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의 수장이 된 손혁 감독은 지난 시즌 불펜으로 활약했던 한현희를 선발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현희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시즌부터 간간이 선발 기회를 받아왔으며 2018시즌엔 풀타임 5선발로 활약했을 정도로 선발 경험은 적지 않은 투수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불펜으로 충분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를 다시 선발로 돌리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심지어 그 대상이 한현희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현희는 선발로서 부족한 점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선택은 신의 한 수일까 아니면 악수일까?
선발투수 한현희 vs 구원투수 한현희
한현희는 2018시즌 선발로서 이닝 소화 능력만큼은 증명했지만, 최연소 홀드왕에 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던 불펜에 미치지는 못했다. 다음은 선발로도 뛰기 시작했던 2015년부터 한현희의 선발과 구원 등판 시 성적이다.
한현희는 선발과 구원으로 등판했을 때 다른 투수라 느껴질 정도로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한현희가 선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한현희는 충분히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그보다는 한현희가 좌타자에게 취약한 사이드암 투수라는 점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이드암 투수가 반대 손 타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반대 손 투수의 공이 더 잘 보이고, 특히 사이드암 투수의 경우 반대 손 타자에게 구종과 투구 궤적이 더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한현희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만 불펜에서는 주로 우타자를 상대로 등판함으로써 좌타자와의 승부 자체를 피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면 좌타자와의 맞대결을 피할 수 없다. 결국 한현희는 좌타 공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발투수로서 해결할 과제를 남긴 채 2019 시즌 불펜으로 돌아갔다.
다시 선발로 돌아가는 이유
한현희는 2018시즌 풀타임 선발로 활약하면서 절반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다. 게다가 지난해 불펜으로 복귀한 한현희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불펜이 맞는 옷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한현희가 보여준 신호는 다시금 선발에 도전해 볼 수 있을 만큼 상당히 긍정적이다.
첫 번째는 바로 구속 상승이다. 지난해 한현희는 포심 구속을 평균 시속 146km까지 끌어올리면서 근 5년 사이에 가장 빠른 볼을 던졌다. 물론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불펜과 선발을 오갔기 때문에 불펜에 전념한 지난 시즌 구속이 오른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불펜으로만 뛰었던 2014년의 평균 구속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한현희의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아졌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 긍정적인 신호는 바로 좌타자 상대법이다. 지금까지 한현희는 보직을 막론하고 좌타자에게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랬던 한현희가 지난 시즌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처음으로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보다 낮아졌고, 좌타자 상대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모습을 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좌타자 상대 피장타율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현희는 사실상 좌타자에게만 홈런을 허용했을 정도로 좌타자 장타 억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좌타자 상대법을 터득한 지난 시즌 한현희는 좌타자 상대 피장타율을 눈에 띄게 낮췄고, 허용한 홈런은 단 1개였다. 손혁 감독도 이런 부분들을 감안해 한현희를 다시 선발로 복귀시킨다고 언급했다.
우리 한현희가 달라졌어요?
물론 지난해 한현희의 좌타자 상대 샘플(우타자: 182타석/좌타자: 69타석)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현희가 좌타자를 상대로 강해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한현희는 지난해부터 조금 다른 볼배합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체인지업의 구사 비율을 줄인 것이다.
체인지업은 우완 사이드암 투수의 약점인 좌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이다. 대표적인 사이드암 선발투수인 이재학과 고영표, 임기영 등도 체인지업을 활용해 좌타자를 상대한다. 한현희도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하여 예전부터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한현희는 이 흐름에 역행하며 체인지업의 구사 비율을 낮췄다.
이는 단순히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뛰면서 좌타자를 만난 횟수가 적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샘플을 좌타자를 상대했을 때로 좁혀봐도, 확실히 체인지업의 구사 비율이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8.4%→15.5%→12.8%→5%). 왜 이러한 변화를 가져갔는지 다음을 살펴보자.
아래는 앞서 언급했던 체인지업을 사용하는 선발 사이드암 투수들과 한현희의 2018시즌 체인지업 스윙률과 컨택률이다.
사이드암 투수인 이재학과 고영표, 임기영은 체인지업을 통해 선발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좌타자의 시선에서 공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체인지업은 사이드암 투수들이 헛스윙과 범타를 유도하기에 최적의 공이다. 하지만 한현희의 체인지업은 이들과 비교하면 그 위력이 확실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배트를 끌어내거나, 헛스윙을 유도함에 있어 한현희의 체인지업은 그다지 위력적인 공이 아니었다.
한현희가 좌타자 공략을 어려워하던 이유 중 하나는 좌타자 상대로 효과적이지 못했던 체인지업의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희는 지난 시즌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체인지업을 줄였고, 그 결과 좌타자를 상대로도 수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와 함께 한현희는 지금까지 좌타자를 상대할 때와 다른 로케이션을 보여줬다.
위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좌타자 상대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이재학과 한현희의 2018, 2019 시즌 좌타자 상대 투구 로케이션이다.
지금까지 한현희는 대부분의 사이드암 투수들처럼 좌타자를 상대로 존의 바깥쪽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다른 우투 사이드암 투수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한현희가 좌타자의 몸쪽에 투구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이 좌타자 공략에 있어서 오답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타자 상대로 뛰어난 모습을 보인 사이드암 이재학은 좌타자를 상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해왔다. 게다가 좌타자 공포증을 극복한 2019시즌의 한현희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좌타자 몸쪽 코스를 포기한 것이 좌타자 공략의 정답에 가까워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히어로즈는 선발이 필요하다
히어로즈는 창단 이후 토종 선발투수의 부재로 오랜 기간 신음해왔다. 2018 시즌 한현희가 소화한 169이닝이 역대 히어로즈 국내 선발투수가 소화한 이닝 3위에 해당할 정도로 선발 자원이 없었다. 현재 히어로즈에서 확실한 국내 선발 자원은 최원태가 유일하며 선발 기대주로 성장하길 바랐던 안우진은 불펜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꾸준히 긴 이닝을 소화했던 한현희가 그리운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올 시즌 선발진에서 한현희의 자리는 최원태-이승호의 뒤를 이은 5선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현희가 2018시즌에 보여준 이닝이터의 면모와 지난 시즌 업그레이드된 기량까지 선보인다면, 5선발을 넘어 선발진의 기둥이 될 자격도 충분하지 않을까.
야구공작소 순재준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곽찬현, 김혜원
기록 출처 : 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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