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메이저리그 새로운 규정들, 결과는 어땠나

2020년 메이저리그는 ‘사상 초유의 시즌’을 치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막이 연기되고 경기 수가 기존의 3분의 1 수준인 60경기로 줄었으며, 장거리 이동을 줄이기 위해 지역적으로 가까운 팀들끼리만 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규정들이 여럿 도입되었는데, 그중에서는 3타자 룰처럼 코로나 사태와 관계 없이 도입된 규정도 있었고, 올해에만 특수하게 적용된 규정도 있었다. 새로운 규정들이 리그에 미친 영향이 어땠는지, 좋은 규정, 나쁜 규정, 애매한 규정(Good, Bad, Debatable)으로 나눠서 살펴보자.


Good


내셔널리그 지명타자 

전통적으로 아메리칸리그는 내셔널리그보다 타자친화적인 리그였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지명타자제의 유무 때문이었다. 사실상 ‘쉬어가는 타순’이나 다름없는 투수 타순 대신 팀내 가장 강력한 타자 중 한 명인 지명타자가 타석에 서므로 아메리칸리그의 공격력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제가 도입되면서 아메리칸리그는 타자의 리그, 내셔널리그는 투수의 리그라는 오래된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15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58점, 내셔널리그 15팀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4.71점으로 내셔널리그 경기에서 점수가 더 많이 났다. 플라이볼 혁명과 ‘탱탱볼 공인구’로 인해 완연한 타고투저 시대에 접어든 메이저리그이기에 이 변화가 당장 그렇게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다시 투고타저 시대가 오면 팬들은 지명타자제의 도입으로 인한 내셔널리그의 공격력 증가를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공격력 증가 외에 투수들의 부상 방지라는 이점도 있다. 작년 6월 맥스 슈어저는 번트 훈련을 하던 중 얼굴에 공을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과거 구대성과 왕첸밍은 주루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가뜩이나 부상 위험이 큰 포지션인 투수에게 위험 수당도 주지 않은 채 타격까지 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내셔널리그 지명타자제 도입의 또 다른 부수적 효과는 수비력이 떨어지는 강타자나 플래툰형 타자들이 내셔널리그 팀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KBO 리그에서 뛰었던 다린 러프와 에릭 테임즈 역시 올 시즌 새로운 규정의 수혜자였다.

내셔널리그 지명타자제는 선수들 사이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 2021시즌에도 적용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투수 타격은 연장전에서 모든 야수를 소모했을 때에나 드물게 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세계 프로야구 리그 중 내셔널리그와 함께 사실상 유이하게 투수 타격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센트럴리그도 지명타자제 도입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투수 타격은 조만간 야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으로 보인다.


포스트시즌 확대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은 오랫동안 각 리그 최강팀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최초의 월드시리즈가 치러진 1903년부터 1968년까지는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우승팀 간의 대결만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1969년 각 리그가 2개 지구로 나누어지면서 지구 우승팀끼리 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챔피언십시리즈가 탄생했다. 1994년에는 지구 수가 리그별 3개로 늘어남과 동시에 와일드카드제가 도입되어 각 리그에서 4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고, 2012년부터는 와일드카드 팀이 2팀으로 늘어났다. 10개 팀 중 5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KBO, 12개 팀 중 6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NPB에 비해 MLB는 여전히 가을야구 초대장이 적은 편이었다(30개 팀 중 10개 팀).

그러나 올해는 정규시즌이 짧아진 대신 포스트시즌을 확대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각 리그에서 8팀, 도합 16팀이 가을야구에 진출해 대제전을 치렀다. 급격한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2020년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그중에서도 16팀이 모두 참가한 와일드카드전은 나름 흥행에 성공했다. 길고 지루한 정규시즌을 줄이는 대신 포스트시즌 경기를 늘리면 선수들도 편하고, 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포스트시즌 확대에도 그림자는 있다. 먼저 단기전은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하기에 자격 없는 팀이 우승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규시즌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중간 정도의 순위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큰 이점이 없으므로, 최강의 로스터를 구축하는 대신 ‘적당한 수준의 전력’만 갖추고 포스트시즌에서의 요행을 바라는 팀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시즌 참가팀을 12팀~14팀 정도로 늘리되, 각 리그별 우승팀에게 상위 라운드 직행 티켓을 주는 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렇게 하면 중하위권 팀들은 정규시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레이스를 이어가게 될 것이며, 상위권 팀들에게는 최고의 성적을 추구할 유인이 생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흥행과 공정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안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연장전 승부치기 

7이닝 더블헤더와 더불어 야구의 기본적인 형식을 깨뜨리는 규정이기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사안이다. 10회 이후 매 이닝 ‘유령 주자’를 먼저 2루에 배치한 뒤 공격을 시작하는 승부치기 규정으로 인해, 올해 가장 오래 진행된 연장전은 연장 13회로 평년보다 훨씬 짧았다(2018년 18회, 2019년 19회). 연장전 승부치기 도입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전략을 가능케 했으며, 리드오프 투런 등 평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사라질 것이 확실시되는 규정이지만, 필자는 한 시즌만이라도 메이저리그에서 기존과 다른 신선한 야구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입장이다. 메이저리그는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보수적인 스포츠 리그 중 하나이며, 급진적인 변화를 수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Desperate times call for desperate measures(절박한 시기에는 절박한 방법이 필요하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연장전 승부치기는 사상 초유의 2020시즌을 맞아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방편이었지만, 더욱 많은 득점과 쏠쏠한 재미를 팬들에게 선물해 주며 나쁘지 않은 시도로 남게 되었다.


Bad


등판 시 최소 3타자 상대

2020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3타자 룰’의 도입을 발표했다. 3타자 룰의 내용은 투수는 일단 등판하면 최소 3명의 타자를 상대하거나 이닝을 끝마쳐야 한다는 것으로, 위기 상황에서 좌타자 한두 명을 막기 위해 등판하는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Left-handed One Out Guy)의 종말을 의미했다.

새로운 룰을 놓고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갈렸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3타자 룰이 경기 시간 단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3타자 룰로 인해 투수 운용 전략에 제한이 생겨 야구의 재미가 줄어들 것이며, 많은 좌완 불펜 투수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3타자 룰은 게임의 양상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애당초 경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이라는 기대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3타자 룰을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닝 중간의 빈번한 투수 교체에 팬들이 싫증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공수 교대 때 투수 교체를 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어차피 광고 시간이니까. 그러나 매치업 싸움이라는 명목 아래 한 이닝 안에서 두세 번씩 투수 교체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야구 경기에 광고를 넣은 건지 광고 사이에 야구를 넣은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3타자 룰은 야구 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주요 원인인 이닝 내 투수 교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칼럼에 따르면, 이닝 내 투수교체는 지난 시즌 경기당 1.1번에서 올 시즌 경기당 1.25번으로 오히려 증가했다(9월 20일 기준).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닝 내 투수교체 횟수는 지난 25년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는데, 투수교체 횟수를 줄이기 위한 룰이 도입된 해에 정반대로 증가를 한 것이다. 우연이라면 정말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기존의 25인 로스터가 28인으로 늘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을지도 모른다. 팀들이 불펜 투수를 작년보다 한두 명씩 추가해 로스터를 꾸렸으므로, 투수 교체 횟수 자체가 늘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7이닝 더블헤더와 승부치기 룰의 도입으로 경기당 평균 이닝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경기당 평균 불펜 투수 등판 횟수는 3.43회로 작년(3.41회)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닝 내 투수교체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완전치 않은 몸 상태로 개막을 맞이한 투수들이 많다 보니 선발 투수들이 이닝을 끝마치지 못하고 교체되는 일이 잦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리그 평균 경기당 승계주자 수는 2019년 1.47명에서 2020년 1.58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또한 경기 수가 줄어 매 경기가 평년의 3경기에 가까운 중요도를 가지다 보니 감독들이 중요한 순간 이닝 내 투수교체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잦은 투수 교체에 야유를 보낼 관중이 없다는 점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이닝 내 투수교체가 증가한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3타자 룰의 도입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의도한 효과를 전혀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3타자 룰은 ‘코로나 시즌’ 때문에 급조한 다른 규정들과 달리 원래부터 도입이 예정돼 있던 규정이었는데, 정작 결과는 가장 좋지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Debatable


7이닝 더블헤더

아마도 올해 도입된 규정들 중 가장 실제적이고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규정일 것이다. 몇몇 팀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시즌 초반 많은 경기가 연기되었고, 짧은 시즌이지만 여느 해보다 많은 수의 더블헤더가 치러졌다. 가뜩이나 시즌 준비가 평년에 비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선수들이 많았으므로, 선수 보호라는 명분 아래 7이닝 더블헤더 도입이 논의되었다.

새로운 더블헤더 규정이 최종적으로 합의된 것은 시즌이 개막하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이처럼 중대한 규정 변화가 시즌 중반에 일어난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규정으로 인해 긴 오프시즌 동안 쌓인 야구 갈증을 해소해줄 경기의 양이 줄어들어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고, 선수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는 시각 또한 존재했다. 팬의 입장에서 7이닝 더블헤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2020년 8월 28일(한국시간),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연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절반에 가까운 MLB 팀들이 경기를 보이콧했다. 이날 진행하지 못한 경기들은 다음날, 혹은 시즌 막판 더블헤더로 치러졌다. 그런데 이것이 7이닝 더블헤더 규정과 맞물려, 경기를 보이콧한 팀들만 2경기에서 도합 4이닝을 덜 뛰게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Black Lives Matter에 동참한 선수들이 태업을 하기 위해서 경기를 보이콧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7이닝 더블헤더의 악용 가능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7이닝 더블헤더 규정이 정착되면, 우천이나 기상이변, 정치·사회적 변수 등을 맞아 경기 강행 여부를 결정할 때 많은 팀들이 경기를 미루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하는 편이 체력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이미 야외 스포츠 중 우천 취소가 잦은 편에 속한다. 9이닝 더블헤더가 선수들에게 주는 막대한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근거로 새로운 규정을 찬성하는 팬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작별을 고하고 싶은 2020년의 유산이다. 팬들은 더 많은 야구를, 매일 보고 싶다.

야구공작소 나상인 칼럼니스트
참조=Baseball Reference, Baseball Prospectus, USA Today,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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