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와 포크볼, 그리고 김범수

NC의 좌완 에이스로 올라선 구창모(사진=NC 다이노스 제공)

NC 다이노스의 2019년은 희망을 엿본 해였다. 나성범의 부상 이탈로 다소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전반기 막바지부터 본궤도에 올라서면서 결국에는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8시즌을 최하위로 마쳤던 이들을 다시 가을 야구로 이끈 일등 공신은 단연 양의지였다. FA 계약으로 팀에 합류한 양의지는 계약 첫해부터 MVP 투표 2위에 오를 정도의 맹활약을 펼쳤다. 야수진에서 양의지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면, 투수진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구창모였다. 구창모는 지난해 선발투수로서 잠재력을 터뜨리며 생애 최초로 두 자릿수 승수 고지에 올랐다.

구창모가 1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6시즌이었다. 그는 시속 150km의 패스트볼과 빼어난 탈삼진 능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면서 삽시간에 NC의 마운드를 책임질 특급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2018시즌의 구창모는 이렇다 할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한 채 아쉬움만을 남겼다. 포심 패스트볼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과 심한 기복, 그리고 부족한 제구력은 그의 한결 같은 숙제였다.


변화의 시작

답보 상태로 2018시즌을 마친 구창모는 2019시즌을 앞두고 변화를 다짐했다. 변화는 투구 패턴에서부터 나타났다. 단조로운 투구 레퍼토리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구창모의 구종별 구사 비율 변화(%)>

양의지의 FA 영입은 팀의 젊은 투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가 투수들에게 제공하는 훌륭한 피드백 덕분이었다. 구창모도 그 덕을 본 투수들 중 하나다. 구창모를 만난 양의지는 포심 위주로 단조롭게 투구하기보다는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져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구창모는 이 조언을 바탕으로 지난해 슬라이더의 구사 비율을 높였다.

또 다른 변화는 ‘선택과 집중’에서 비롯했다. 투수들은 대개 같은 손 타자에게는 슬라이더를, 반대 손 타자에게는 체인지업을 주로 구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전의 구창모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그가 꺼내 들던 변화구는 서클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이 체인지업은 구창모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한 구종이었다. 오랫동안 그를 곁에서 지켜본 팀 선배 이재학은 예전에 구창모의 체인지업을 “맞지 않는 옷 같다”고 평했던 적이 있다. 체인지업 대신 포크볼을 다시 던져보는 편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구창모는 포크볼을 상당히 자신 있게 구사했던 전력이 있다. 다만 부상 위험이 큰 구종이라 ‘봉인’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팀 동료 김영규의 투구를 지켜본 것도 자극이 됐다. 2019시즌 초반 NC 선발진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김영규는 포심과 슬라이더, 사실상 투 피치에 가까운 레퍼토리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단순한 구종으로도 당당하게 투구를 펼친 김영규의 모습은 구창모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체인지업에 대한 미련을 떨친 구창모는 다시 포크볼을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의 호투는 이 변화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구창모 자신의 설명이다.

결국 지난해 구창모의 투구 패턴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슬라이더의 구사 비율을 높이면서 포심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 둘째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포기하고 자신 있는 포크볼을 다시 꺼내 들었다.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구창모는 지난 시즌 100이닝 이상을 투구한 투수들 가운데 가장 높은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했고(9.59개), 시즌 초와 말미에 허리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음에도 커리어 최초로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NC 프랜차이즈 사상 첫 ‘10승 좌완’의 탄생이었다.


구창모는 포크볼이 딱이야?

그렇다면 구창모의 달라진 투구 레퍼토리는 어떻게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을까. 구창모의 통산 세부 성적을 살펴보자.

<구창모의 연도별 세부 성적>

데뷔 초부터 강점으로 꼽혔던 구창모의 탈삼진 능력은 2018시즌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훌륭한 수준을 유지했다. 흥미롭게도 볼넷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재력을 터뜨린 지난해에도 그의 9이닝당 사사구(BB/9) 개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9이닝당 사사구가 제구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제구력 자체는 지난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투구 관련 지표에서 지난해 구창모는 크게 발전했다. 그렇다면 달라진 투구 레퍼토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을 가져왔던 것일까. 구창모의 달라진 모습은 타자들의 반응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다음은 구창모의 연도별 Swing%와 Contact%다.

<구창모의 연도별 Swing%, Contact%, Zone%>

풀 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기 시작한 2017시즌부터 그 수치를 비교해보자. 우선 존 밖으로 던진 공에 배트가 따라 나오는 비율이 지난해 들어 확연히 상승했다. 반면 공을 배트에 맞히는 비율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존으로 들어온 공에 대한 Contact%도 유의미한 낙폭을 보였지만, 더 극적인 변화는 존 바깥의 공에서 나타났다. 지난해 구창모의 ‘볼’에 대한 타자들의 Contact%는 한 해 사이에 10%P 넘게 줄어들었다. 51.7%의 존 바깥 Contact%는 지난 시즌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다(2위 터너: 57.5%). 그만큼 많은 헛스윙을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물론 단순히 포크볼이 체인지업보다 위력적인 구종이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투구 레퍼토리가 달라지면서 타자들의 반응도 확연히 달라졌고, 성적 역시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구창모에게는 체인지업보다는 포크볼이 맞는 옷이었던 듯하다.


구창모와 김범수

이렇게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린 구창모를 볼 때면 불현듯 떠오르는 투수가 한 명 있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젊은 좌완 김범수다.

구창모(183cm/76kg)와 김범수(182cm/81kg)는 신체 조건부터 투구 스타일까지 많은 면에서 유사한 투수들이다. 둘 다 최고 시속 150km까지 나오는 빠른 패스트볼을 구사하고, 포심-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도 거의 동일하다. 여기에 포심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과 제구력 불안, 심한 기복이라는 단점까지 공유하고 있다. 사실상 과거의 구창모와 ‘판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포크볼을 던질 줄 알면서도 구사를 자제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김범수는 2017시즌부터 실전에서 포크볼을 던지지 않았다가 송진우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난해부터 다시 포크볼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포크볼보다 체인지업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김범수의 연도별 구종 구사 비율(%)>

흥미롭게도 김범수의 체인지업은 구창모의 체인지업과 비슷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손에서 자주 빠지고, 제구력도 썩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음은 구창모의2018시즌 체인지업 히트맵과 김범수의 지난 시즌 체인지업 히트맵이다. 공교롭게도 두 투수 모두 손에서 빠진 실투의 비율이 몹시 높았다. 게다가 전반적인 히트맵마저 유사한 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김범수에게도 체인지업이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2018 시즌 구창모(왼쪽)와 2019 시즌 김범수(오른쪽)의 체인지업 히트맵>

약점은 보완하되, 강점에 집중하자

현 시점에서 김범수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제구력이다. 그는 지난 시즌 100이닝 이상을 투구한 투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9이닝당 사사구(5.33개)를 허용했다. 지금보다 좋은 투수가 되려면 제구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투구에 정도는 없고, 타자를 잡아낼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 김진욱 감독은 금민철에게 “10년째 되지 않는 제구를 굳이 잡으려 하지 말고 자신 있게 던져서 맞혀 잡으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공을 존 안에 넣어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없다면, 존 밖에 던져서라도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면 된다.

구창모는 체인지업을 포기하고 포크볼을 꺼내 들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되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의 구창모는 김범수가 충분히 참고해볼 만한 성공 사례였다.

KBO 리그는 현재 젊은 토종 에이스의 명맥이 사실상 끊겨버린 상태다. 우완 쪽에서는 최근 최원태, 이영하 등이 등장하면서 주목을 모으고 있지만, 좌완 중에서는 이승호를 제외하면 아직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창모가 NC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류현진 이후 첫 좌완 에이스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는 한화에서는 김범수에게 비슷한 기대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투수가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좌완 에이스의 계보를 이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야구공작소 순재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곽찬현, 이의재

기록 출처=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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