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야구 코치? 트레이닝 장비의 세계

<<사진 출처 = 유고프로 베이스볼>>

2019년 이천에서 LG컵 여자 야구 대회가 열렸다. 당시 필자는 우연히 미국 대표팀 코치와 대화 나눌 기회를 얻었다. 문득 코치가 질문했다. “왜 한국 선수들은 스트레칭할 때 제이 밴드를 쓰지 않나요?” 제이 밴드란 손목에 감는 벨크로에 고무 줄이 연결된 장비를 말한다. 주로 투수들이 등판 전 어깨 스트레칭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때 얼렁뚱땅 넘어갔던 질문은 시간이 흘러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10월, 강릉에서 열린 리틀야구 대회에 방문했다. 모처럼 ‘깡’ 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구는 힘차게 날아갔다. 파울이었다. 학부모석에서 이러한 대화가 들렸다.

“아, 잘 맞았는데 아깝다.”

“정타만 나오면 파울로 가더라. 어딜 보고 휘두르는지. 허허.”

“조만간 레슨 한 번 데리고 가셔야겠네.”

만약 이 장면을 미국 코치가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라인 드라이브 프로’로 훈련해 보라고 답했을 것이다. 라인 드라이브 프로는 배트에 부착하는 작은 장치다. 그 장치에는 테니스 공을 하나 끼울 수 있다.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면 테니스 공이 장치에서 빠져나온다. 공은 타자의 스윙 궤적을 따라 뻗어나간다. 타자는 본인의 스윙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궤도를 조정할 수 있다.

앞서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개인 레슨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야구 훈련 문화는 팀 단위의 트레이닝이 주를 이룬다. 자연스럽게 사설 일대일 레슨이 최고의 개인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미국에도 프로선수 출신이 운영하는 트레이닝 센터가 많다. 하지만 트레이닝 툴을 활용해 선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도 정착되어 있다.

 

장비 개발의 원천, 코치 컨벤션

미국에서는 매년 전미야구코치협회(ABCA) 클리닉이 개최된다. 라인드라이브 프로가 처음 소개된 장소 역시 2019년 댈러스에서 열린 컨벤션이었다. 해당 컨벤션에는 약 6,000명이 넘는 코치들과 300개의 장비 회사가 참가했다. 코치들은 장비 부스를 돌아다니며 직접 사용도 해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는 장비 개발자 역시 대부분 코치라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선수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레슨이 아닌 장비 개발을 택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트레이닝 장비는 코칭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선수 스스로 코치가 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정확한 메커니즘이 아니면 장비를 아예 사용할 수 없거나, 장비 자체에서 피드백을 줄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트레이닝 장비는 미국의 야구 관련 산업에서 하나의 세분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다양한 트레이닝 장비

아래 사진 왼쪽의 장비는 로프 배트다. 로프 배트는 가죽으로 된 헤드와 로프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티에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진 스머시 볼을 올려놓고 타격하는 데 사용된다. 로프 배트를 활용하면 대부분의 타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타자가 배럴을 미리 떨구고 올려치려 하면 로프가 흐늘해져  공을 맞힐 수 없다. 위에서 찍어 내려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턴 동작이 빠르게 이루어져야만 로프의 장력이 늘어난다. 그래야 로프에 연결된 헤드가 딸려 나오며 공을 맞힐 수 있다. 조시 벨, 크리스티안 옐리치, 알렉스 버두고 등이 로프 배트를 활용해 훈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프 배트(좌)와 킹 오브 더 힐(우)>

 

킹 오브 더 힐은 지면반력을 기르기 위한 도구다. 투수가 흔히 실수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뒷다리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것이다. 앞다리를 드는 리프팅 동작 이후에는 뒷다리로 투구판을 밀어내며 지면반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홈플레이트를 향해 직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투구판을 충분히 밀어냈을 경우 킹 오브 더 힐은 ‘딸깍’하는 소리를 낸다. 반면 지면반력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현재 킹 오브 더 힐은 MLB 팀 30개 중 27구단에 비치되어 있다.

위플볼 머신도 빼놓을 수 없다. 퍼스널 피칭머신이라 불리는 이 장비는 작은 플라스틱 공(위플볼)을 날리는 기계다. 변화구 기능도 있어 주로 타자들이 사용한다. 위플볼을 단순히 치고 잡는 것만으로 눈과 손의 협응력을 크게 기를 수 있다. 이와 짝을 이루는 장비는 웹 글러브와 스키니 배럴 배트다. 웹 글러브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는 작은 글러브다. 스키니 배럴 배트는 굉장히 얇은 배트를 말한다. 두 장비를 활용해 위플볼을 잡고 치려면 눈과 손의 협응이 필수적이다. 정식 규격의 야구공을 글러브로 잡고 배트로 치는 것이 쉽게 느껴질 정도다. 닉 솔락은 코로나 펜데믹 초기 위플볼 머신을 마당에 들여놓고 타격 훈련을 계속했다. 디 스트레인지 고든도 데뷔 전 위플볼 머신을 통해 수비 연습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미국도 하루아침에 트레이닝 장비 문화가 발전한 것은 아니다.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은 트레버 바우어다. 바우어는 고등학생 시절 숄더 튜브를 즐겨 사용했다. 긴 장대를 빙빙 돌리는 그의 모습은 매스컴으로도 소개될 만큼 큰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바우어는 숄더 튜브를 꾸준히 사용하며 대학 무대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 이제 미국에서는 어린 선수들도 숄더 튜브를 활용해 어깨를 단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우리나라는 훈련 도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이트가 적다. 현존하는 사이트도 대규모의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비 개발사 입장에서도 수요가 불확실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부담이 있을 것이다.

소비자의 지각된 위험 역시 걸림돌이다. 지각된 위험이란 제품 혹은 서비스 구매 전에 소비자가 느끼는 위험을 뜻한다. 일례로 매뉴얼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장비를 구매해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공간과 시간 역시 문제다. 트레이닝 장비의 잠재적 소비자는 대부분 관여도가 높다. 다시 말해 집단보다는 개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프로야구단은 이를 사회 공헌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연고지 내 야구부에 배트나 글러브를 지원하는 활동도 물론 좋다. 여기에 훈련 장비를 추가로 지원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훈련 매뉴얼까지 같이 제공하면 금상첨화다. 선수들이 직접 출연해 영상을 촬영하고, 원 데이 클래스까지 열면 선수들은 훨씬 질 좋은 훈련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의 지각된 위험을 낮춘다.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훈련 문화를 개선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 이는 오직 프로야구단만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더 나아가 장비를 자체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느 장비에나 개선점은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로프 배트의 예를 들어보자. 로프 배트는 전용 스머시 볼로만 타격해야 한다. 정식 야구공은 너무 단단해서 가죽 헤드가 찢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배럴을 카본으로 만든다면? 실제 야구공을 타격할 수 있을 것이다. 배트 손잡이를 탈부착으로 제작해도 된다. 그럴 경우 다양한 배트를 갈아 끼워가며 훈련할 수 있다. 로프 배트뿐 아니라 스키니 배럴 배트, 오버로드/언더로드 트레이닝 배트(배트 스피드를 훈련하기 위한 장비로, 무거운 배트와 가벼운 배트 두 자루로 제작됨)을 하나의 손잡이에 모두 끼울 수 있게 된다. 장비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자생이 화두로 떠오르는 프로야구단이 해봄직한 사업이다.

정리하면 야구 트레이닝 장비는 선수에게 실력 향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선수 스스로 코치가 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한다. 구단에게는 사회 공헌의 기회이자 비즈니스 모델로서 작용한다. 앞으로 다양한 트레이닝 장비가 한국 야구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양재석,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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