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KBO리그 외국인 선수 스카우팅 리포트 – 삼성 라이온즈 앤서니 레나도

앤서니 레나도,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우투우타, 204cm, 108.8kg

 

배경

[야구공작소 임선규] 지난 2010년, 미국 야구계는 한 특급 유망주의 드래프트 참가 선언으로 연초부터 시끌벅적했다. 일찍부터 ‘역대 최고의 재능’으로 꼽혀왔던 브라이스 하퍼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뒤 자퇴를 결정하고 나섰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대체한 뒤 주니어 칼리지에 진학하면 만 17살의 나이로 드래프트에 나설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대중의 관심은 하퍼가 17세의 나이로도 1라운드 1픽의 영예를 얻어낼 수 있을지에 집중되었다.

그런 하퍼에게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있었다. 명문 루이지애나 대학교의 에이스였던 이 선수는, 2학년이었던 2009년에 한두 살 위의 타 대학 에이스들을 상대로 호투를 거듭하며 팀을 대학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가 2009년 시즌 동안 거둔 성적은 12승 3패, 124이닝 159 탈삼진(다승 리그 5위, 탈삼진 리그 3위). 이 투수와 하퍼는 2010년 봄에 발표된 각 유망주 평가기관의 예상 지명 순위에서도 전체 1ㆍ2위 자리를 양분했다. 이 투수의 이름은 바로 앤서니 레나도다.

하지만 레나도의 전국구 유망주로서의 행보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신체 때문이었다. 2010년에는 팔꿈치 통증으로 단 50이닝밖에 투구하지 못했고, 평균자책점(3.04 -> 7.03), 9이닝당 피홈런(1.09 -> 1.57), 9이닝당 볼넷(3.62 -> 4.70)을 위시한 대부분의 지표에서 극심한 성적 하락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그의 에이전트는 악명 높은 스캇 보라스였다. 부상 의혹과 성적 부진, 그리고 보라스가 요구하는 높은 계약금 같은 부정적 요인들이 줄을 이으면서 그의 예상 지명 순위는 빠르게 내리막을 걸었다. 결국 드래프트 당일에 그를 호명한 팀은 1라운드 39번 픽을 보유하고 있던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보스턴은 전체 10순위 이내의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수준인 255만 달러의 높은 계약금을 제시함으로써 드래프트 재수를 고민하던 레나도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팔꿈치 부위에 부상 우려가 있었던 레나도에게 남은 2010년 동안 휴식할 시간을 준 보스턴은, 다음해인 2011년에 들어서야 그를 프로 무대에 데뷔시켰다. 프로 첫 시즌에 부상 없이 싱글 A의 두 레벨을 통과한 레나도는, 이어진 2012년 스프링캠프에서 97마일의 강속구를 뿌리면서 팀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팔꿈치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레나도는 봄부터 사타구니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이후 여름에는 어깨 부상에 시달리면서 결국 한 해 동안 9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다음해인 2013년, 건강을 되찾은 레나도는 더블 A에서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을 뽐내며 첫 10경기에서 6승 1패, 평균자책점 1.48의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마이너리그의 올스타전 격인 퓨쳐스 게임에도 참가했고,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미드시즌 유망주 순위에서도 전체 37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당시만 해도 레나도의 뒷 순번에는 현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기대주로 발돋움한 애런 산체스(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랜스 맥컬러스(휴스턴 애스트로스) 같은 선수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2014 시즌 개막을 트리플 A에서 맞이한 레나도는 이번에도 리그에서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순항을 이어갔고, 결국 후반기에 메이저리그 승격 티켓을 거머쥐는 데까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레나도의 모습은 그간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일단 패스트볼의 구속부터가 스카우팅 리포트를 통해 알려진 바에 비해 상당히 낮은 평균 91마일가량에 머물렀다. 전반적인 구종들의 움직임이 좋지 않았던 탓에 피홈런을 허용하는 빈도도 극단적으로 높았다(9이닝당 피홈런 2.29개).

제구와 구위 모두 낙제점이었던 레나도의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지표가 바로 탈삼진과 볼넷 허용의 비율이다. 레나도는 9이닝마다 3.66개에 이르는 적지 않은 볼넷을 내주었고, 동시에 비정상적으로 적은 3.43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다. 볼넷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탈삼진을 기록하는 것이 괜찮은 투수의 기본적인 조건임에도, 레나도는 오히려 탈삼진보다 많은 숫자의 볼넷을 허용했던 것이다. 그전까지 빅리그에서도 2~3선발 수준의 활약을 펼쳐줄 것이라 평가 받았던 레나도의 평판은 이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하고 말았다.

보스턴 또한 레나도에 대한 기대를 빠르게 접어버렸다. 레나도는 시즌 뒤 좌완 구원투수 로비 로스와 트레이드되어 텍사스 레인저스로 소속을 옮겼다. 텍사스에서도 레나도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트리플 A에서는 준수했지만, 메이저리그에만 올라오면 힘을 잃고 난타를 당했다. 그러던 2016년 5월에는 또 한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팀을 옮겼다. 8월 17일자로 빅리그에 콜업된 그는 시즌 종료 시점까지 선발등판 기회를 보장받으면서 빅리그 로스터에 잔류했지만, 또다시 실망스러운 성적만을 남겼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실패한 빅리그 체류를 마친 앤서니 레나도는 결국 KBO리그의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맺고 새로운 무대에서 도전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앤서니 레나도 메이저리그 & 마이너리그 통산 기록>

 

스카우팅 리포트

루이지애나 대학 시절의 레나도는 스카우트들이 탐내는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체격이었다. 키는 204cm에 달했고, 몸무게는 108kg에 육박했다. 투구폼 또한 거대한 체격이라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주는 전형적인 오버핸드 유형이었다. 2층에서 내리찍듯 날아오는 공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했다. 여기에 각도 큰 커브라는 확실한 결정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레나도의 커브는 대학 시절부터 리그 최고의 변화구로 이름이 높았으며, 20-80 스케일에서도 65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던 수준급의 구종이었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레나도는 이러한 장점들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그의 역량을 견실하게 담아내지 못한 신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부상은 팔꿈치, 사타구니, 어깨 등을 오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레나도는 투구폼에 변화를 줌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레나도의 타점은 어느새 다른 투수들과 비슷한 높이까지 낮아져 있었다. 건강을 얻는 대신 장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타자들은 더는 예전처럼 그의 공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2013년 더블 A에서 8.7개를 기록했던 레나도의 9이닝당 탈삼진은 2014년 트리플 A에서 7.24개, 2015년 트리플 A에서 6.86개로 뚜렷한 하락세를 그렸다. 2015년 들어 그의 경기를 관찰한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스카우트들은 “지금의 그는 그저 밋밋한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투수에 불과하다”며 혹평을 남겼다.

레나도의 두 번째 소속팀이었던 텍사스 레인저스는 이 낮아진 팔 각도에 또 한 번의 수정을 가했다. 각도를 더 내려서, 아예 쓰리쿼터에 가까운 투구폼으로 던질 것을 지시한 것이다. 이는 과거 그와 비슷한 체격을 가졌던 로이 할러데이가 팔 각도를 낮춤으로써 제구력과 무브먼트의 2가지 토끼를 잡아냈던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레나도가 이 바뀐 투구폼에 제대로 적응한 것은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팀을 옮긴 이후의 일이었다.

투구폼의 변화는 삼진율의 하락세를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대신 볼넷의 허용 빈도를 현격하게 줄여주면서 결과적으로는 탈삼진과 볼넷의 비율을 큰 폭으로 개선시켰다. 레나도는 지난 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 A팀에서 96.2이닝을 투구하면서 단 11개의 볼넷을 내주었는데, 이는 9이닝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1.02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레나도가 활약했던 인터내셔널 리그(IL)에서 9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들 가운데서도 단연 가장 낮다.

<투구폼 수정 전후, 레나도의 마이너리그 기록>

현재의 레나도는 크게 4가지의 구종을 구사한다. 투구의 바탕이 되는 패스트볼은 평균 91마일(146km) 전후에서 형성된다. 결정구로는 여전히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름이 높았던 커브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낮은 비율로 활용하지만, 이들은 평균만 못한 수준의 ‘보여주기 용’ 구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다채롭지 못한 투구 패턴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타석의 방향에 따른 성적의 편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레나도의 레퍼토리>

 

전망

90마일 이상을 꾸준히 던질 수 있는 패스트볼, 압도적인 체격, 거기에 확실한 결정구까지. 레나도는 그동안 KBO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외국인 투수들의 특징들을 두루 지니고 있는 투수다. 최근의 마이너리그 기록도 괜찮은 편이며, 선발 등판 경험도 최근까지 꾸준하게 이어져왔다. 앞서 한국 땅을 밟았던 ‘탑 유망주’ 출신의 다른 외국인 선수들처럼 새로운 무대를 맞아서 젊은 시절 스카우트들의 극찬을 받았던, 그러나 실현되지 못했던 잠재력이 마침내 만개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나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두산의 전설적인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연상시킨다. 일단, 미국 시절의 니퍼트 역시 뛰어난 체격과 높은 타점을 바탕으로 패스트볼과 커브의 2가지 구종을 주무기로 활용하는 선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다가도 메이저리그에만 올라오면 피홈런이 급등하면서 고생했다는 것 역시 두 선수의 공통점이다. 지나치게 훌륭한 체격 탓에 부상으로 신음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심지어 유망주 시절의 현지 평가 역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스틴 니퍼트는 2006년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전미 유망주 순위에서 67위를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2011년의 전미 유망주 순위를 보면, 같은 67위에서 레나도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레나도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철저하게 난타당했다. 9이닝당 볼넷과 탈삼진이 나란히 4.6개, 피홈런은 무려 2.3개에 달했던 레나도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이 이를 여실히 입증해준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에서의 레나도는 완전히 다른 투수였다. 그 핵심에는 9이닝당 0.9개 전후의 정상적인 비율을 형성한 피홈런이 있었다. 레나도가 수월하게 KBO리그에 연착륙할지의 여부 역시 그가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중 어떤 쪽과 흡사한 홈런 억제력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삼성의 외국인 투수 농사는 ‘역대급’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는 왕조를 이룩하고 있던 팀을 삽시간에 최하위권으로 추락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굴욕을 맛본 삼성은 다린 러프와 레나도라는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을 데려오기 위해 지갑을 아낌없이 열었다. 과연 이 ‘통 큰’ 투자는 성적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참조: Baseball Reference, Baseball America, Fangraphs, Brooks Baseball

(일러스트=야구공작소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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