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두 번째 스무살] 2003년 – 최종전에 긴장감이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2003년 10월 2일, KBO 리그 8개 팀 중 두산 베어스와 현대 유니콘스를 제외한 6개 팀의 최종전이 열렸다. 경기가 열리기 전 이미 순위가 결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날 열린 3경기는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2위 KIA 타이거즈가 이날 승리를 거두면 승률이 0.617이 되면서 승률 0.611의 1위 현대를 앞설 수 있었다. 그러나 2003시즌은 다승제 시즌이었고, KIA가 시즌 최종전에서 이겨 79승째를 거둔다고 해도 이미 80승을 거두고 시즌을 마감한 현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상위권 싸움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하위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날 삼성 라이온즈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가진 롯데 자이언츠는 이미 1위 현대와 41경기, 7위 두산과 18경기나 차이 나는 압도적인 꼴찌가 확정됐다. 굴욕의 2년 연속 90패도 이미 확정한 마당에 롯데는 잃을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전년도 1차지명으로 입단했으나 2년 동안 9경기 등판에 그친 우완 이정민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상대 팀 삼성 역시 이미 3위를 확정한 상태로, 이틀 뒤 열릴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를 대비하기 위해 2003시즌 큰 활약이 없던 라형진을 선발로 출격시켰다.

팀으로 봤을 땐 아무런 긴장감도 없는 경기였다. 경기 자체의 중요도는 거의 없었음에도 빈자리 없이 꽉 찬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양 팀은 시즌 최종전을 진행했다. 경기도 무난하게 흘러갔다. 롯데는 1회 초부터 김대익의 볼넷과 로베르토 페레즈의 2루타로 2, 3루 찬스를 만들었고, 여기서 4번 마리오 엔카나시온(등록명 이시온)이 우익수 앞 안타로 두 명을 모두 불러들이며 먼저 앞서나갔다. 이어 3회 초에도 페레즈의 솔로포 등으로 2점을 추가했다.

롯데 선발 이정민은 2회 이승엽, 4회 양준혁에게 피홈런을 기록했으나 5회까지 리드를 지켜내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 김대익이 6회와 8회 각각 1타점씩을 올린 롯데는 이명우-노승욱-가득염-강상수로 이어진 불펜진이 리드를 끝까지 가져가면서 결국 6대 4로 승리를 거뒀다. 이정민은 5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고, 1번 타자로 나선 3루수 조성환은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3할 타자 타이틀을 확정했다. 시즌 전적 39승 91패 3무로 2003년을 마감한 롯데는 마지막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3할 승률에 턱걸이했다. 삼성은 이틀 뒤 시작된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2연패하며 롯데보다 단 2경기를 더 한 후 탈락했다.

그런데 잠깐, 2003년 최종전이 이 정도 설명으로 끝날 경기일까? 대체 이 경기는 어떤 경기길래 2003년 133경기 중에서 선택을 받게 된 것일까? 비밀은 바로 이날 삼성의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한 이승엽이 가지고 있었다.

사실 롯데와 삼성의 최종전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주목하던 경기였다. 이날 전까지 이승엽이 단일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홈런에 단 하나만을 남겨뒀기 때문이었다. 5월 중순까지 팀 동료인 마해영, 라이벌 심정수와 치열한 홈런왕 싸움을 펼치던 이승엽은 5월 15일 더블헤더에서 4홈런을 터트리며 본격적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6월 22일 SK전 최연소 300홈런, 7월 26일 SK전 최소경기 40홈런, 9월 6일 현대전 최소경기 50홈런 등 이승엽은 홈런에 관한 여러 기록을 써 내려갔다. 8월 10일 LG 서승화와의 난투극으로 2경기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홈런 생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기세라면 1999년 아깝게 놓쳤던 아시아 신기록을 무난히 달성하리라 여겨졌다. 그러나 이승엽은 9월부터 침묵에 빠졌다. 9월 10일 53호 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이후 9경기 만에 54호, 그리고 4경기 만에 55호 홈런을 때려냈다. 2주 동안 단 2홈런에 그친 이승엽은 상대 팀의 견제까지 겹치면서 대기록 생산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7년 이승엽의 마지막 사직 경기에서 롯데는 황금 잠자리채를 선물로 줬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이런 와중 해프닝도 있었다. 9월 27일 사직 롯데전에서 신기록 도전에 나선 이승엽은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특히 8회 초 타석에서는 고의4구로 걸어 나가며 허무하게 기회를 날렸다. 사실 2점 차 주자 2루 상황이었기 때문에 롯데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타자가 하필 ‘신기록에 도전하던’ 이승엽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이승엽의 56호 홈런볼을 경매에 내놓으면 수억 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승엽의 경기에는 외야석부터 매진이 됐고, 관중들은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롯데 벤치는 이런 관중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다. 이미 최하위가 확정된 상황에서 이승엽의 기록까지 무산되자 오히려 롯데 팬들이 흥분, 그라운드에 온갖 오물을 투척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경기는 한동안 중단됐고 김용철 당시 감독대행이 마이크를 잡고 작전에 대해 설명했지만 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어차피 3년 연속 꼴찌 팀인데 공 하나 던진다고 해서 그렇게 썩 (잘)하지는 않을 거라고 보는데…”라는 당시 한 팬의 인터뷰는 당시 롯데 팬들이 느낀 감정을 대변했다.

이후 이승엽은 남은 경기에서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고 최종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순위 싸움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이날 경기가 왜 매진 사례를 이뤘는지 이제 설명이 되는 것이다. 대구구장의 외야에는 잠자리채가 가득했고, 모두가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했다. 롯데의 선발투수로 내정된 이정민 역시 “피할 이유도 없고 정면승부하겠다. 오늘 경기에서 내 진면목을 보여주겠다”라는 말로 패기를 드러냈다. 사실 9월 27일의 불상사를 보고도 ‘피해가겠다’라는 말을 할 용기 있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 역시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오기가 대단’ 따위의 말로 이정민에게 정면승부를 하도록 부추겼다.

2회 말, 이승엽을 처음 만난 이정민은 초구를 높은 볼로 던졌다. 2구는 바깥쪽 꽉 차게 들어가는 속구로 스트라이크. 포수 최기문은 바깥쪽 패스트볼을 하나 더 요구했다. 그러나 이정민이 던진 공은 가운데로 들어갔다. 실투만 기다리던 ‘라이언 킹’은 이 맛있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힘을 실은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시즌 56호 홈런, 아시아 신기록이었다. 경기장에는 폭죽이 터졌고, 포수 최기문도 이승엽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홈런을 맞은 투수 이정민을 위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이승엽은 4회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앞 타석 홈런으로 팬들의 마음이 누그러졌을까, 5일 전처럼 쓰레기를 투척하는 팬은 없었다. 이승엽은 이날 3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고, 3할 타율을 확정하는 동시에 이미 확정해 놓은 홈런-타점왕 타이틀도 무난하게 수성했다.

(사진=KBS)

기록을 달성한 이승엽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했고, 한국에 남은 이정민은 ‘허용투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이후 2012년 이승엽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6년까지 이정민은 이승엽에게 9타수 4안타를 내주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17년 8월 12일,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된 경기에서 이정민은 이승엽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다음에 대결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삼진을 잡겠다”고 말하던 24살의 투수는 현역 은퇴를 앞두고 그 약속을 지켜냈다.

2003년 10월 2일 롯데-삼성전 박스스코어(사진=박스스코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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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사진=롯데 자이언츠 /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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