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연패, 감독 자진 사퇴, 베테랑 단체 2군행, 역대 시즌 최다패 타이기록, 김태균 은퇴. 한화 이글스의 2020년을 수식하는 키워드다. SK가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찌감치 확정지었을 10위 자리였다. 2년 전의 축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반강제로 바닥부터 다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한 해.
잔인했던 5월
지켜보던 이들의 들끓는 감정이 식은 지금 돌아보면, 한화의 18연패는 하나의 사고와 같았다. 크나큰 전력차는 부정할 수 없지만 불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일어나기 힘든 사고.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처럼, 거꾸로 한화는 준비되지 않은 팀이었기에 불행을 맞이했다. 그러나 모든 준비되지 않은 팀에게 사고가 찾아오지는 않는다. 불행 속에 감독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중심을 잡아야 했던 베테랑은 패전의 멍에를 쓰고 다 같이 퓨처스리그 강등이란 결과를 받아야 했다.
최다연패 기록 경신이라는 최악의 불명예를 벗어던지기 위해 팀은 낯선 얼굴들을 내세웠다. 선발 라인업의 절반을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예 선수로 채운 경기도 있었다. 그러나 요행수에 가까웠던 선택에 원했던 결과는 따라오지 않았다. 간신히 18연패에서 불명예를 끊은 뒤, 한화의 라인업에는 조금씩 낯익은 이름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반강제 리빌딩
시즌 종료 후 한화는 송광민, 최진행, 안영명, 이용규 등 오랜 기간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30대 이상 베테랑 선수들을 방출했다. 김태균과 윤규진은 은퇴를 택했다. 방출 이전에도 시즌 중 20대 초반 선수들의 출장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시즌 시작부터 다른 팀과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그동안 쌓인 리빌딩의 명분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모양새였다.
결과가 아주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최인호, 임종찬, 노태형 등이 올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으며 타선 리빌딩의 기수로 떠올랐지만 타격 성적은 밑바닥에 가까웠다. 다른 팀 소속이었다면 한창 퓨처스리그에서 성장을 도모해야 할 나이였기 때문일까. 1군의 벽은 그들에게 두텁기만 했다. 그나마 2년 차 노시환이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이며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그래도 투수진 쪽에선 기대할만한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만년 기대주 김범수는 부상 전 몇 경기에서 호투를 펼쳤다. 윤대경, 강재민, 김진영 등은 송은범과 이태양이 이적한 불펜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규정이닝에 미달했지만 김민우는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 시즌을 보냈다. 이 밖에 김진욱, 김종수 등은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나빴지만 이따금 번뜩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균
KBO리그 역대 최고 우타자 중 하나로 이름이 남을 전설이 방망이를 내려놓았다. 김태균은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한화 역대 최고의 타자이자 미래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한 자리를 예약해 놓은 위대한 선수였다. 여건 탓에 더 성대한 퇴장이 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 그만한 선수를 과연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팀 최고의 선수 – 노시환
한 시즌 동안 쌓은 기여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여기 노시환의 이름을 넣을 수는 없다. 그러나 2020년의 한화 팬들에게는 당장의 결과 대신 미래를 걸어볼 수 있는 선수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1년 성적만 놓고 보면 타율 0.220, OPS 0.685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8월부터 0.241/0.332/0.409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하고 홈런 8개를 쏘아 올리며 한층 발전한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전체
이유는 생략.
향후 전망
타 팀 대비 25-30세 선수 타격 성적이 현저히 뒤떨어진다. 하주석 정도를 제외하면 2010년대 주전 야수를 키워내지 못한 팀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어떻게든 2020년대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질 수 있을지 결과를 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류현진 이후 에이스가 전무한 투수진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째 반복되는 말이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이글스.
에디터=야구공작소 홍기훈
일러스트=야구공작소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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