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느낌표로, 마커스 시미언의 2021년

(사진 출처: 토론토 블루제이스 공식 트위터)

2021년 9월 19일(한국시간)에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 이날 시미언은 상대 선발 베일리 오버의 7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당겼다. 이 타구는 총알 같은 스피드로 로저스 센터 좌측 담장을 향했다. 시미언의 시즌 40번째 아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시즌 시작 전 시미언을 향한 언론과 팬들의 시선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2019년 시미언은 33홈런 92타점, 타율 0.285 출루율 0.369 장타율 0.522 OPS 0.892로 아메리칸 리그 MVP 3위에 올랐다. 그러나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지난해 7홈런 23타점, 타율 0.223 출루율 0.305 장타율 0.374 OPS 0.679로 부진했다. 그러면서 시미언의 2019 시즌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시미언은 ‘역대 5번째 단일 시즌 40홈런 2루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WAR(대체 승수 대비 승리 기여도) 지표에서 팬그래프 기준 6.6,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7.1로 멋지게 다시 비상했다. 이렇듯 시미언은 시즌 시작 전 본인에게 주어졌던 숙제를 완벽히 풀어냈다.

 

새로운 도전이면서 위험했던 도박

많은 사람들이 2019시즌 MVP 3위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기대했지만 지난해 시미언은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140에 육박했던 wRC+(조정 득점 생산력)는 커리어 평균(105)보다도 낮은 수준(91)으로 하락했고 리그 상위 11%였던 삼진 비율(13.7%)은 상위 41%인 21.2%로 지극히 평범해졌다. 이뿐만 아니라 타구 속도, 정타(Hart Hit) 비율과 같은 스탯캐스트 지표 역시 대부분 크게 하락했다. 수비에서도 다시금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DRS -6, OAA -9).

표 1. 시미언의 공격 & 수비 지표 비교 (2019 vs 2020년)

이유는 있었다. 지난해 대부분의 선수가 그러했듯이 시미언도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진행된 단축 시즌을 맞이했다. 여기에 더해 시즌 초반 슬럼프를 겪고 있었던 시미언에게 60경기라는 짧은 경기수는 조급함을 가져왔다. 슬럼프 극복을 위한 훈련량 증가는 갈벼뼈 부근 근육 염좌를 불러오는 등 되레 몸에 부담감만 안겨줬다.

팬들에게도, 본인에게도 실망스러웠던 시즌을 마치고 시미언은 자유계약 신분으로 FA시장에 나왔다. 다음 시즌에 대한 시미언의 자신감은 충분했지만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던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했다. 당시 최대어로 평가받던 트레버 바우어, DJ 르메이휴, 조지 스프링어에 비해 시미언의 오프시즌은 굉장히 조용하게 흘러갔다.

수요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시미언이 생각하는 본인의 가치와 구단이 생각하는 가치의 간격이 꽤 컸다. 구단은 시미언을 유격수가 아닌 2루, 3루수로서 더 매력을 느꼈다. 유격수로서 프라이드가 강했던 선수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지만 그는 곧장 마음을 다잡았다. 켄 로젠탈 기자(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시미언은 속으로 최고의 1년을 보내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미언은 1년 18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미언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조엘 울프는 합의에 다다른 타 구단과의 2년 계약을 들고 왔다. 울프는 시미언에게 2년 동안 유격수로 뛰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한 선택지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시미언은 위험 부담이 있는 1년 계약을 선택했다. 그리고 2021년을 45홈런 102타점, 타율 0.265 출루율 0.334 장타율 0.538 OPS 0.873의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처럼 시미언의 도박, 아니 새로운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심플해진 타격 전략, 띄우고 잡아당기자!

올 시즌 시미언의 타격 플랜은 아주 간단했다. 전보다 공을 더 띄우고 잡아당기자.

그림 1. 연도별 시미언의 뜬공 비율과 Pull% 변화 추이

사실 공을 띄우려는 시미언의 시도는 작년부터 있었다. 지난해 시미언의 발사각도는 19.3도로 2019년에 비해 4도가량 올랐고 뜬공 비율 역시 38.9%에서 46.6%로 크게 불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부진과 부상 속에서 허덕였던 시미언은 타구에 제대로 된 힘을 실지 못했다. 2019년에 88.9마일을 기록했던 타구 속도가 86.2마일로 떨어졌다.

공을 띄울수록 장타가 될 확률이 높다지만 타구 속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상대 수비수의 글러브에 쏙 빨려 들어갈 뿐이다. 지난해 시미언의 뜬공 대비 홈런 비율은 15.3%에서 9.3%로 뚝 떨어졌다. 내야 뜬공 비율도 8.8%에서 16%로 크게 늘었다.

2019년 시미언은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애런) 저지와 같은 타구 속도를 낼 순 없지만 적당한 발사각도만 받쳐준다면 홈런을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발사각을 중요시했던 시미언은 실패를 겪었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올해 9월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을 잡아당기는 것에 집중했다. 실제로 지난 3년 동안 시미언의 우중간쪽 타구는 좌측 타구와 비교했을 때 비거리와 타구 속도가 상대적으로 덜 나왔고 홈런의 대다수도 당겨친 타구에서 비롯됐다.

그림 2. 시미언의 홈런 스프레이 차트 비교 (2018~2020년 vs 2021년)

표 2. 시미언의 우측과 중앙 쪽 타구의 타구 속도/비거리와 좌측 타구의 타구 속도/비거리 비교 (뜬공 기준)

올 시즌 첫 한 달간 시미언은 평균 타구 속도 90마일을 기록하며 우리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불어 앞서 계획한대로 시미언은 타구를 극단적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당겨친 타구의 비율이 39.1%에서 47.8%로 크게 늘었다. 발사각도 역시 24도로 공을 더 띄워 보냈다.

물론 새로운 타격 전략에 시미언은 곧바로 적응하지 못했다. 4월의 시미언은 24경기에 나와 타율 0.211 출루율 0.290 장타율 0.368 OPS 0.658에 그쳤고 홈런은 5개뿐이었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맥을 못 췄다. 오프스피드, 브레이킹볼 모두에 약한 모습을 보였고 4월 한 달 동안 헛스윙률은 각각 34.6%, 39%에 달했다.

이에 시미언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218개의 홈런을 때려낸 마크 트럼보는 시미언과 같은 에이전트사(Wasserman Media Group) 소속이었다. 이에 시미언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트럼보는 스윙 궤적이 일정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다양한 높이에서의 티(tee) 배팅을 추천했다. 시미언은 트럼보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타격 훈련 루틴을 모두 뜯어고쳤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타격폼을 조정하며 일정한 스윙 궤적을 찾아 나섰다.

그림 3. 시미언의 달라진 타격폼(우측 – 한국시간 4월 28일 경기)

효과는 금방 드러났다. 차츰 변화구에 대한 대응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헛스윙률도 37.6%에서 30.5%로 낮아졌다. 이는 곧 미친듯이 몰아쳤던 5월(28경기 8홈런, 타율 0.368 출루율 0.429 장타율 0.702 OPS 1.130)의 밑바탕이 됐다. 이후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시미언은 꾸준하게 삼진 비율을 줄이면서 8할 이상의 OPS를 유지했다.

그렇게 다시 예열을 마친 시미언은 9월 28경기에 나와 12개의 홈런과 함께 타율 0.265 출루율 0.352 장타율 0.628 OPS 0.980으로 또 한 번 날아올랐다. 지난 30일에 있었던 뉴욕 양키스 전에서는 단일 시즌 2루수 최다 홈런인 44번째 홈런을 쏘아 올리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견고해진 수비와 대체 불가능한 리더십

시미언의 2021년이 대단한 이유는 그의 활약이 단순히 공격에만 무게가 쏠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미언은 지난 6시즌 동안 유격수 외 포지션을 일체 소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수비지표인 DRS 부문에서 500이닝을 소화한 2루수 가운데 3번째로 높은 +10을 기록했다. 또 다른 수비지표인 UZR에서는 5.5로 2루수 전체 1위에 올랐다. 스탯캐스트 기반의 수비지표이자 주자의 평균 주루 속도, 야수의 이동방향 등을 반영하는 OAA 역시 + 5로 아주 준수하다.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음에도 그간 OAA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시미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다.

(사진 출처: 토론토 블루제이스 공식 트위터)

수비뿐만 아니라 시미언은 영입 전 토론토가 기대했던 부분도 완벽하게 채워줬다. 6년 동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머물면서 시미언은 팀 내 클럽하우스 리더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서 시미언은 클럽하우스 내 문화 자체를 바꿨다. 이런 시미언이 팀을 떠나는 것에 대해 같은 UC 버클리 출신이자 6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마크 칸하(오클랜드)는 “한 시대가 끝난 느낌”이라는 말을 남겼다.

토론토 역시 시미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마크 샤피로 사장과 로스 앳킨스 단장은 시미언이 평균 연령 27.9세의 젊은 선수단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길 바랐다. 시즌 초반 많은 에러를 범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던 비솃에게 앞만 보고 나아가라고 조언을 해준 것처럼 시미언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시미언이라는 선수를 더욱더 특별하게 해줬다.

또한 시미언은 지독한 연습벌레였고 매일 경기장에 나서고 싶어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클랜드 시절 론 워싱턴 코치와 함께했던 수비 훈련 루틴을 지금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매경기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러한 성실함과 철저함은 그간 시미언이 보여준 단단한 내구성의 바탕이었다.

표 3. 시미언의 연도별 출전 경기수

완벽하게 부활했지만 시미언이 이번 시즌을 마치고 대형 FA 계약을 따낼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올해 시미언이 시도한 극단적인 당겨치기는 분명 리스크 있는 전략이고 토론토가 속한 아메리칸 동부지구는 타자친화구장이 즐비하기에 이번에도 시미언의 성적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또한 FA 시장에 코리 시거, 카를로스 코레아, 트레버 스토리, 하비에르 바에즈 등 어리고 뛰어난 유격수들이 대거 나온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시미언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하지만 2019시즌에 버금가는 공수 밸런스와 함께 시미언이 보여준 내구성, 리더십을 생각하면 시미언 역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매력적인 카드다. 올 시즌 초반까지 본인에게 주어졌던 많은 물음을 이겨내고 그 많은 물음표를 느낌표와 환호로 바꿔낸 시미언이 이번 겨울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보자.

 

참고: The Athletics, Fangraphs, Baseball-Reference, Baseball Savant, MLB.com, Toronto Star

야구공작소 이한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김준업, 유은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