만 감독은 커리어 내내 혹사와는 큰 연관이 없었다. 팀에서도 올해 당장의 성적보다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주한의 기용 방향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8. 김건태(넥센 히어로즈), 1991년 10월 2일생(만 25세)

넥센의 오랜 기대주, 김건태(사진=넥센 히어로즈)

2015년: 49이닝
2016년: 82.1이닝
증가량: 33.1이닝, 68.0%

과거 김정훈이라는 이름을 쓰던 김건태는 입단 당시 팀의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그러나 토미존 수술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상무에서 뛰며 훗날을 기약했다. 2015년 넥센에 복귀한 김건태는 지난해 후반기 3.21의 준수한 ERA를 기록하며 다시 예전의 기대감을 되살리고 있다.

9월 1군에서 선발 등판한 두 경기를 제외하면 김건태의 이닝 소화량은 70으로 상당히 줄어든다. 82.1이닝이라는 한 시즌 소화량도 절대량만 봐서는 많은 편이 아니다. 때문에 김건태를 ‘버두치 효과’의 대상이라고 하는 건 어쩌면 무리가 있는 이야기다. 다만 과거 토미존 수술을 받은 뒤 구속이 줄어들었던 경험이 있는 선수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로 기용하는 것은 절대로 나쁜 방법이 아니다.

 

기록 출처: STATIZ, KBO,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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