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역행하는 투수 유희관, 밀어치기를 억제하라

[야구공작소 송동욱] 2002년 5년 6,500만 달러라는 계약을 통해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일원이 되었을 당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89마일(143.2km/h)이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2.3마일에 달하며 시속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도 적지 않다. 이는 KBO 리그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140km/h만 던져도 강속구라 불렸다면 이제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0km/h를 상회하고 150km/h를 던지는 투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투수들의 구속 증가는 리그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트렌드를 역행하고 있는 투수가 잠실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푸근한 인상과는 반대로 칼날 같은 제구로 타자들을 잡아내는 두산의 등번호 29번, 유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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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투하고 있는 유희관. 사진 제공-두산 베어스>

 

-이길 줄 아는 투수, 두산의 기둥이 되다.

장충고-중앙대를 졸업한 유희관은 2009년 2차 6라운드로 두산에 입단했다(전체 42번). 큰 기대를 받으며 화려하게 입단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2012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124이닝 동안 11승 3패, 2.4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듬해 2013년부터 올 시즌까지 거둔 성적을 보면 그는 분명 KBO 리그 최정상급의 좌완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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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6시즌(9월 14일)까지 유희관의 성적(괄호 안은 리그 내 순위)>

 

유희관은 2013년부터 2016년(9월 14일 기준)까지 다승 1위, 최다 이닝 2위, 선발등판횟수 3위를 기록하며 선발투수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올 시즌도 9월 14일까지 다승 3위인 15승을 거두며 순항 중이다. 더불어 베어스 소속 좌완 투수로는 최초로 4시즌 연속 10승을 기록하는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길 줄 아는 투수’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성적이다.

-풀타임 선발투수 3년차, 타자들도 해법을 찾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4년 간 유희관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과는 별개로 그가 보여주는 성적의 세부 지표를 들여다 보면 타자들도 유희관이 던지는 공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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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관의 2016시즌 타석별 투구 분포도 (자료 출처 STATIZ)>

 

위 그림은 올해 유희관의 타석별 투구 분포도를 나타낸 것으로, 투수 시점에서 바라 본 것이며 큰 숫자는 구사율(%), 작은 숫자는 던진 공의 개수를 나타낸다. 유희관은 기본적으로 좌우 타석을 가리지 않고 바깥쪽 승부를 즐겨 하는 투수다.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싱커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지만 결국 타자와의 승부는 바깥쪽에서 이루어진다. 그럼 여기서 ‘몸쪽 공은 당겨서 치고 바깥쪽 공은 밀어서 친다’는 타격의 기본을 짚고 넘어가 보자. 타자들은 유희관의 공을 정석대로 잘 공략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아니다. 올 시즌 포함,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한 3년 간 유희관의 타구 분포를 보면 타구의 분포 비중과 안타 허용 개수 모두 당겨친 타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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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6시즌 유희관의 타구 분포 및 개수(당/밀순)>

 

하지만 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올 시즌부터는 당겨친 타구와 밀어친 타구 간의 간극이 상당히 좁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밀어친 안타의 개수가 최근 3년 간 가장 많은 것은 물론, 당겨친 안타의 개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덧붙여, 밀어친 타구의 피안타율 역시 0.347로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투수의 공에 타이밍이 가장 잘 맞았을 때 타구가 향하는 방향인 중앙 쪽으로의 타구 개수는 154개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고, 그에 따라 중앙 쪽 피안타의 개수도 62개로 리그 에서 세 번째로 많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본인의 커리어 통산 가장 높은 0.290이라는 피안타율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타자들이 더 이상 유희관의 느린 공을 힘들여 잡아 당기는 대신 몸에 힘을 뺀 채 툭툭 밀어치고 있는 것이다.

 

-늘어나는 안타성 타구, 흔들리는 제구력

투수가 안타를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던진 공도 안타를 쳐내는 타자가 있는 반면, 아쉬운 공을 던져도 아웃 처리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유희관도 그렇다. 올 시즌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피안타(193개)를 허용하고 있지만 현재 KBO리그가 타고투저인 점, 더 많은 피안타를 허용하고도 좋은 성적을 거둔 2014년을 생각해보면 큰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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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6시즌 유희관의 투구 성적 세부지표(괄호 안은 리그 순위, 규정이닝 이상)>

 

그러나 올 시즌 유희관의 진짜 문제는 스트라이크 존 자체를 잘 공략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들어간 비율(Zone %)의 저하는 볼넷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탈삼진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이는 리그에서 네 번째로 나쁜 5.20의 FIP(수비무관평균자책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 한가지, 올 시즌 유희관이 보여주고 있는 잔루율(LOB%)은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72.9%/리그 평균67.7%). 지금 기록하고 있는 성적도 운이 꽤나 따라줬다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올 시즌 타자들이 들고 나온 새로운 대처법에 유희관은 생각보다 큰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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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유희관은 호투할 수 있을까– 사진 제공: 두산 베어스>

 

올 시즌 유희관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한 시즌을 온전히 슬럼프 없이 넘어가는 투수는 없다. 현대 야구는 분석의 싸움이고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길 줄 아는 투수가 던지는 130km/h의 공이 단지 빠르기 만한 150km/h의 공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유희관이 남은 시즌, 밀어치기라는 난적을 넘어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기록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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