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공을 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투타 모두는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이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 몇 년간 야구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 관점에서 바라봤다. 시작은 수비 시프트다.
과거의 시프트
수비 시프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4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감독 루 보드로가 테드 윌리엄스를 상대로 사용한 것이다. 좌익수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야수를 오른쪽에 배치한 모양인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는 당겨치는 타격을 잘했던 좌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겨냥한 것이다. 아직도 극단적인 당겨치기를 하는 타자들을 상대로 야수들을 한쪽에 몰아넣는 시프트는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라고 불린다.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 (사진-이베이)
테드 윌리엄스에게 나온 것과 같은 극단적인 시프트는 그 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 타자의 성향이나 볼 카운트에 따라서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조금씩 바꾸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힘이 약한 타자를 상대로 외야수가 전진 수비를 하거나 타자에게 불리한 볼카운트에는 야수들이 밀어치는 타구를 대비해 수비 위치를 옮긴 것이 그 예시다.
수비 시프트 사용의 급증
수비 시프트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타자를 대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했고 그 빈도가 높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야 모든 구단이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수비 시프트 사용 횟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그리고 증가한 수비 시프트는 메이저리그 팀들의 경기 전략을 바꿨다.
더 많은 땅볼 혹은 더 적은 땅볼
수비 시프트는 타자가 땅볼을 쳤을 때 효과가 크다. 타자가 친 뜬공은 수비수를 위로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수비 시프트를 사용한 팀 중 일부는 땅볼 유도를 위해 싱커나 투심 패스트볼 구사율을 높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피츠버그 파이리츠다. 피츠버그는 2013년과 2014년에 팬그래프 기준 수비 시프트 사용 횟수가 메이저리그 전체 6위에 달했다. 피츠버그가 이 시기에 영입한 주요 투수들의 싱커 구사율 변화는 다음과 같다.
또한 부상으로 2012시즌을 일찍 마친 당시 피츠버그 소속 찰리 모튼 역시 2012년 37%였던 싱커 구사율을 부상에서 복귀한 2013년에는 57%까지 상승시켰다.
땅볼을 잘 던지는 투수 대신 땅볼을 덜 치는 타자에 주목한 팀도 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넓은 파울 지역과 깊은 외야 탓에 대표적인 투수 친화 구장으로 알려진 콜로세움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쓴다. 일찍이 땅볼을 덜 치는 타자에 주목한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가 땅볼이 증가하던 시기에 오히려 땅볼이 감소했다.
위 그래프의 파란색 선은 리그 전체의 땅볼 비율, 주황색 선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땅볼 비율이다. 특히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오클랜드는 매년 리그에서 가장 낮은 땅볼 비율을 기록했다.
투수들의 우세
수비 시프트가 있을 때 타자들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과 수비 시프트가 없을 때 타자들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을 비교했다. 짐작했겠지만 파란색 선이 수비 시프트가 없을 때의 기록이고 주황색 선이 수비 시프트가 있을 때의 기록이다. 기존의 타격 방식으로는 타자들의 성적이 떨어질 것이 당연했다.
또한 해가 갈수록 투수들의 구속은 증가하고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변화는 커졌다. 즉 타자들은 해마다 치기 어려워지는 공을 상대하면서 수비수들의 위치까지 신경 써야 했다. 수비수가 없는 공간에 공을 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타자가 의도적으로 수비수가 없는 공간에 공을 보내기도 어려울 뿐 더러 투수들도 시프트에 따라 타자가 친 공이 수비수가 많은 곳으로 가도록 투구 전략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수비 시프트를 피해 단타 생산에 그친다면 바로 그것이 상대가 원하는 것이다.
타자들의 반격
2015년부터 스탯캐스트가 메이저리그에 들어오면서 타자들이 변했다. 기존에 측정되지 않았던 데이터는 결과 중심의 기록을 과정 중심의 기록으로 바꿨다. 조금 떨어지는 타율은 상관없다. 타자들은 땅볼 대신 강한 뜬공과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의 땅볼 비율은 2015년에 최고치를 찍은 후 빠른 속도로 감소 중이다. 타자들은 안타를 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단타 몇 개를 연속으로 때리는 것보다는 장타 한두개를 통해 득점하는 방식에 더 주목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자책점은 수비 시프트가 자주 쓰이던 시기에 낮아졌지만 2015년부터 높아졌다.
투수들의 재반격
타자들이 안타 개수는 감소했을지라도 하나하나가 주는 충격은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 투수들은 타자가 친 공을 많이 아웃으로 연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타자가 느린 타구를 치게 하는 것에도 주목했다. 타자들의 스윙 궤도나 홈플레이트까지 움직인 공의 각도, 공의 회전 등 여러 데이터가 사용됐다.
하이 패스트볼은 속구를 높게 던지는 전략이다. 높게 구사된 속구가 헛스윙을 많이 끌어낼 수 있다는 자료는 투수들이 적극적으로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이 10개 이상 구사된 구역별 Whiff%를 보면 스트라이크 존의 낮은 곳 보다 높은 곳에서 더 많은 헛스윙을 유도했다. 특히 존의 바로 윗부분이나 바로 아랫부분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뚜렷하다.
스위퍼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횡으로 크게 휘는 변화구를 지칭한다.
2021년 메이저리그의 스위퍼와 스위퍼가 아닌 변화구의 타구 분포를 보면 스위퍼는 다른 변화구에 비해 팝업 플라이를 더 많이 유도한다. 이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투수로는 LA 다저스의 훌리오 유리아스나 탬파베이 레이스의 제이슨 아담이 있다.
증가하는 TTO
이 모든 변화가 수비 시프트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후 야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야수의 개입이 없는 세 가지 결과인 삼진, 볼넷, 홈런을 일컬어 TTO라고 한다.
리그의 삼진, 홈런, 볼넷 개수를 리그 전체 타석 수로 나눈 TTO%는 꾸준히 증가했다. 즉 야구는 해가 갈수록 역동적인 장면이 줄어들고 있다. 팬들은 변한 야구를 지루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수비 시프트 금지
이와 같은 상황을 타파하고자 지난 2022년 9월 10일 메이저리그는 2023년부터 수비 시프트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사무국은‘내야에 최소 4명의 야수가 있어야 하고 2루를 기준으로 양쪽에 2명의 선수가 있어야 하며 모든 내야수는 내야 흙을 밟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해 극단적 시프트를 금지한다. 더 이상 옛날처럼 그라운드 한 곳에 수비수들이 모인 장면을 볼 수 없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던 야구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개입했다. 과연 수비 시프트 금지는 타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또 투수들과 야수들은 시프트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내년 메이저리그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야구공작소 최민석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오연우, 전언수
기록 출처= 팬그래프 닷컴, 베이스볼 서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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