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스윙론과 코칭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버트 푸홀스, 마이크 트라웃. 이 셋은 모두 뛰어난 성적을 올린 타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스윙이 다운 스윙이라고 설명한다는 것. 다음의 예를 함께 보자.

로드리게스는 점 A에서 점 B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하려면 배트가 직선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푸홀스는 배트가 옆으로 돌아 나오면 공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없기 때문에 배트 손잡이 부분을 내려찍듯이 스윙한다고 한다.

트라웃은 다운 스윙에 대한 특별한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해왔기 때문에 굳이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실제 스윙 모습을 보면 다운 스윙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어퍼 스윙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괴리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운 스윙은 일견 불합리해 보인다. 마운드의 높이와 투수의 키를 고려했을 때, 대부분의 투구 궤적은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 공과 배트가 만나는 면적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서라도 스윙의 궤적은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것이 좋다. 또한 배트의 궤적이 직선이 되어야 한다는 로드리게스의 말에도 어폐가 있다. 실제로 로드리게스의 영상이 처음 공개가 되었을 때, 미국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최속강하선의 원리에 따르면, 점 A에서 점 B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은 직선이 아닌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최속 강하선 실험. 직선이 거리는 가장 짧아도 속도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가장 빠르다>

하지만 이렇게 다운 스윙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비단 위 세 선수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다운 스윙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국내 모 프로야구단에서 제작한 야구 교본이다. 나쁜 예라고 나온 그림이 오히려 선수들의 실제 스윙 모습과 흡사하다.

다운 스윙을 가르치는 지도자 중 일부는 다운 스윙이 어퍼 스윙에 비해 비거리는 부족하지만, 타구에 백스핀을 거는 기술적인 부분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타구의 회전수와 비거리의 상관관계

하지만 랩소도에서 공개한 위 표에서 보듯, 백스핀이 과할 경우엔 오히려 비거리에서 손해를 보기도 한다. 게다가 다운 스윙과 어퍼 스윙 중 어느 쪽이 최선의 회전수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Feel vs Real

사람들은 왜 다운 스윙론을 얘기하는 것일까. 지도자들 사이에서 어퍼 스윙이 기피되는 이유에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감도 분명 큰 역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어퍼 스윙이라고 하면 ‘홈런 스윙’, ‘모 아니면 도’, ‘정확도보다는 비거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등의 키워드와 궤를 같이한다. 강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스윙과 약하더라도 정교한 스윙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택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념과는 달리 어퍼 스윙은 단순히 비거리에만 중점을 둔 것이 아니며, 다운 스윙을 하면 정확도가 올라간다는 주장의 근거도 부족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운 스윙론을 마냥 무의미하다고 경시할 필요는 없다. 수도권 A구단 전력분석원은 ‘현장의 지도자들도 선수들의 실제 스윙이 다운 스윙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운 스윙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전에서도 다운 스윙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과한 어퍼 스윙으로 타격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부 타자들의 스윙에 밸런스를 주기 위한 교정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푸홀스가 내려찍는 ‘느낌’을 가지고 스윙에 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 초반의 여러 스윙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다운 스윙을 머릿속에 넣고 스윙을 하는 것과 실제로 다운 스윙을 하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올바른 코칭이란?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는 선수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지도자로서는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수 시절 노하우를 가르칠 때 본인의 ‘느낌’을 바탕으로 지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선수의 말이라면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다. 느낌을 토대로 결론을 끼워 맞추다 보면, 위의 예처럼 다운 스윙이 백스핀을 거는 데에 유리하다는 식의 잘못된 주장이 뒤따르게 된다.

요즘 한국과 미국을 가리지 않고 현장에서 다양한 데이터가 등장하면서 선수와 코치의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 더욱 큰 가치를 가지게 됐다. ‘느낌’이나 ‘경험’ 같은 비가시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전달하는 일, 올바른 코칭의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야구공작소 양재석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이도삼, 홍기훈

자료 출처= rapsodo.com

사진 출처= Alex Rodriguez, PastimeAthletics, FOX Sport West, Baseball Swingpedia, Vsauce,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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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1. 참고로 저 교본서에 나온 이승주 선수는 1군 통산 100타석도 못나오고 방출 당했죠. 2군 타율은 좋았지만 장타율은 거기서도 그저그랬습니다.

  2. 실제 스윙 궤적은 언뜻 다운스윙이라는 이론과 이름과 거리감이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었는데,
    엘리트 프로선수들의 실제 타격은 이종열 해설위원의 해설에 의하면,
    임팩트 후 피니쉬 동작에서 윗손이 아래를 향하면 다운,
    위를 향하면 어퍼스윙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테니스 라켓으로 스트롴을 치면,
    이때 라켓 면이 나중에 90도 위상 변화를 일으키면,
    다운, 0도의 위상이면 어퍼스윙이고,
    그 중간쯤이 레벨스윙이 될겁니다.

  3.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읽기 좋은 글이네요. 특히 올바른 코칭에 대한 의견은 굳이 야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닌 다른 분야의 지도자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내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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