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커재판

100마일 유망주는 어떻게 팀을 떠나게 되었는가?

2019년 2월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최고의 포수 J.T 리얼무토를 얻기 위해 식스토 산체스를 마이애미 말린스에 내주는 선택을 했다. 20살의 식스토 산체스는 100마일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커맨드 능력을 겸비한 명실상부한 탑 유망주로, 최근 유망주 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필리스의 선택은 이례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산체스의 작은 키와 이에 따른 부상 이슈였지만 상위 싱글A에서 100마일까지 터치한 산체스를 쉽게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패스트볼 움직임이었다. 통상적인 패스트볼과는 다르게, 하위 레벨에서 뛸 때부터 산체스의 패스트볼은 가라앉는 움직임을 띠었다. ‘플라이볼 혁명’이 불던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패스트볼의 움직임은 산체스를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도 빠른 패스트볼을 던진 산체스지만, 17년과 18년 두 해 동안 삼진율(싱글A~상위 싱글A 141.2이닝 129삼진)은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위기의 싱커볼러들, 심판대에 오르다

싱커볼러들의 수난은 메이저리그에 ‘플라이볼 혁명’의 바람이 불어올 때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좀 더 높은 발사각이 타구의 생산력을 높인다는 가설을 골자로 하고 있는 이 변화들은 리그에 어퍼스윙과 풀 히팅 바람을 불어놓았다.

‘볼을 띄우는’ 스윙이 타자들의 생산력에 비약적인 상승을 가져다준다는 가설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2017년 즈음을 기점으로 타자들의 성향이 뜬공을 많이 생산해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표1 : 2015~2019 MLB 평균 땅볼 비율, 뜬공 비율, 홈런/플라이볼 변화]
[표2 : 2015~2019 MLB 평균 SLG(장타율), xSLG(기대장타율), xISO(기대순수장타율) 변화]

2015년에서 2019년으로 갈수록 뜬공 비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땅볼 비율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자들은 의도적으로 공을 띄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또한 꽤 긍정적이었다. 홈런이 되는 비율은 2015년 11.4%에서 2019년 15.3%까지 늘었으며,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로 측정하는 기대장타율(xSLG)과 이에 따른 기대순수장타율(xISO) 또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러한 변화는 ‘포심보다 더 떨어지는 공’을 구사하는 싱커볼러들에게는 직격탄이었다.

퍼올리는 스윙에 대응하기 위해 투수들은 보다 상하 움직임을 늘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하이 패스트볼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타자들이 장타에 집중하는 만큼, 투수들은 타자들로 하여금 헛스윙을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인플레이 타구의 억제’가 아닌 ‘약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는 데 주안점을 둔 싱커볼러들은 큰 벽에 부딪쳐야 했다. ‘플라이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플레이 타구 자체가 위험’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루카스 지올리토, 찰리 모튼, 타일러 글라스노우, 게릿 콜 등 많은 투수들이 싱커를 버리자마자 비상했고, 한때 메이저리그를 주도했던 싱커볼러들은 비주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필리스 역시 이런 경향을 읽었고, 이는 산체스를 포기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싱커재판 – 플라이볼 시대에 싱커볼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싱커는 투수들을 홈런공장으로 보내는 장의사인 걸까. 아니면 적은 사례를 일반화한 허상일 뿐일까. 이 글에서는 싱커를 주로 사용하는 투수와 그렇지 않은 투수들 간의 차이를 바탕으로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표본이 되는 투수들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MLB 투수이다(200타석 이상). 싱커 비율이 15% 이상인 투수들을 싱커볼러로, 미만인 투수를 싱커볼러가 아닌 투수로 분류했으며, 전체 게임 중 80% 이상 선발로 등판한 투수들은 선발로, 미만인 투수들은 불펜으로 분류했다.

[그림 1: 2015~2019 MLB의 싱커볼러(파랑색)와 다른 투수들(빨강색)의 xISO 중앙값 비교]
[그림 2: 2015~2019 MLB의 싱커볼러(파랑색)와 다른 투수들(빨강색)의 타구 속도 중앙값 비교]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싱커볼러와 다른 투수들에게서 뚜렷한 피장타에서의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타구 속도와 타구 각도를 기반으로 한 기대순수장타율(xISO)은 리그의 추세에 따라 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싱커볼러들과 싱커볼러가 아닌 투수들 사이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2019년 들어 기대순수장타율이 급등했지만, 이는 리그 전체적으로 HR/FB, 기대순수장타율 등 장타에 관련된 수치들이 상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2018~2019 HR/FB 12.7% → 15.3%, 기대순수장타율 .161 → .182).

타구 속도에서도 여전히 큰 차이는 드러나지 않았다, 불펜에서는 싱커볼러들이, 선발에서는 싱커볼러가 아닌 투수들이 강한 타구를 조금 더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차이는 매우 적을 뿐더러 해마다 변동폭이 컸다. 통념과는 다르게, 싱커볼 투수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인플레이 타구의 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의 분석들은 인플레이 타구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보다 완전한 분석이 되려면, 투수 입장에서 인플레이 타구보다 유리한 결과물인 삼진의 경우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림 3: 2015~2019 MLB의 싱커볼러(파랑색)와 다른 투수들(빨강색)의 Whiff%(헛스윙률) 중앙값 비교]
[그림 4: 2015~2019 MLB의 싱커볼러(파랑색)와 다른 투수들(빨강색)의 xBA(기대 타율) 중앙값 비교]

싱커볼러들은 그렇지 않은 투수들에 비해서 헛스윙을 유도하지 못한다. 안타가 될 확률을 0으로 만드는 삼진이 적으므로, 자연히 기대 타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

분명히 리그 전체의 헛스윙률은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싱커볼러들의 헛스윙률 또한 해가 갈수록 상승했다. 하지만 싱커볼러 투수들의 헛스윙률은 리그 추세에 비해 더디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불펜과 선발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경향이다.

2015년에는 선발투수는 1%p가량, 불펜투수는 2%p가량 헛스윙을 덜 유도했지만, 2019년에 와서는 그 차이가 1%p가량 더 벌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투수들은 어퍼스윙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스윙을 유도하는 전략을 어느정도 찾아냈지만, 싱커볼러들은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 타율 역시 비슷한 흐름을 그리고 있다. 싱커볼러들은 다른 투수들에 비해 ‘확실하게’ 기대 타율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는 다른 투수들에 비해 헛스윙을 유도하지 못하고, 따라서 삼진으로 타자들을 돌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진을 유도하지 못하는 만큼 타석 기회는 인플레이 타구로 치환되고, 이는 인플레이 타구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플라이볼 시대에 치명적임이 틀림없다.

[그림 5 : 2015~2019 MLB의 싱커볼러(파랑색)와 다른 투수들(빨강색)의 땅볼 비율 중앙값 비교]

그렇다면 싱커볼러의 장기인 땅볼 유도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까?

플라이볼 시대가 전개되면서 전체적인 땅볼 비율은 내려가는 추세이다. 이는 싱커볼러와 싱커볼러가 아닌 투수들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싱커볼러들의 땅볼 비율은 선발이든 불펜이든 크게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싱커볼러가 아닌 투수들의 땅볼 비율은 선발에서는 2%p가량, 불펜에서는 5%p가량 급격하게 떨어졌다.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 높은 쪽을 공략했고, 수직 로케이션에 크게 영향을 받는 땅볼 비율은 자연히 낮아졌다. 하지만 하이패스트볼에 적합하지 않은 싱커볼러들은 수직 로케이션을 다른 투수들만큼 높게 가져가지 않았다. 그 결과 삼진을 어느 정도 포기한 대가로 땅볼 비율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싱커裁判? 싱커再版!

결국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첫 번째, 분석한 지표에서 선발과 불펜의 뚜렷한 추세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싱커볼러들은 인플레이 타구 질에 생각보다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싱커볼러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플라이볼 시대에 이르러 삼진의 가치가 땅볼의 가치를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세 번째 결론에 주목해, 싱커볼러들을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裁判)보다 ‘다시 판단’하는 재판(再版)의 대상으로 한 번 바라보자.

싱커볼러들은 땅볼 유도에 있어 다른 투수들에 비해 현저하게 장점을 보이며, 이는 오히려 플라이볼 시대 도래 이후 더 두드러졌다. 아직 그들이 가진 무기의 빛이 바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땅볼을 아웃카운트로 치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 크리스 데이비스가 “이건 야구가 아니야” 라고 외치게 만들었던 수비 시프트 말이다.

이렇게 싱커 자체의 땅볼 유도에 기댈 수도 있지만, 삼진이 안타를 역전한 ‘삼진의 시대’에서 싱커 자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맞서 싱커볼러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필리스의 에플린은 타자들의 경향에 따라가기 위한 선택지로 보조무기의 보완을 택했다. 그는 싱커 비율을 21.9%에서 51.1%로 크게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K%를 18.3%에서 29.7%로 끌어올렸다. 이런 변화의 비결은 커브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2019년 커브 횡무브먼트 평균대비 +3% -> 2020년 +17%). 삼진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결정구가 생기자, 타자들은 이제 싱커만을 염두에 둘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리그 평균보다 높은 땅볼을 여전히 뽑아내면서, 보조무기인 커브로 삼진을 양산해내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선발투수는 폭발적인 구속으로 싱커의 단점을 극복 중이다. 2020시즌 평균 96.6mph의 싱커를 23.8%의 비율로 구사한 그는, 올 시즌 싱커를 한 번이라도 던져본 308명 중 평균구속 22위에 올랐다. 싱커의 피안타율은 .368로 높지만 기대 피안타율은 그보다 훨씬 낮은 .278에 머물렀고, 기대 장타율은 .324로 장타를 잘 억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 구종으로 봐도 기대 타율을 .230으로 잘 억제하고 있다.

삼진을 잡을 수 있는 보조무기를 보완하거나, 아니면 압도적인 구속을 이용하여 ‘약한 땅볼을 유도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으로 두 투수는 비효율적인 구종이라 불리는 싱커를 자신의 투구에 녹여냈다. 늘 그렇듯, 싱커볼러들은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투수가 누구냐고? 바로 패스트볼의 움직임 때문에 트레이드 통보를 받아야 했던 식스토 산체스이다.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원영, 나상인

사진 출처=ESPN
기록 출처 = Fangraphs, Baseball Savant, Baseball Reference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