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공식 트위터)
104.2마일의 사나이, 그의 이름은 라이언 헬슬리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헬슬리는 지난해 54경기 출전 64.2이닝 평균자책점 1.25 19세이브를 올렸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무려 99.6마일. 100개 이상의 포심을 던진 472명의 투수 가운데 헬슬리의 포심은 3번째로 빨랐다.
헬슬리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체로키족의 피가 흐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시 스타디움에서 약 400마일 떨어진 오클라호마주 탈레콰에서 자란 헬슬리는 집 뒷마당에서 위플볼(Wiffle-Ball)을 가지고 놀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의 헬슬리는 공을 던지는 것보단 치는 걸 더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헬슬리는 주연보다는 조연, 아니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스카우트들의 발걸음은 뜸했고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건 노스이스턴 주립대 딱 한 곳이었다. 하지만 2014년 여름부터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서머리그에 출전했던 헬슬리는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7.2이닝을 소화하면서 14개의 삼진을 잡았다. 이듬해 대학 2번째 시즌에서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12경기를 선발 출전해 3.53의 평균자책점과 13.4개의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했다.
<폭스 스포츠>에 따르면 2015년 드래프트에 앞서 헬슬리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건 단연 카디널스였다. 카디널스는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농구 등을 병행했던 헬슬리의 운동능력에 주목했다. 당장 패스트볼 구속은 90마일 초반으로 평범했지만 워낙 운동능력이 뛰어났기에 길잡이만 잘 해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세인트루이스로 초대해 따로 워크아웃을 진행하는 등 다른 팀들보다 적극적으로 애정도 표했다. 결국 카디널스는 그해 5라운드 지명권을 헬슬리에게 사용했다. 노스이스턴 주립대 역사상 가장 높은 지명을 받은 헬슬리는 그해 여름 98마일의 패스트볼을 뿌리며 곧장 기대에 부흥했다.
물론 프로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2020년에 팀 내 유망주 랭킹 5위까지 올랐지만 더블A와 트리플A에서 시작된 제구 불안은 지속적으로 헬슬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불펜으로 나섰던 첫해, 헬슬리는 24경기 출전 36.2이닝 2.95의 평균자책점을 올렸다. 하지만 이듬해 단축시즌에서는 또다시 많은 볼넷을 내주며 퇴보했다.
2021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균 이하였던 포심의 wOBA는 예년보다 개선됐다. 하지만 영점은 계속 흔들렸다. 2021년 헬슬리가 올린 5.13개의 9이닝당 볼넷은 45이닝 이상을 소화한 내셔널리그 불펜 가운데 9번째로 높았다. 이처럼 제구 안된 97마일의 패스트볼은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3년 동안 헬슬리의 포심 헛스윙률은 15.6%로 리그 평균(21.8%)에 한참 동 떨어져 있었다. 카디널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표 1. 헬슬리의 19~21시즌 성적표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헬슬리가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0.69. 같은 기간 39이닝을 소화하면서 무려 57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비록 후반기에는 다소 주춤했지만 내로라하는 불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충분했다. 지난해 헬슬리가 올린 1.25의 평균자책점과 2.0의 팬 그래프 승리 기여도는 불펜 투수 기준 각각 리그 전체 6위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39.3%의 탈삼진 비율 역시 에드윈 디아스(50.2%), 데빈 윌리엄스(40%) 다음이었다. 이러한 대반전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무릎 통증, 이제는 안녕
2022시즌 시작에 앞서 헬슬리는 무릎 수술을 받았다. 왼쪽 무릎은 2020년부터 시작해 꽤 오랜 시간 헬슬리를 괴롭혔다. 앞발을 디디는 과정에서 발생한 통증은 알게 모르게 투구폼에 영향을 줬고 이는 그간 헬슬리가 많은 볼넷을 내줬던 주원인이었다.
“이제 무릎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공을 던지는 것 외에 신경 쓸 게 완전히 사라진 셈이죠” – 라이언 헬슬리(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
무릎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헬슬리는 투구 과정에서 좀 더 하체를 단단하게 지지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투구폼은 이리저리 흔들렸던 헬슬리의 영점을 바로잡았다. 한 시즌 만에 볼넷 비율이 13.1%에서 8.4%로 1.5배 이상 줄어들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도 직전 97.4마일에서 99.6마일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10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은 정규 시즌 기준 총 3368개였다. 이중 237개가 헬슬리의 손에서 나왔다. 데뷔 때부터 리그 최상위권의 회전수와 인상적인 수직 무브먼트를 자랑했던 헬슬리의 포심은 정교함과 스피드가 더해지자 상대 타자들을 집어 삼켰다. 포심의 헛스윙률은 2021년 대비 10%p이상 상승한 28.6%. 지난해 300개 이상의 포심을 구사한 302명의 투수 가운데 헬슬리의 포심 wOBA는 전체 6위였다.
표 2. 헬슬리의 포심 패스트볼 변화
물론 슬라이더와 커브라는 든든한 아군이 함께 했기에 헬슬리의 포심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슬라이더와 커브라는 든든한 보좌관
헬슬리가 최대 94마일까지 나오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였다. 당초 헬슬리의 세컨피치는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받은 커브였다. 하지만 3년 전 커브를 던질 때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던 헬슬리는 고속 슬라이더에 좀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2020년 2월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와의 인터뷰에서 헬슬리가 남긴 말이다.
“2019년부터 커브의 느낌이 평소 같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없었죠. 그러면서 커터-슬라이더 타입에 좀 더 의존했던 거 같아요” – 라이언 헬슬리 –
포심이 얻어맞는 와중에도 헬슬리의 슬라이더는 매년 좋은 결과를 냈다. 작년도 마찬가지였다. 지속적으로 우타자의 바깥쪽을 공략했던 슬라이더의 헛스윙률은 53.5%에 달했고 피안타율 역시 0.111로 아주 훌륭했다.
커브의 활약도 눈부셨다. 지난해 42.4%의 헛스윙률과 함께 피안타를 단 한 개도 내주지 않았던 커브는 어떻게 보면 고속 슬라이더보다도 더 날카로운 창이었다. 여전히 커브를 많이 쓰진 않았다. 지난해 헬슬리의 커브 구사율은 간신히 10%를 넘겼다(10.3%). 하지만 포심과 정반대의 톱스핀을 가지면서 지난해 구속 차가 18.9마일로 더 크게 벌어진 낙차 큰 커브는 포심의 완벽한 파트너이자 말 그대로 ‘Untouchable’이었다.
헬슬리의 포심/커브 오버레이
지난해 헬슬리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앤드류 키즈너는 헬슬리의 공격적인 피칭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키즈너는 “‘너보다 내 구위가 훨씬 뛰어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이게 바로 헬슬리의 피칭 방식이죠”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난해 헬슬리가 써낸 반전 스토리에는 앞서 이야기한 많은 변화와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복귀한 마이크 매덕스 투수 코치는 헬슬리에게 ‘Hellz Bellz’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리고 지난 9월 7일에 있었던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헬슬리는 자신의 별명과 똑닮은 음악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원조’, 트레버 호프먼의 종소리는 그가 강속구와 작별한 뒤 울려퍼졌다. 헬슬리의 종소리는 다르다. 최고 104.2마일의 포심과 함께하는 ‘헬슬리표’ 지옥의 종소리(hells bells)는 이제 경기장 가득 채울 준비를 마쳤다.
참고: The Athletics, Fangraphs, Baseball Savant, Fox Sports, St. Louis Post-Dispatch
야구공작소 이한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신하나,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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