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김지현] ‘아킬레스 건’, ‘옥에 티’ 와 같은 말이 있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캐릭터들에게도 한 가지 정도의 약점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년 연속 KBO리그를 제패한 두산 베어스는 어떨까?
2016년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은 4.46으로 전체 1위, 탄탄한 선발진의 평균자책점도 4.11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계투 평균자책점은 5.08로 5위에 머물렀다. 즉 두산 베어스에게 약점이 있다면 바로 불펜이라고 볼 수 있다.
불펜이 어땠는데요?
2016년 팬 페스트에서 사인을 해주는 이현호의 모습 / 사진=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팬들이 가장 기대했던 투수는 바로 신예 함덕주, 진야곱 그리고 이현호였다. 2015년 함덕주는 데뷔 첫 해임에도 불구하고 2세이브 16홀드, 3.6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마무리난에 허덕인 두산 불펜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진야곱은 102.2이닝을 던지며 5승을 거뒀고, 이현호도 6승에 4.19의 평균자책점으로 두산의 새로운 선발 자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2016시즌에 완전히 무너졌다. 함덕주는 구속 저하와 함께 9이닝당 볼넷(BB/9)이 11.42까지 오르는 등 제구의 문제도 함께 겪었다. 이에 따라 1군 무대에 거의 얼굴을 비추지 못했고 결국 포스트시즌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산의 미래라고 불리던 2015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현호는 구위가 떨어져 볼넷에 비해 탈삼진의 비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15년의 삼진/볼넷 비율(K/BB)은 2.48로 안정된 편이었지만 2016년엔 1.6을 기록했고, 9이닝당 탈삼진(K/9) 또한 9.11에서 6.13으로 떨어졌다. 결국 41경기에 출전해 47이닝을 던졌지만 팀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WAR -0.11을 기록했다.
진야곱은 시즌 초반부터 9월까지 컨디션을 유지하며 불펜진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그러나 이후 경기 외적으로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고 마침내 포스트시즌에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2017년은 어떨까? 다행히 2017년의 두산 불펜에도 희망은 있다.
고봉재 : 운과 경험 쌓기
30번 고봉재, 지금부터 지켜봐 주세요. / 사진=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고봉재는 경남고와 호원대를 졸업하고 2016년 2차 3라운드 25순위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혜성 같은 우완 사이드암의 등장으로 많은 팬들이 설렜으나 지난해에는 23.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6.17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소화 이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6.17이라는 평균자책점만 본다면 고개를 저을 만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김태형 감독은 8월에만 14경기, 9월에는 7경기에 내보내며 고봉재를 중용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높은 평균자책점 이면에 있는 그의 피칭 자체는 준수했기 때문이다. 23.1이닝 동안 삼진은 18개를 잡아낸 반면 볼넷은 2개였고 홈런은 단 하나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즉 그의 높은 평균자책점은 안타가 실점으로 빈번하게 연결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BABIP는 0.403으로 높았고 잔루율은 56.2%로 낮았다. 지난 시즌 고봉재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음에도 고봉재는 가능성이 높은 투수로 평가된다. 올해 운이 따르고 많은 경기를 치러 본다면 충분히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 시즌 두산 베어스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조웅천 코치가 옆구리 투수였던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도 조웅천 코치는 다음 시즌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사이드암 고봉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용찬 :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후 충분한 회복
한국시리즈 4차전에 구원 투수로 등판한 이용찬의 모습 / 사진=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선수는 이용찬이다. 지난 시즌 군 복무를 마친 이용찬을 곧바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등록했을 때 팬들의 반응은 열렬한 환호보다는 걱정과 불안함에 더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용찬은 2016년 상무에서 41이닝 동안 7.0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용찬의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이는 충격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7.02라는 높은 평균자책점에도 불구하고 43 탈삼진 10볼넷이라는 좋은 K/BB를 보여줬고, 이를 바탕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돼서도 6.2이닝동안 2.70의 평균자책점과 1.05의 WHIP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오른 팔꿈치의 부상으로 뼛조각 제거 수술은 불가피했지만 회복의 속도가 빠른 수술인 만큼 복귀 시점은 5월, 늦어도 전반기 이내로 점쳐지고 있다. 올해 복귀 여부가 불투명한 정재훈이 없는 상황에서 이용찬은 다시 한번 비상해야 한다.
이현승 : 충분한 휴식과 더위 피하기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나간 ‘가을 남자’ 이현승 / 사진=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선수는 이현승이다.
지난해 이현승은 후반기 들어 급격히 무너졌다. 체력 저하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2015년의 포스트시즌 강행군에 이어 프리미어 12에서도 던진 이후 곧바로 2016시즌을 준비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벅찰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이브 상황이 아닌 때의 등판도 많았고, 3일 연속 등판도 있었다. 결국 전반기는 버텼지만 여름 이후로는 어디 하나 괜찮은 부분 없이 시즌을 마쳐야 했다.
희망적인 점은 이현승의 체력이 회복되면 본래 가지고 있는 기량을 뽐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현승은 연투에 굉장히 약한 선수로 3-5일 정도 쉬고 등판했을 때의 성적이 가장 좋다. 지난 시즌에도 이현승은 계속되는 부진과 부상 후유증, 체력 고갈로 인해 9월부터는 등판간격을 넓혀 어느 정도의 휴식을 보장받았다. 덕분에 한국시리즈에서는 완전히 회복된 컨디션으로 3.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가을에 강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현승의 2016 시즌 등판 간격에 따른 성적 변화
정규시즌 후반기 이현승에게 실망을 가졌던 팬들은 포스트시즌의 활약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WBC 연습이 관건이지만, 이번 시즌에는 이용찬, 홍상삼 등과 같은 다른 투수들과 역할을 조금 나눠 적당한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체력적으로 적절히 관리받는다면 이현승은 올해도 팀의 마무리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손가락들은 없나요?
다른 선수들도 있다. 우선 4년 만에 두산으로 돌아온 김승회. 비록 지난해 SK에서는 1승 1패 4홀드, 평균자책점 5.92의 아쉬운 기록을 남겼지만 1년 먼저 돌아온 정재훈과 김성배의 선례에서 볼 수 있듯 두산의 수비진과 잠실 구장의 도움으로 반등할 여지는 남아 있다.
신인 이영하와 박치국도 빼 놓을 수 없다. 2016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된 이영하는 입단 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아 즉시 전력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고등학교 시절 보여준 모습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제물포고 출신으로 지난해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은 옆구치 투수가 귀한 팀 사정상 지난해 고봉재처럼 많은 기회를 얻을 전망이다.
마지막으로는 두산의 ‘진짜’ 아픈 손가락 성영훈이 있다. 성영훈은 덕수고 재학 시절 152km/h을 던지는 위력적인 투수였지만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그 후 함께 입단한 정수빈, 박건우, 허경민이 두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커가는 동안 이를 지켜보며 재활에만 매진했다. 다행인 것은 성영훈의 회복 소식과 함께 올 시즌 실전 등판 가능성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점은 두산의 선발진이 리그 최상위권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와 같이 선발투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불펜에서도 새로운 얼굴을 시험하기 쉬울 것이다. 두산에게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올 시즌 두산 경기를 보는 팬들은 새로운 얼굴들이 나와서 점수를 주더라도 너무 화내지 말자. 손가락의 상처가 아물 때는 딱지가 앉는 법이니까.
기록출처 :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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