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가 공개됐다. 영화는 운동선수들이 식단을 채식으로 전환한 이후 선보인 엄청난 퍼포먼스 변화를 담고 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야구선수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와 KBO 리그에서는 채식하는 야구선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무슨 이유로 채식을 결심했을까?
채식은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야구는 수많은 반복 동작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다. 투수는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일주일에 수백 개씩 공을 던지고, 타자들 역시 같은 폼으로 수천 번의 스윙을 한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신체에는 염증이 따라온다. 염증은 통증을 유발하고 회복 속도를 늦춘다. 따라서 염증을 잘 관리하는 것은 회복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투수들이 등판 후 아이싱을 하거나 고가의 크라이오 테라피 장비를 이용하는 것도 염증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염증을 유발하는 데는 반복 운동뿐만 아니라 식습관도 영향을 준다. 고기에는 퓨린(purine)이라는 화합물이 대량 함유되어 있다. 퓨린은 소화 과정에서 요산을 생성하는데, 요산이 관절에 쌓이면 염증을 유발한다. 반면 식물성 식단에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이 풍부하다. 여기에 포함된 항산화 성분이 염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두 식단에 포함된 영양소가 신체 회복에 있어 정반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채식을 통해 회복을 앞당긴 사례로는 스펜서 스트라이더가 있다. 스트라이더는 2019년 토미 존 수술 회복 과정에서 채식을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가족력으로 인한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스트라이더는 식단을 연구하며 운동선수들이 단백질에 과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비타민과 미네랄 섭취도 단백질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식단을 적용한 스트라이더는 평균 2년 정도 걸리는 회복 기간을 11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었다.
그럼 단백질은?
야구선수의 신체 역시 다른 종목처럼 근육을 필요로 한다. “야구선수 이전에 운동선수가 되어라(be an athlete first)”라는 말처럼, 탄탄한 피지컬은 포지션을 막론하고 선수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근육을 합성하려면 단백질이 필요하다. 채식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도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거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뛰었던 투수 라이언 셔리프는 간단한 해답을 내놓았다. 당장 마트에 가서 아무 콩이나 집어 들고, 렌틸콩을 조금 섞어서 먹으면 적어도 30g의 단백질은 거뜬히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육류와 생선을 먹지 않았던 노경은 역시 콩고기를 단백질원으로 삼았다. 추가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식물성 단백질 파우더도 챙겨 먹었다고 밝혔다. 후에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그룹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대체육을 선수단 식단에 포함하는 등 식물성 단백질을 보다 쉽게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다.
그래서, 성적에 도움이 될까?
결국 채식의 효용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성적 향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스펜서 스트라이더는 채식을 통해 충분한 회복을 거쳤고 2022시즌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반대로 앞서 언급한 노경은과 메이저리그의 무키 베츠와 같은 실패 사례도 존재한다. 노경은의 경우 채식 초기 반등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두 선수 모두 성적 부진에 빠졌다. 이후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한 뒤에야 본래의 퍼포먼스를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성적 변화의 원인이 식단 때문인지, 다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채식을 완벽한 식단이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2022 시즌 스펜서 스트라이더 세부 지표>
출처 = 팬그래프닷컴
사실 채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건강하고 완전한 식단은 아니다. 채식 역시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타민 b12다. 채소에서는 얻을 수 없어 보충제의 형태로 섭취해야 한다.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은 필수 아미노산이 모두 포함된 완전단백질인 반면, 식물성 단백질은 불완전 단백질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다만 이는 아직 학계에서 치열한 논의가 오가는 중이며, 타당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사항이다.
섭취 칼로리 역시 문제다. 채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일일 섭취 칼로리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무키 베츠가 10kg 넘게 살이 빠지자 사람들이 우려를 보낸 것도 채식이 동반한 급격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채식/육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저스틴 터너는 2015년부터 유제품을 먹지 않고 있다. 그는 유제품을 끊은 뒤로 염증 완화, 수면 질 향상 등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야자수 방송에서 최현일 선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LA 다저스 구단은 몸을 만드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에 케첩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마이너리그 구단 역시 (마이너리그 스테이크라고 불리는) 피넛 버터&젤리 샌드위치로만 구성된 선수들 식단을 점차 개선하는 중이다.
‘몸이 재산이다’라는 말 그대로 야구선수는 신체를 움직이며 퍼포먼스를 낸다.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연료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연구도 주목받고 있다. 채식하는 야구선수들은 오늘도 기존의 통념에 맞서 아직 닦이지 않은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 충분한 데이터가 쌓인다면 팀 식단에서 고기를 찾아볼 수 없는 날도 올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양재석,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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