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린 러프,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우투우타, 192cm 105kg, 1986년 7월 28일생
[야구공작소 송동욱] 2016년 삼성의 스토브 리그 최우선 과제는 오랜 기간 팀 타선의 중심이었던 최형우의 이적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삼성은 이 공백을 외국인 타자를 통해 채우려 했지만, 구자욱-이승엽과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맡아줄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감을 가진 타자를 영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외국인 타자의 영입은 해를 넘겼고 캠프가 중반까지 진행될 때조차 영입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걸까. 발디리스를 비롯한 작년의 처참한 실패를 잊게 해줄 선수를 드디어 영입했다. 삼성이 그렇게 원하던 1루수-우타 거포, ‘다린 러프(30)’였다.
배경
러프는 190cm-113kg의 체구에도 불구하고 2009년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 전체 617순위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됐다. 지명순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프로입문 당시 뛰어난 기대를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러프는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가를 차근차근 뒤집어 갔다. 프로 입단 후 맞이한 첫 시즌인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싱글A와 상위 싱글A를 거치며 OPS가 한 번도 0.8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고, 그런 꾸준함에 전문가들이 조금씩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AA에 도달한 2012시즌, 러프는 자신의 잠재력이 만개했음을 알렸다. 8월 한 달 동안 20개의 홈런과 0.931의 장타율을 기록했고 시즌 내내 총 38홈런을 때려내며 필리스 산하 마이너 구단 기록(2004년 라이언 하워드 37홈런)을 경신했다.
2012년 필리스 산하 올해의 마이너리거 상을 받은 러프는 시즌 말 메이저리그에 콜업 됐다. 비록 12경기 33타석이라는 적은 기회였지만 홈런 3개와 10타점을 포함 0.727이라는 눈에 띄는 장타율을 보여주며 코칭 스태프를 만족시켰다. 그렇게 러프는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팀 내 야수 중 최고 연봉자인 라이언 하워드와 포지션이 겹친다는 점이었다.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 이후 하워드의 성적이 예년만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구단으로서는 고액연봉자를 마냥 벤치에 둘 수 없었다. 결국 러프는 1루 미트를 벗고 좌익수와 우익수를 번갈아 가며 외야수 전향을 시도했다.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뛴 것을 감안하면 2013시즌 러프가 기록한 신인 5위, 팀 내 3위에 해당하는 14홈런은 꽤나 인상적인 수치였다.
그러나 2013년을 기점으로 러프의 성장세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리그(NL)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외야를 제외하면 결국 러프의 고정 포지션은 없었고 이후 메이저와 AAA를 오가는 우타 플래툰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러프 입장에서는 하워드의 계약이 만료되는 2016시즌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헌터 펜스를 샌프란시스코로 보낼 때 받아온 포수 유망주 토미 조셉이 21개의 홈런을 치며 하워드를 대체할 새로운 1루수로 발돋움했다. 러프는 끝내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1루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임자이자 경쟁자였던 라이언 하워드가 자신의 데뷔 시절 짐 토미의 부상을 틈타 그 자리를 성공적으로 물려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시즌 후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다저 스타디움에서도 쉽지는 않았다. 또다른 올스타 1루수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러프는 새로운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삼성 라이온즈와 110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것이다.
<다린 러프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 기록>
스카우팅 리포트
러프의 가장 큰 장점은 장타력이다. 마이너리그 통산 장타율은 0.496으로 0.5에 육박하며 메이저에서도 통산 0.433이라는 준수한 장타율을 기록했다. 바로 직전 시즌인 2016년 AAA 인터내셔널리그(International League, IL)에서는 홈런 공동 5위, 장타율 1위, OPS 2위(0.885)를 기록했다.
IL은 리그 평균 OPS가 0.7이 채 되지 않는(0.697) 투수 친화적인 리그다. 그런 곳에서도 호성적을 기록한 점은 현재 타고투저 흐름이 강한 KBO에서도 충분히 긍정적인 전망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전형적인 ‘AAAA’급 거포형 타자임에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이 0.295로 거의 3할에 육박하고 통산 출루율도 3할 중후반대(0.372)다. 통산BB%도 10.7%일 정도로 볼을 걸러낼 줄 아는 유형의 타자다.
또 하나의 장점은 좌완 투수를 상대로 굉장히 강하다는 점이다. 러프는 좌완 투수들을 상대로 통산 0.299의 타율과 0.921의 OPS를 기록 중인데, 마이너 리그가 아닌 메이저 리그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KBO 리그의 좌완 투수들을 공략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우완 투수들을 상대할 때면 같은 타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러프의 메이저리그 통산 좌/우완 상대 스플릿>
싱커와 체인지업, 스플리터에 대한 대처는 통산 3할 이상의 타율과 0.5를 넘는 장타율을 기록했지만 커브와 슬라이더에 대해서는 2할 이하의 타율과 0.3 중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타율을 기록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커브와 슬라이더가 투수들의 가장 기본적인 변화구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러프의 주포지션은 1루수다. 코너 외야수로도 뛸 수 있지만, 그가 외야수로써 기록한 통산 UZR(-7.9)은 평균 이하였다. 본인도 필라델피아 시절 수차례 외야 수비가 스트레스라고 밝힌 적이 있을 정도다. 또한 외야 수비 중 담장에 충돌하며 입은 부상 경력이 있는 만큼 외야 글러브를 착용하지 않는 것이 삼성과 러프 본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마이너와 메이저를 합해 961경기 동안 도루는 단 10개를 기록했다. 다행인 점은 그에게 도루를 바라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망
지난해 KBO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17명의 선발투수 중 11명은 우완투수였다. 평균자책점 상위 10명을 봐도 7명이 우완투수였다. 현재 보우덴, 켈리, 니퍼트, 헥터, 해커 등등 KBO리그의 정상에 있는 투수들은 대부분 우완투수다.
결국 우완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면 자칫 KBO리그 적응에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마냥 긍정적인 전망을 할 수만 없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KBO리그에서 선발로 뛰고 있는 외국인 투수들 또한 메이저리그에 정착하지 못한 선수들임을 고려했을 때, 러프가 2013시즌을 제외하고 AA와 AAA레벨에서 한 차례도 우완을 상대로 2할 7푼 이하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우완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던 건 메이저리그 수준에 한정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2016시즌에는 우완을 상대로 0.800이 넘는 OPS를 기록하기도 했다.
구단 입장에서 러프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1루 혹은 지명타자 자리를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작년 수비 이닝을 기준으로 현재 삼성 라인업에서 1루를 맡을 수 있는 선수는 박해민, 구자욱, 이승엽 총 3명이다. 최형우의 공백을 메꾸려 붙박이 코너 외야수로 전향하는 구자욱, 부동의 중견수 박해민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승엽과 러프 2명이 1루 후보로 남는데, 올해 1루 수비도 병행하려는 이승엽과 러프가 1루수-지명타자 자리를 나눠 맡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아이러니하게도 러프가 홈으로 쓸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자신이 실패를 겪었던 필라델피아의 홈구장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모델 삼아 만든 것이다. 아쉬움이 남을 필라델피아에서의 20대를 정리하고 라이온즈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러프, 그의 2017시즌은 성공적일 수 있을까. 그간 높은 기대를 받았던 다른 삼성 외국인 야수들의 결과를 봤을 때 속단은 금물이다.
참고: Baseball Reference, Baseball America, Fangraphs, STATIZ
(일러스트=야구공작소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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