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트 아웃이 아닙니다’ 롯데 안치홍 FA 계약 따져보기

[야구공작소 홍기훈] FA 자격을 얻은 내야수 안치홍(30)이 롯데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 조건이 특이하다. 최대 4년 계약이지만, 먼저 2년을 뛴 뒤 남은 2년은 구단과 선수가 모두 동의하는 경우에만 계약이 연장된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쪽이라도 연장을 원치 않으면 안치홍은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KBO에서는 처음 보는 형태의 계약이다.

이 계약을‘옵트 아웃’이라고 설명한 기사들이 많다. 이는 명백히 틀린 표현이다. 안치홍과 롯데의 계약은 ‘뮤추얼 옵션’이 포함된 계약이다. 옵트 아웃과 뮤추얼 옵션 모두 우리나라에서 적용된 적이 없는 계약이기에 메이저리그를 즐겨보지 않는 팬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 메이저리그의 예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자.


옵션과 뮤추얼 옵션

우선 ‘옵션’부터 알아보자. 야구에서 ‘옵션’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이 글에서 말하는 옵션은 계약 연장에 대한 특약 사항을 말한다. 계약에 이런 옵션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계약 만료 전에 그 옵션이 채택되면 계약 기간이 연장된다.

옵션이라는 단어가 KBO에서는 흔히 개인 성적에 일정 기준을 미리 정해 놓은 뒤 그 기준을 채우면 추가로 보너스를 더 받는 경우에도 쓰인다. 이 글에서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런 경우를 ‘인센티브’로 표현한다.

옵션은 그 옵션을 사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 선수에게 선택권이 있는 경우 ‘플레이어 옵션’, 구단에게 선택권이 있는 경우 ‘팀 옵션’이나 ‘클럽 옵션’이라고 한다. 일정한 성적 기준을 충족시킬 경우 자동으로 발동되는 ‘베스팅 옵션’도 있다. 안치홍과 롯데처럼 선수와 구단 각자에게 선택권이 있어서 양측 모두 옵션을 실행하기를 원할 때만 옵션이 발효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데 이를 ‘뮤추얼 옵션’이라고 한다.

뮤추얼 옵션이 드문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실행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선수가 계약 기간 동안 좋은 활약을 보였다면 선수는 옵션을 선택하는 대신 시장에 나가 더 큰 금액에 계약하길 원할 것이다. 반대로 성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면 구단이 옵션을 사용하지 않는다. 뮤추얼 옵션은 성적이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경우에만 채택된다.

실제 뮤추얼 옵션이 이뤄진 거의 유일한 예로는 2015년 아라미스 라미레즈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우가 있다. 은퇴를 앞둔 라미레즈는 구단을 옮기고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는 노력을 원하지 않았고, 브루어스 입장에서도 단년 계약의 위험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뮤추얼 옵션이 실행될 수 있었다.


옵트 아웃

옵트 아웃은 계약 진행 도중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옵트 아웃을 실행하면 그 시점에서 기존 계약은 사라지고 선수는 FA가 되어 다시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옵트 아웃이 실행된 가장 유명한 예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경우가 있다. 2000년에 10년 계약을 맺은 로드리게스는 7년이 지나면 옵트 아웃을 실행할 수 있는 조항이 계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이를 이용해 2007년 시즌 후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양키스와 새로 10년 계약을 맺었다. 옵트 아웃 조항은 선택의 칼자루가 선수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플레이어 옵션과 유사하다.

플레이어 옵션이나 옵트 아웃은 선수에게, 팀 옵션은 구단에게 유리하다. 팀 옵션의 가치는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장기 계약의 위험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예약을 했는데, 일단 반만 먼저 계산한 뒤 맛을 보고 나서 나머지 반을 추가로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뮤추얼 옵션도 그런 점에서는 구단에게 이점이 있지만 선수에게도 선택권이 있으므로 팀 옵션만큼은 아니다.


왜 옵트 아웃이 아닌가?

옵트 아웃 권리는 선수에게만 있다. 구단이 기존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다. KBO에서도 선수가 2군에 내려가는 경우 연봉을 삭감할 수 있는 규정은 있어도 이미 맺은 계약을 백지화할 수는 없다.

안치홍의 계약을 옵트 아웃 계약으로 본다는 것은, 이 계약을 4년이 기본인데 2년 뒤에 파기할 수 있는 권리가 팀과 선수에게 모두 발생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옵트 아웃 조항은 선수에게만 있는 것이기에 이와 같은 해석은 잘못됐다.

안치홍이 맺은 계약은 4년짜리 계약을 상황에 따라 롯데나 안치홍이 2년으로 줄일 수 있는 게 아니고, 보장된 2년 계약 후에 상호 간의 의사에 따라 2년 계약을 추가하는 계약이다. 따라서 이를 옵트 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계약 기간을 구단이 줄일 수 있는 선례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절대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손익계산서

롯데에게도 선택권이 있는 이상 이 계약을 최대 4년 56억의 계약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보장금액이다. 롯데는 검증된 2루수를 그리 비싸지 않게 데려오면서 단숨에 전력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기존의 2루 자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던 만큼만 해 줘도 좋고, 전성기 모습을 보여준다면 금상첨화다. 만에 하나 부진하더라도 2년만 참으면 된다.

롯데가 아쉬운 시나리오를 굳이 생각해보면 안치홍이 4년 56억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활약을 보여 안치홍을 2년만 쓰고 다른 팀에게 내주는 정도일 텐데, 이마저도 크게 오른 주식을 20주 들고 있는 사람이 ‘아 40주 살 걸’ 하는 느낌이다.

안치홍 입장에서도 비교적 선방한 계약이다. 안치홍은 2년간 인센티브를 채워 26억을 받고 나서도 아직 젊다. 롯데에서 옵션을 실행하지 않아도 향후 2년 동안 다른 팀에서도 10억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소문으로 들리는 KIA의 제시 조건보다 나쁘지 않다. 여기에 롯데는 2루 자리를 보장해 주었고, 2군으로 내려가도 연봉이 차감되지 않도록 연봉을 2억 9천만원으로 줄이고 계약금을 늘려 주었다.

물론 2년간 부진할 경우 그 다음 계약의 리스크는 오롯이 안치홍의 몫이다. 안치홍이 롯데와의 계약 기간 동안, 그리고 그 2년 후에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대박 계약을 추가로 따낸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서 리스크를 짊어졌다는 점은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다.


왜 KBO에는 옵트 아웃이 없을까?

여기서 조금 위화감이 든다. 메이저리그에서는 FA 장기 계약의 리스크를 구단이 진다. FA 자격을 따내기 전에는 구단이 칼자루를 쥐지만 그 이후에는 선수가 문자 그대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구단도 장기 계약 말미에는 그 선수가 돈의 값어치를 못할 확률이 높음을 알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그 선수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장기 계약을 한다.

그리고 구단측에서 연수나 금액을 더 늘려주기 어려운 경우에 안겨주는 선물 중 하나가 옵트 아웃이다. 그럼 왜 KBO에는 옵트 아웃 조항을 넣은 계약이 없을까?

바로 4년의 ‘FA 재취득 기한’때문이다.

작년 월드시리즈 MVP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는 올겨울 4년 1억불의 잔여계약을 뒤로 한 채 옵트 아웃을 선택했고, FA가 되어 새롭게 7년 계약을 따냈다. 그에 반해 안치홍은 어떨까.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안치홍이 다시 FA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2023년 시즌을 마쳐야 한다. 안치홍의 옵션이 실행되지 않으면 ‘자유계약선수’가 될 뿐 FA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지만 KBO에서 FA와 자유계약선수는 엄연히 다르다. FA는 우리가 아는 그 FA지만, 자유계약선수는 방출된 선수와 같다. 이적에 따른 보상이 없고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지만 단년 계약만 맺을 수 있다. 한번 어떤 팀과 계약하고 나면 FA 취득 기한이 경과할 때까지 그 팀에 묶여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 KBO 선수들은 4년 이하의 계약 도중에 옵트 아웃을 해도 FA가 될 수 없다. FA가 될 수 없는데 계약 파기권을 계약에 포함시킬 이유도 없다. 현 제도 하에서 굳이 옵트 아웃을 적용하자면 5년 이상의 계약을 맺고 4년차 이후에 옵트 아웃이 가능하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KBO에서 5년 이상의 계약이 이루어진 경우 자체가 두 번밖에 없었다.

미래에 4년 규정이 없어지더라도 이것이 꼭 구단의 손해는 아닐 수도 있다.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의 정확한 가치 평가가 이뤄진다면, 3년 계약, 2년 계약, 혹은 반등을 노리는 선수에게 단년 계약을 주면서 리스크를 선수와 구단이 나눠가질 수도 있다. 구단이 머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옵트 아웃 조항이나 여러 옵션들을 이용할 수도 있고 기존의 KBO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계약구조가 나올 수 있다. 에이전트나 회계사 등 야구 관련 직종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4년 규정 때문에 안치홍이 리스크를 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4년 계약을 굳이 고집하지 않은 것은 칭찬하고 싶다. 그의 도전에 행운을 빈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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