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조우현] 앤드류 매커친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리더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 2013년, 2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던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중심에는 빼어난 성적과 훌륭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던 매커친의 존재가 있었다. 이후로도 매커친은 팀내 최고의 선수이자 믿음직한 리더로서 피츠버그의 호시절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이 매커친의 입지가 근래 들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선장의 입지
다소 부진했던 출발에도 금세 페이스를 회복하면서 2015 시즌을 마무리했던 매커친은, 그러나 그 해 오프시즌부터 상당한 수의 트레이드 루머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하락세가 완연해진 중견수 수비력에 대한 의문부호도 늘어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피츠버그가 그를 트레이드해 보내거나, 적어도 코너 외야로 수비 위치를 옮겨주어야 한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매커친은 2016년에도 파이리츠의 선장으로 남았다. 포지션 또한 여전히 중견수였다. 달라진 점은 떨어진 수비력을 보완하기 위해 수비 위치를 살짝 앞으로 당겼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지난 시즌은 매커친에게 더 많은 과제만을 남겨주었다. 2016년의 맥커친은 공수 양면에서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우선, 우수한 편에 속했던 선구안이 평범해지고 말았다. 12%대를 유지했던 BB%는 10.2%로 감소했고, 동시에 K%는 4%가량이 증가했다. 현격하게 떨어진 출루율과 타율 탓에 슬래시 라인은 .256/.336/.430으로 내려앉았다. 외야에서도 -28의 DRS와 -18.7의 UZR을 기록하면서 리그 최악 수준의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다. 매커친의 급격한 퇴보와 함께 팀의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거품이 되었다
갑작스런 슬럼프
<앤드류 매커친의 타격 성적>
지난 시즌, 매커친의 타격 지표는 HR/FB%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확연하게 내리막을 걸었다. 특히, BABIP의 낙폭은 눈에 띄는 수준이었다.
본래 매커친은 파워를 겸비한 라인드라이브 히터로서, 빼어난 타구의 질을 바탕으로 높은 BABIP를 꾸준히 기록하는 유형의 타자였다. 실제로 그가 2015 시즌까지 기록했던 통산 BABIP는 그간의 리그 평균(.299)에 비해 3푼 이상 높은 .336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시즌, 매커친은 리그 평균인 .300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297의 BABIP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단순히 운이 없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선구와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하락세가 뚜렷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과연 매커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장에게 무슨 일이
2015 시즌 개막을 앞둔 어느 날, 매커친은 무릎에서 이상을 느꼈다. 본래 매커친은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이동시키는 역동적인 타격폼을 바탕으로 작은 체격과 상반되는 강력한 타구를 만들어내던 선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의 무릎은 기존의 역동적인 타격 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결국 2015 시즌 들어 매커친은 무게중심의 이동을 덜 활용하여 무릎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스윙을 뜯어고쳤다.
이것이 뒤이어 벌어진 악순환의 발단이었다. 중심 이동을 이전만큼 활용하지 않게 되면서 매커친의 스윙에 담긴 파워는 줄어들었다. 매커친은 장타를 의식한 스윙의 빈도를 높이면서 예전과 비슷한 수준의 장타력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말았다. 장타를 의식한 강한 스윙은 그의 정교함을 갉아먹어버렸다.
2016 시즌이 개막하자, 타격의 정확도가 떨어진 그에게 상대 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수비 시프트를 걸어왔다. 마음이 급해진 매커친은 이전에 방망이를 내밀지 않던 선호하지 않는 코스의 투구에도 적극적으로 스윙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방망이를 내다보니 타구의 질은 좋을 수가 없었다. 내야 뜬공의 비율은 5.9%에서 12.6%로 급증했고, 약하게 맞은 타구의 비율도 13.1%에서 19.7%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 시즌 매커친에게서 나타난 BABIP의 급락은 이와 같은 타구의 질적 하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BABIP를 결정하는 요소에는 운만이 아니라 타구의 질 또한 포함되기 때문이다. 떨어진 BABIP의 배후에는 매커친의 무너진 스윙 폼과 망가진 타구의 질이 있었다.
슬럼프의 끝?
<매커친의 타구 세부 지표>
지독한 슬럼프를 겪은 매커친이지만, 시즌 말미에는 반등을 암시하는 듯한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확장 로스터가 운영되는 9월과 10월 동안 매커친은 볼넷과 삼진 비율에서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타격에서도 자신다운 모습을 되찾으면서 6개의 홈런과 22타점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 짧은 기간 동안의 성적으로 반등을 확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샘플 사이즈가 턱없이 모자라고(31경기), 확장 로스터에 합류하는 투수들의 수준이 기존의 선수들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매커친의 BABIP는 한층 더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매커친에게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이번 오프시즌 동안 매커친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혹독하게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2월 중순 경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다음 시즌에 대한 놀라운 뉴스들을 전해주었다.
“And, as it turns out, what they need me to be is the best right fielder in Major League Baseball.”
(파이리츠가 저에게 기대하는 모습, 그건 바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우익수입니다.)
실제로 매커친은 WBC 참가를 앞두고 출전한 몇 번의 스프링 캠프 경기에서 모두 우익수로 경기에 나섰다. 다소 불안한 수비력에도 악착같이 중견수 자리를 고집해왔던 그가 전면적인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같은 글에서 매커친은 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새로운 포지션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서, 예전 같지 않던 그의 타격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I tore my swing apart and rebuilt it from the ground up.”
(스윙을 완전히 뜯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는 슬럼프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스윙 폼을 다시 가다듬었다. 매커친의 이번 스프링캠프 동안의 타석에서 발견된 지난해와의 차이점은 바로 스윙의 각도에 있다. 그의 스윙은 지난해보다 작고 간결해졌고, 장타보다는 라인드라이브 생산에 적합한 다소 플랫(flat)해진 궤적을 그리고 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매커친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이번 오프시즌 동안 우익수로의 포지션 이동과 스윙 폼 교정을 통해 최적의 대응책을 실행했다. 과연 이것이 그의 부활을 이끄는 단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영원히 선장이고 싶은 매커친
현재 피츠버그 외야의 경쟁력은 상승 일로에 있다. 스탈링 마르테는 훌륭한 타격에다 두 시즌 연속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수비력을 겸비했고, 그레고리 폴랑코는 지난 시즌 장타력을 끌어올리면서 한층 더 좋은 선수로 발돋움했다(22홈런). 여기에 팀내 최고의 유망주인 오스틴 메도우즈마저 쾌조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판국이다. 문제는 매커친이다. 그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고, 계속해서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렸다. 이제 매커친은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매커친과 파이리츠의 계약은 2017년까지 확정되어 있다. 2018 시즌에는 파이리츠가 팀 옵션을 실행할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올 시즌에도 슬럼프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파이리츠가 팀 옵션을 실행하지 않거나 트레이드를 추진하면서 매커친을 떠나 보내려 들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이에 매커친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부터 단 하나의 소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진하고 있다.
“I’m a Pirate. I don’t want to be anything else.”
(저는 해적입니다. 다른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매커친은 지난 7시즌 동안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왔다. 작은 체격의 흑인 야구 선수가 지금의 자리에 서 있기까지 겪었을 난관들을 생각해보면, 지난 시즌의 고전은 충분히 극복 하고 남을 슬럼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파이리츠 외에는 어디에도 있고 싶지 않다는 매커친의 소망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참고: Baseball America,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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