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신인드래프트 지명이 끝나면 야구 팬들은 기록을 보고, 비교적 이른 순번에 지명된 선수와 미지명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서 선수의 성적을 기반으로 지명에 대한 아쉬움 같은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스카우트는 ‘아마추어 기록은 참고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선수를 지명하기 위해 경기는 물론, 학교를 방문하고 촬영한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본다’고 말한다. 즉,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현장의 평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스카우트의 성향에 따라 선수의 가치는 다를 수 있지만 선수를 평가하는 공통적인 항목은 존재한다.
한편 엘리트 선수와 학부모 사이에서 ‘부모의 직업과 재산이 선수 지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와 같은 잘못된 소문들이 돌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학부모가 무리해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다.
앞선 예시들처럼 잘못된 소문과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현직 스카우트들을 만나봤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미래의 꿈나무들과 야구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카우트가 들려주는 진짜 스카우트의 이야기 2편은 드래프트의 모든 것을 파헤쳐본다. (다수의 스카우트와 질의응답 후 공통된 답변을 중심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본 칼럼은 총 2편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아마야구 현장을 누비는 스카우트
#10%의 확률
지난해 ‘2021 KBO 신인 드래프트’는 1,133명이 참가해 100명이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1차 지명을 받은 9명을 포함해, 치열한 경쟁 안에서 약 10%의 인원만이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이들 중에선 중학교 때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도 더러 있다. 이들은 다른 선수보다 스카우트의 관심을 조금 일찍 받을 뿐, 프로 입단을 반드시 보장하는 게 아니다. 스카우트는 이름값으로 선수를 지명하지 않는다. 1학년 때부터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다. 드래프트 대상자가 됐을 때, 발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그 어떤 선수라도 지명 대상에서 제외한다.
“중학교 시절 실력으로 지명받는 게 아니에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나 꾸준히 성장했느냐가 중요하죠. 1학년 때부터 시합에 나가지 못해도 학교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눈에 띄는 선수가 있어요. 이런 선수는 미리 체크했다가 경기 때 유심히 지켜봐요. 기량이 좋은 선수가 갑자기 부진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입스 등의 멘탈적인 문제거나 부상이 대부분이죠. 극복이 가능한 문제라고 판단하면 지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반대의 경우는 아쉽지만, 지명 리스트에서 이름을 빼요. 고교 선수는 대학교 졸업 후를, 대학 선수는 육성 선수를 기대해봐야죠.”
최근 아마추어 선수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곳이 많다. 이에 대한 스카우트의 답은 간단했다.
“최근 들어 여러 곳에서 아마추어 선수의 순위를 정하는 것을 봤어요. 재미로만 보셨으면 좋겠어요. 스카우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거든요. 저희의 생각과 비슷한 선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웃음)”
지명 리스트는 3년 혹은 7년간 꾸준히 봐온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다. 드래프트 직전까지 리스트는 계속 수정된다.
“대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모습을, 고등학생은 1학년 때부터을 평가한 자료를 토대로 지명 리스트를 작성해요. 3월에는 약 300명 정도가 리스트에 있는데 매달 회의를 거쳐 인원을 조금씩 줄여나가요. 8월 정도 되면 150명 정도의 인원만 남아요. 리스트에서 이름이 한 번 빠진 선수는 갑자기 150km/h를 던지지 않는 이상 다시 들어가기 어려워요. 그만큼 고민을 거듭하고 인원을 줄이기 때문이에요. 드래프트 직전 최종 회의를 통해 120명에서 많게는 150명 정도까지 최종 리스트를 확정해요.”
훈련은 선수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다.
대학생이 중간에 군복무를 마치는 경우는 무조건 실력이 먼저다. 실력이 좋으면 군복무를 마친 게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실력이 되지 않는다면 나이가 많아서 좋은 평을 받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3학년 때 포지션을 변경하는 선수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성장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위험이 크다는 의견과, 가능성을 보여주면 지명해 볼만하다는 의견이다.
“야수에서 투수로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타격이나 수비에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강한 어깨를 갖춘 선수는 투수로 전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올해 KIA 타이거즈에 지명된 이승재나 한화 이글스에 지명된 김규연 같은 선수죠. 이승재는 대학에 올라가서 투수로 전향했는데 최고 150km/h이 넘는 빠른 공을 던졌고, 김규연은 올해 처음 마운드에 올라가서 146km/h를 기록했어요. 투구폼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기 때문에 많은 스카우트가 관심을 가졌어요.”
스카우트는 선수의 실력은 물론 인성도 함께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지도자에게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선수와 짤막하게 인터뷰를 해요. 자칫하면 템퍼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대화하면서 이 선수의 성격이 어떤지 확인하는 정도예요. 부상 같은 건 직접 물어보지 않아요. 가끔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데, 의례상 물어보는 거예요. 부모의 직업이나 재산이 직접적으로 지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단, 부모의 성향은 참고하는 편이에요. 학교 코칭스태프를 마음에 안 든다고 잘라낼 정도로 극성이라면, 조금 더 선수의 성향을 신경 써서 확인하는 정도예요.”
#드래프트 막전막후
신인드래프트는 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드래프트 직전 합숙을 하면서 각 선수의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영상을 보고 의견을 공유한다. 회의와 드래프트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서 최고의 선수를 지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합숙하는 동안 잠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회의의 연속이에요. 드래프트 전략을 세우기 위해 육성, 전력분석, 현장의 코칭스태프까지 회의에 참여하죠. 구단의 2군 선수단을 고려해요. 비슷한 선수를 지명하는 것은 선수에게나 구단에나 모두 좋지 않아요. 스카우트는 그해 어떤 포지션의 선수가 좋은지 판단하고 의견을 전달해요. 가령 ‘2021 KBO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좋은 내야수가 많았어요. 그렇다면 내야수 보강을 위해선 빠른 라운드에 지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각 라운드에서 어느 수준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포지션별 지명 인원을 정해요. 내야수를 2명 뽑겠다고 하면 유격수 자원은 2라운드, 파워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5, 6라운드로 세분화해서 계획해요.”
스카우트 사이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만 그 선은 명확하다.
“1차지명 대상자나 상위라운드가 유력시되는 선수처럼 누가 봐도 잘하는 선수는 이야기해요. 하지만 흙 속의 진주라고 생각한 선수가 있다면 타 팀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관찰해요. 특히, 시즌 중반이 지나고 나면 서로 선수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지 않을뿐더러, 먼저 물어보지도 않아요. 소리 없는 전쟁의 시작이죠.”
2020 신인드래프트 현장
지난 ‘2020 KBO 신인 드래프트’부터 1명 이상의 대학 졸업 예정 선수 지명을 의무화했다. 대학야구를 활성화하자는 의도였으나, 기대와 달리 대학 지명 선수의 비율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 선수 지명이 의무화하면서 예전과 전략이 바뀌었어요.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를 지명하기 위해서 고민이 많아요. 대학교에서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졌어요. 대학 선수가 실력이 좋으면 당연히 지명하겠지만, 4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실력이 부족해요. 4년제 대학을 진학하면 1, 2학년 때 운동을 제대로 안 하고 노는 경우가 많아요. 2년제 대학 선수가 더 관심을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열심히 하니까 실력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얼리 엔트리 제도(대학교 4학년을 다 마치지 않고 일찍 드래프트에 나서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4년제 대학 선수도 열심히 운동할 거고 자연스레 대학야구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요.”
대망의 드래프트 당일. 각 구단은 마지막까지 리스트를 보며 혹시 실수가 없는지 철저히 확인한다. 긴장감 속에 한 명씩 이름이 불릴 때마다 각 팀의 스카우트는 리스트에서 이름을 지워나간다.
“1라운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요. 하지만 2라운드부터는 각 구단의 성향에 따라 지명이 천차만별이에요. 4라운드 정도로 생각했던 선수가 2라운드에 지명되기도 하고, 반대로 3~4라운드급으로 판단했던 선수가 하위라운드까지 밀리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죠. 선수 기량의 차이라기보단 각 팀의 전략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매년 미지명된 선수 중에 안타까운 선수가 있어요. 분명히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인데, 저희는 이미 동일 포지션의 선수를 지명해서 그 선수의 자리가 없는 거죠. 반대로 저희 팀에선 생각지도 않은 선수가 지명되기도 하고요.”
언택트로 진행된 2021 신인드래프트
어떤 팀은 단 한 번의 타임 없이 일사천리로 지명하는 반면에, 여덟 번의 타임을 부르며 신중을 기하는 팀도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스틸픽의 목적은 타 팀의 지명을 방해하는 게 아니다. 그 선수로 인해 팀의 전력이 상승하는 것이다.
“타임을 부를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드래프트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고, 예상치 못한 선수가 저희 순번까지 남아있을 때도 타임을 불러요. 물론 계획했던 선수가 빠져나갈 때도 타임을 부르죠. 특히 바로 앞에서 원했던 선수가 지명되면 아쉬움이 커요. 그 순간에 동일 포지션의 선수를 지명할지, 남아 있는 선수 중에 가장 뛰어난 선수를 지명할지 선택해야 해요. 그때의 상황을 고려해요. 상대 팀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지명하는 일은 없어요. 저희 팀에 필요한 선수를 뽑는 게 첫 번째입니다. 다른 팀이 저희가 노리는 선수를 눈여겨보는 것 같으면 비교적 빠른 라운드에 지명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선수가 저희 팀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지명하지 않아요.”
드래프트가 끝나도 스카우트는 쉬지 않는다. 선수의 육성 방안 등을 작성한 자료를 만들고 계약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즌이 끝난다.
“드래프트가 끝났다고 쉴 수 없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선수와 계약을 해야 하거든요. 꾸준히 컨디션 체크도 하고요. 이 모든 일이 끝나야 비로소 시즌이 끝나요.”
마지막으로 지명된 선수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프로에 지명됐다고 끝이 아니에요. 새로운 시작입니다. 기존의 선수를 밀어내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해요. 지금 상황에 만족하는 순간, 언제든지 방출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길 바라요. 여러분이 잘되면 저희도 뿌듯함을 느껴요. 꼭 1군에서 좋은 선수로 성장하길 응원합니다!”
야구공작소 신철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나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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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의 칼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