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시즌이 ‘하프 마라톤’이 된다면 초반 스퍼트가 중요해질까?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세계를 휘감은 바이러스에 프로야구계도 곤경을 겪고 있다. 메이저리그 개막은 기약이 없고, KBO리그 개막은 5월까지 연기됐다. 한국과 미국 모두 최대한 단축 시즌이나 시즌 취소만은 막으려 하고 있다. 더블헤더 경기 수를 늘리거나 휴식일을 줄이는 등 최대한 풀 시즌을 치르려는 고육지책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상 풀 시즌은 어려워졌다는 비관적인 관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시즌이 단축되거나 취소됐을 때를 가정하고 여러 시나리오가 줄을 잇고 있다.

필자 역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단축 시즌이 됐을 때 시즌 초반 성적이 얼마나 중요할지 궁금해졌다. 야구 시즌을 마라톤에 빗대는 경우가 있다. 시즌은 길기 때문에 단기간 성적에 일희일비하면 안 되며 페이스 유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144경기가 아닌 120경기, 100경기로 시즌이 줄어든다면 ‘하프 마라톤’ 정도로 변하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페이스를 조금 더 일찍 올려도 된다고 봐도 될까? 정답은 없겠지만 과거 사례를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찾아봤다.


4월 30일, 6월 30일, 그리고 시즌이 끝났을 때

시즌 전 전력을 저평가 받은 팀이 초반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초반 성적은 마지막 성적과 큰 연관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4월 성적은 정말 마지막 성적과 연관이 없을까? 이를 위해 4월 30일 성적과 시즌 최종 성적을 비교했다. 그리고 ‘단축 시즌을 했을 때 성적’을 가늠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풀 시즌의 절반인 80경기 가까이 치러지는 6월 30일의 성적도 비교했다.

4월 30일 승률과 시즌 최종 승률의 상관계수(R)는 0.546 이었다. 흔히 나오는 통계적 해석을 따르면 4월 승률로 최종 성적의 30%(R의 제곱) 정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초반 성적과 최종 성적의 편차는 매우 크다. 한편 4월 30일 성적과 6월 30일 성적의 상관계수는 그보다 조금 높은 0.642였다. 4월 30일 성적으로 6월 30일 성적의 40%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시즌 초반 남들보다 앞서 나가려고 기를 쓰는 팀에게 ‘촌놈 마라톤’이라는 비판을 하는 이유가 납득된다. 어차피 4월에 잘한다고 해서 그 성적이 그대로 끝까지 갈 확률이 높지 않은데 무리한 기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6월 성적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시즌을 절반만 할 때는 4월 성적과 최종 성적이 좀 더 비슷하지 않겠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차이는 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개막 이후 연승한 팀도 언젠가는 패배할 것이고, 연패한 팀도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시즌 초반에 성적이 극단적으로 좋거나 나쁜 팀은 승률이 점점 50% 근처로 수렴할 것이고, 그러면서 초반 성적과 나중의 성적은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이대로 ‘단축 시즌에도 길게 내다보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나는 걸까?


초반 강팀은 계속 강하고 초반 약팀은 계속 약할까?

하지만 이 회귀분석은 약팀과 강팀, 그리고 중간 순위 팀을 같이 묶어서 봤기 때문에 현상을 왜곡했을 여지가 있다. ‘야잘잘’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원래 잘하는 팀이라서 초반에 잘하고, 못하는 팀이라서 못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성적이 좋은 팀, 나쁜 팀으로 나눠서 보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5할을 기준으로 나눠서 봤을 때는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4월 승률이 5할 이상인 팀들, 5할 이하인 팀들 모두 시즌 최종 승률과의 상관관계가 앞서 본 분석 결과보다 낮아졌다. 전체 그룹의 4월 성적과 6월 성적의 상관계수는 0.642였는데, 5할 이상 그룹은 0.416으로, 5할 이하 그룹은 0.443으로 더 낮아졌다.

그렇다면 더 극단적인 그룹만 묶어서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승률이 6할 이상인 그룹과 승률이 4할 이하인 그룹말이다. 이 그룹에는 정말로 잘하는 팀, 정말로 못하는 팀만 모여 있고 성적이 끝까지 비슷하게 유지되지 않을까?

오히려 극단적인 그룹에서 4월 승률과 최종 성적과의 상관관계는 더욱 떨어졌다. 심지어 6월 성적과의 상관계수도 0.4보다 낮아졌다. 4월 성적이 그대로 마지막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4월까지 치르는 경기 수라고 해봐야 고작 20여 경기 남짓이 전부다. 남아있는 100번 이상의 경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승률이 비슷하게 유지될 확률은 매우 낮다. 고승률 팀, 저승률 팀일수록 더욱 그렇다. 승률 8할이나 1할을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초반 승률과 누적된 성적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 뻔하다.

그래도 초반에 벌어 뒀던 승리로 최소한 포스트시즌 티켓을 거머쥘 확률은 높지 않을까? 보통 포스트시즌 진출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승률은 5할이다. 시즌 초반에 5할 이상/5할 이하로 성적이 나왔을 때 그 성적이 끝까지 유지된다면 어떨까? 그게 사실이라면 초반 성적 관리에 신경 쓰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 4월에 6할 승률 이상을 기록한 팀 중에서 최종 5할 승률 달성에 실패한 팀은 해당 표본 중 17%가 있었다. 반대로 4할 이하를 기록하다 5할 승률을 회복한 팀은 18% 있었다. 범위를 5할 이상/이하로 넓히면 29%, 28%가 된다.

많다고 보긴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해석을 한다면 ‘초반 러시’에 힘을 주는 전략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래 잘하는 팀은 결국 계속 잘하기 마련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즌 진행 중에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 보강 등을 꾀하지 않는 이상, 개막 당시 팀의 정해진 전력과 체급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할 이상에서 출발해 5할 아래에서 끝마친 팀은 30%나 있었다는 것이 과거의 결론이다. 6월 성적을 대상으로 해도 25%에 달했다.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리그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소위 5강 또는 4강에 든 팀 중에 한 팀은 거의 매년 아래로 고꾸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본인이 응원하는 팀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보자. 용두사미라는 비아냥이 나올,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3할의 스포츠에서 30%라는 숫자가 갖는 무게는 결코 적지 않다. 초반에 모든 것을 걸기 전에 다시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우리 팀은 내려갈 팀인가 올라갈 팀인가? 처음부터 신을 냈다가 뒤처질 운명을 기다릴 뿐인 내려갈 팀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지피지기, 그중에서도 자신을 아는 것이다.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정규시즌은 아무리 절반으로 짧아진다 해도 순리에 맞게 치르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야구공작소 칼럼니스트 박기태

에디터=야구공작소 이도삼,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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