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을 만큼 KBO 리그는 어린이 팬을 모으는 데 총력을 다했다. 각 팀은 원년부터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며 미래의 열혈 팬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고, 최근에도 티볼 강습 등 어린이 야구팬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 주제의 배경이 되는 1998년에는 7월 말부터 시즌 말까지 어린이 관중에게 무료입장 혜택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 아이들에게 야구라는 스포츠를 접할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은 부모와 함께 야구장을 찾는 어린이 팬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없다. 이때 처음 야구장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각 구단은 선물을 증정하거나 그라운드 이벤트를 여는 등 어린이 팬 유입을 위해 노력한다. 여기에 경기까지 이기게 된다면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는 어린이 팬들은 향후 2~30년 동안 충성도 높은 팬으로 남아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롯데 자이언츠는 어린이날 ‘승리’라는 마케팅에 실패한 팀이다. 원년 어린이날 경기에서 10대 16으로 패배한 것으로 시작으로 롯데는 어린이날만 되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어린이날에도 믿었던 에이스 댄 스트레일리가 1회에만 5점을 내주며 또 한 번 사직야구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울렸다. 2021년까지 롯데는 5월 5일 경기에서 통산 14승 25패(승률 0.359)를 기록하며 어린이에게 꿈도, 희망도 안겨주지 못했다.
차라리 경기만 지면 괜찮다. 롯데는 어린이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장면도 많이 보여줬다. 2009년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조성환 부상 논란으로부터 이어진 갈등이 폭발, 종료 후 팬들이 원정팀 버스의 유리창을 깨는 등의 추태를 보여줬다. 2016년 어린이날에는 롯데 이성민과 KIA 서동욱의 빈볼 시비가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며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을 가리기도 했다. (경기는 롯데의 1대 17 패배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경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가장 충격적인 어린이날 패배는 바로 1998년에 나왔다. 차라리 아예 초반부터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었다면 일찍 나가서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했을 텐데, 괜히 경기 막판까지 이기고 있다가 마지막 한 이닝에 뒤집히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 경기였다.
1998년은 한동안 어린이날만 되면 원정 경기에 나섰던 롯데가 13년 만에 어린이날 홈 경기를 갖는 시즌이었다. 여기에 1998시즌 들어 처음으로 마산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1997년 전국체전이 경상남도에서 열리면서 개최구장 중 하나가 된 마산야구장은 1996년 9월 1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마산 야구팬들은 약 1년 8개월 만에 프로야구 경기를 자신의 고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내수 경제가 급격히 침체되며 야구장은 텅텅 비었지만 그래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이었는지 이날 마산 야구장에는 12,758명의 관중이 찾았다.
13년 만의 어린이날 홈경기의 상대는 쌍방울 레이더스. 양 팀은 문동환(롯데)과 성영재(쌍방울)를 투입해 어린이날 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했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팀은 롯데였다. 롯데는 1회 말 박정태의 3점 홈런으로 먼저 앞서나갔다. 2회 잠시 쉬어간 롯데는 3회 말 공격에서 2번 손인호를 시작으로 7번 조경환까지 6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하며 4점을 추가로 올렸다. 덕분에 롯데는 4회 말까지 7대 1로 리드를 잡았다. 롯데 선발이 1998시즌 팀의 에이스였던 문동환이었기 때문에 별일이 없다면 경기를 가져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롯데는 항상 그 ‘별일’에 발목이 잡힌다. 문동환은 5회 초 2아웃을 잘 잡아놓고도 볼넷과 안타를 허용, 2사 1, 2루 위기를 자초했다. 여기서 3번 김기태가 오른쪽 외야 관중석으로 향하는 장쾌한 스리런 홈런을 터트렸다. 졸지에 경기는 쌍방울의 사정권 안이 3점 차가 됐다. 분위기를 탄 쌍방울은 7회 초 1사 만루에서 김기태의 2루 땅볼, 8회 초 이근엽의 적시타로 각각 1득점씩 올리며 스코어를 7대 6으로 만들었다. 엄마 아빠가 사주신 치킨을 뜯으며 즐겁게 경기를 보던 마산의 어린이 팬들도 점점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운명의 9회 초, 롯데 마운드에는 여전히 문동환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투구 수가 100개를 훌쩍 넘겼던 문동환은 선두타자 김실에게 안타를 맞으며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롯데 벤치는 부랴부랴 좌완 가득염을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불을 끄라고 기용한 가득염이 오히려 다음 타자 김기태에게 볼넷을 내주더니 장작을 쌓는 실책까지 저지르며 롯데는 무사 만루 위기를 만들었다.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가득염은 곧바로 우완 이정훈으로 교체됐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훗날 롯데 감독이 되는) 조원우. 이정훈의 공을 침착하게 지켜본 조원우는 결국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다. 7대 7, 이렇게 문동환의 승리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8회 대주자로 나왔던, 그리고 바로 전년도까지 마산에서 대학교를 다닌(경남대) 신인 윤재국이었다. 윤재국은 침착하게 우익수 엄정대 쪽으로 향하는 희생플라이를 기록, 3루 주자 김기태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경기 중반에 들어설 때까지 6점 차로 뒤지고 있던 쌍방울이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정훈이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막았고, 여전히 롯데는 승부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9회 말 1사 후 대타로 나온 이동수가 안타를 때려내고도 주루 미스로 아웃되는 등 마지막까지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 롯데는 결국 허무하게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1998년의 롯데는 주형광(31경기 25선발)과 염종석(27경기 27선발)을 제외하면 고정 선발투수라고 부를 선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팀 내 최다승 문동환(12승)이 팀 내 최다 세이브(6세이브)의 주인공일 정도로 롯데는 헐거운 뒷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팀 사정으로 인해 선발투수가 6실점을 하고도 131구를 던졌고, 결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패로 이어지게 됐다.
<마산시 체육사>(2004)에서는 “1998년 5월 5일 롯데가 쌍방울에 역전패당했을 때 마산 관중들은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라는 서술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참극을 보고도 ‘마산아재’들이 얌전한 귀가를 선택했을까? 판단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