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투구폼이란 무엇일까?

좋은 투수를 이루는 요소에는 구속, 구위, 제구력 등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내구성’을 뽑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롱런을 하기 위해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안전한 투구폼이 권장되곤 하는데 투구폼의 안전성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공포의 인버티드-W

위험한 투구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양팔을 분리했을 때의 모양이 뒤집힌 W 모양이 되는 인버티드-W 투구폼이다. 최초로 인버티드-W의 위험성을 알린 피칭 이론가 크리스 오리어리는 그렉 매덕스, 놀란 라이언 등 롱런한 투수들은 인버티드-W형 투수가 아닌 반면 마크 프라이어, 빌리 와그너 등 인버티드-W형 투수들은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으므로 인버티드-W는 위험한 투구폼이라고 지적했다.

그렉 매덕스의 투구폼
마크 프라이어의 투구폼

하지만 오리어리의 주장은 몇몇 유명 선수들의 케이스를 일반화한 것이므로 설득력이 떨어지고, 인버티드-W가 직접적으로 투수들의 부상을 유발한다고 증명한 자료 또한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2015년, 인버티드-W가 부상을 유발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의료계 종사자인 위미 도우위, 도날드 돌체, 앤드류 링컨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2010 시즌의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인버티드-W와 그 외 투구폼 둘로 나눈 뒤 각각 어깨, 팔꿈치, 또는 손목 수술의 확률을 구했다.

그 결과 인버티드-W형 투수들과 아닌 투수들 간의 수술 확률 차이는 3%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를 통하여 인버티드-W가 직접적으로 부상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위험한 투구폼은?

2009년, 포인트 로마 나사렛 대학교 교수 아넬 아기날도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헨리 체임버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대학교, 마이너리그,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대상으로 바이오메카닉 측정장비를 이용하여 다양한 투구폼에 따라 팔꿈치에 걸리는 토크1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상체의 회전 타이밍, 어깨의 외회전 각도, 그리고 팔꿈치의 굽힘 각도 등 세 가지가 팔꿈치에 걸리는 토크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사이드암 투수들은 오버핸드 투수들에 비해 팔꿈치에 더 큰 토크가 측정되었다고 한다.
앞발(우투수 기준 왼발)이 땅에 닿기 전에 상체가 회전한 경우, 앞발이 땅에 닿은 후에 회전한 경우보다 팔꿈치에 더 큰 토크가 걸렸다. 그 이유는 상체가 일찍 열림으로 인하여 공을 던질 준비를 마치지 못한 팔이 상체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더 빨리 움직여야 하므로 팔이 받게 되는 충격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체의 회전 시점에 따라 팔꿈치에 걸리는 토크. (우)앞발의 착지 전, (좌)앞발의 착지 후

앞서 첨부한 NCBI의 연구에서도 이 점에 주목하여 2010시즌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앞발의 착지 시점 기준으로 상체가 일찍 열리는 투구폼과 일찍 열리지 않는 투구폼 둘로 나눈 뒤 각각 어깨, 팔꿈치, 또는 손목 수술의 확률을 구했다.

상체가 일찍 열리는 투수들에게서 수술 확률이 10% 더 높게 나오면서 인버티드-W 여부와 달리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어깨의 외회전 각과 팔꿈치의 굽힘 각의 경우, 그 수치가 클수록 더 높은 토크가 측정되었다. 팔꿈치가 90도 이상 벌어지는 현상을 미국에서는 ‘Forearm Flyout’이라 부르는데, 이 또한 팔이 벌어짐으로 인하여 팔이 앞으로 제때 넘어오지 못해 팔이 받는 충격이 커진다.

Forearm Flyout의 예시

정리하면, 과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위험한 투구폼은 상체가 일찍 열리고 어깨와 팔이 벌어져서 나오는 투구폼이다.
그렇다면 왜 일부 인버티드-W형 투수들은 부상에 시달리는 걸까? 그 이유는 인버티드-W는 팔꿈치를 치켜올렸다가 던지는 투구폼이기 때문에 팔이 공을 던질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몸통이 먼저 회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같이 인버티드-W형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몸통과 팔 간의 타이밍이 잘 맞는 선수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위험한 투구폼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투구폼. 인버티드-W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상체의 회전 직전에는 팔이 공을 던질 준비를 마친 상태다.


과연 투구폼만의 문제일까?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한 투구폼을 가졌다 하더라도 부상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투수가 하는 것처럼 몸이 측면을 향하면서 공을 던지는 일 자체가 인체 역학을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피칭 이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완벽한 투구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저스틴 벌랜더마저 올해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상적인 투구폼을 바탕으로 그동안 많은 이닝을 쌓아왔지만, 결국 지나친 이닝 소화가 독이 되어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잘못된 투구폼 외에도 부상의 원인은 다양하다. 혹사 후유증, 부족한 워밍업, 보강운동의 부재 등으로 인해 많은 투수들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부상을 당하곤 한다. 필자는 부상 방지를 위해 투구폼부터 건드리기보다는 철저한 등판 관리, 체계적인 보강운동 프로그램 개발 등이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투구폼은 선수마다 고유한 신체적 특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므로 함부로 수정했다가 그동안 선수가 쌓아온 감각과 밸런스가 무너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드암으로 던질 때 팔꿈치에 걸리는 토크가 더 크다고 해서 사이드암 투수를 전부 다 ‘안전한’ 오버핸드 투수로 바꿔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야구공작소 양재석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서주오, 나상인

사진 출처=chrisoleary.com, youthbaseballedge.com, bostonglobe.com

자료 출처=Orthopaedic Journal of Sports Medicine, The American Journal of Sports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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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체를 회전시키는 물리량. 팔꿈치의 토크가 커질수록 외력을 많이 받게 되면서 충격량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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