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Icon Sportswire)
2020년 드래프트는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고교, 대학 시즌이 일찍이 종료됐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스카우트가 금지되며 많은 팀이 제한된 정보 속에서 싸워야만 했다. 드래프트 규모도 직전 40라운드에서 5라운드로 크게 축소됐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드래프트가 전개됐고 비교적 안전한 자원으로 평가받았던 대학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주니어 칼리지 출신을 포함해 그해 드래프트에서 뽑힌 대학 투수는 총 67명으로 가장 압도적이었다. 그렇다면 2년이 지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투수 유망주는 누구일까? 한국시간 7월 27일 수요일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은 2020년 드래프트 출신의 투수는 총 5명이었다. 그 가운데 전체 126순위로 지명을 받은 스펜서 스트라이더만이 팬그래프와 베이스볼 레퍼런스 모두에서 2.0 이상의 WAR(대체 승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올리고 있으며 현재 신인 투수 중에서 가장 높은 승리 기여도를 기록하고 있다.
표 1. 2020년 드래프트 출신 투수들의 성적표(참고: 개럿 크로셰는 2021년 성적)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출신의 스트라이더는 고교 시절 35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클렘슨 대학으로의 진학을 선택했다. 대학 무대에서 첫해 스트라이더는 51이닝을 소화하면서 70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그해 스트라이더가 올린 12.35개의 9이닝당 탈삼진은 클렘슨 대학 역사상 4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019시즌이 시작되기 앞서 팔꿈치 척골 측부 인대 손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한동안 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스트라이더는 크게 좌절했다.
“제가 팀에 도움을 줄 수 없는 그런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 스펜서 스트라이더(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
이때 스트라이더의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꾼 인물이 등장했으니 당시 클렘슨 대학의 스포츠 심리학자였던 코리 셰퍼였다. <AJC>에 따르면 셰퍼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중요시했다. 그는 고난과 역경을 경험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셰퍼는 선수들에게 목적의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아주 사소한 일을 하더라도 ‘왜?’라는 질문을 거듭하면서 의도와 목적을 명확하게 하길 당부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스트라이더는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기를 쓰면서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했고 이는 긴 재활 기간 동안 스트라이더가 불안감에 잡아먹히지 않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스트라이더는 한발 한발 나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여러 정보를 찾아보면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점검해나갔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8살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던 스트라이더가 약에 의존하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택한 것, 그리고 투심보다는 포심이 자신에게 더 맞는 공임을 파악하고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로 결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여러 변화와 함께 순조롭게 재활 과정을 밟은 스트라이더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마운드에 복귀했다. 2020년 2월 17일에 리버티 대학을 상대로 선발 복귀전을 가졌다. 비록 그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진 못했지만 스트라이더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팅 디렉터인 다나 브라운의 눈에 들어 4라운드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선수보다도 빠르게 마이너리그를 정복한 스트라이더는 현재 맥스 프리드, 카일 라이트와 함께 애틀랜타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공식 트위터)
현시점 스트라이더의 최대 강점을 꼽으라고 하면 백이면 백, 포심 패스트볼을 이야기할 것이다. 종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좋은 슬라이더도 무시할 순 없지만 현재 스트라이더가 37.2%의 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뽐내고 있는 데에는 포심의 공이 대단히 컸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스트라이더가 잡아낸 120개의 삼진 중에서 79개가 포심에서 나왔다.
올해 스트라이더의 포심 평균 구속은 98.2마일로 선발 투수 중에선 신시내티 레즈의 헌터 그린만이 스트라이더보다 앞서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구속을 자랑한다. 포심의 수직 무브먼트 역시 아주 훌륭하다. 같은 구속, 같은 릴리스포인트, 같은 익스텐션을 가진 투수들과 비교해 스트라이더의 포심은 1.8인치 더 많은 상승 무브먼트를 만들어냈다.
애틀랜타의 지명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스트라이더는 이렇게까지 강력한 포심을 뿌리진 못했었다. 당시 스트라이더의 포심 평균 구속은 95~96마일 사이에 형성됐고 최고 구속도 97마일에 그쳤다. 하지만 1년의 부상 재활 기간 동안 하체의 중요성을 깨달은 스트라이더는 그때부터 안정적이면서 효율적인 하체의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팔스윙도 전보다 짧게 가져가면서 팔꿈치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였다. 그러자 토미존 수술에서 회복됨에 따라 포심의 구속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난 오프시즌까지 지속적으로 투구 메카닉을 갈고 닦았던 스트라이더는 올해 작년보다 0.3피트 더 개선된 투구 익스텐션을 들고나왔다. 투구 익스텐션은 투수판에서 투수가 공을 뿌리는 시점까지의 수평 거리를 말한다. 익스텐션이 길다는 건 그만큼 공을 더 앞으로 끌고 나와 던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상대하는 타자의 입장에선 투구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짧아지기 마련이다.
표 2. 2022년 투구 익스텐션 순위
올해 스트라이더의 투구 익스텐션은 6.9피트로 이는 750개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진 80명의 투수 중에서 7번째로 높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스트라이더의 포심 구속이 단연 독보적이었다. 이렇게 수준급의 구속과 수직 무브먼트, 그리고 긴 익스텐션을 바탕으로 현재 스트라이더의 포심은 리그 최상위권의 헛스윙률과 wOBA를 기록 중이다.
표 3. 2022년 패스트볼 헛스윙률 순위(기준: 300회 이상의 패스트볼 스윙을 유도한 투수)
표 4. 2022년 포심 wOBA 순위(기준: 500개 이상의 포심을 투구한 투수)
지금도 매 등판이 끝나자마자 라커룸으로 달려가 일기를 작성하는 스트라이더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항상 본인이 먼저 나서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이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일기에 적으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에 따르면 이러한 스트라이더의 성실함은 드래프트 당시 애틀랜타가 가장 고평가한 부분이었다. 아주 매력적인 콧수염을 가진, 그리고 6피트의 단신이자 100마일을 뿌리는 선발투수의 여정이 어디서 마무리될지 한번 유심히 지켜보자.
참고: The Athletics, Fangraphs, Baseball-Reference, Baseball Savant, MLB.com, AJC, Baseball America
야구공작소 이한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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