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객관적 진실을 탐구하는 세이버메트리션의 끝나지 않는 여정

세이버메트릭스의 시작과 현재

1977년 야구선수들의 기록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통조림 회사 창고 경비원 빌 제임스가 쓴 “Baseball Abstract”를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야구에 관한 수많은 숫자들과 지표들이 개발되었다. 이 중 상당수는 야구계 내부인사들이 아닌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야구에 관한 객관적 진실의 추구(“the search of objective knowledge of baseball”)를 기치로 내건 빌 제임스와 수많은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노력 덕에 우리는 야구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숫자라는 ‘마법거울’의 도움을 받아 좀 더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됐다. 야구에 대한 이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진보를 이뤄 객관적 진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야구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준을 넘어 정보 폭발의 시대라고 할 만큼 야구를 이해하기 위해 정리되고 측정된 데이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쌓여가고 있다.

 

예측가능성, 주관성과 객관성의 사이

겨울이 시작되면, 이러한 마법 거울의 도움을 받아 내년시즌을 예측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끌벅적해진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은 직관 혹은 경험에 의존하는 감각적인 이야기들에 비해 설득력이 있기 마련이다. 숫자라는 마법거울의 신탁을 받은 세이버메트리션들은 닿을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야구라는 스포츠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 ‘예측 가능성’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숫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숫자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동화 속 마법거울과 달리 우리는 숫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단지 들린다고 믿고 읽어내고 예측할 뿐이다.

예측이란 행위는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는 늘 예측하며 일상생활을 하며, 어떤 선택을 할 때 각각의 선택지가 본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예측한다. 본인이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날마다 수많은 예측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측’이란 언제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숫자의 목소리에 집중해 예측하는 세이버메트리션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숫자라는 마법거울의 신탁을 그저 자의적으로 읽어내고 해석해 놓고 ‘예측’ 이라고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의 세이버메트리션의 노력들이 너무 부질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적 발견들과 과학자들의 방법론의 시작도 가설설정이라는 ‘주관적인 예측’에서 시작됐다. 예측이란 과학 철학자 칼 포퍼의 말처럼 반박가능성이라는 방법적 특징 아래 주관적 인식을 객관적인 사실로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세이버매트릭스의 미래와 새로운 측정기술의 등장

초기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은 결과중심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과 분석들을 주로 내놓았다. 세이버메트릭스 초기의 제한적인 정보 접근과 제한된 기술발달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빌 제임스 또한 경기의 박스스코어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과거의 데이터들을 모아 타점, 타율 등 당시 지배적인 고전적 지표보다 경기 중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OPS, 피타고리안 승률, RC27 등을 고안했다. 이는 기존에 선수를 평가하는데 사용되던 누적 스탯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최근에는 다양한 기술의 도입으로 Pitch f/x, 타구속도와 같은 막대한 양의 직접적인 플레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야구의 통계적 분석과 접근은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세이버메트릭스는 선수들이 야구장에서 행한 플레이의 결과만을 보고 예측하는 것을 넘어 야구장안에서 일어나는 플레이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빌 제임스의 말처럼 세이버메트릭스의 본질이란 통계가 아닌 ‘야구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의 추구’ 에 있다. 타율과 타점과 같은 고전적 지표와 싸우며 ‘어떻게 결과를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난 30~40년간 세이버메트릭스의 여정이었다면, 앞으로는 플레이 과정을 수치화하는 지표들과의 싸움이 수년을 결정 지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야구를 탐구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다음 정류장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곤 해도 기존의 결과중심적 지표들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구단에 합류한 초기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은 기존에 있던 구단 내 스카우팅팀과 갈등을 벌여야 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구단에서 그들의 입지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적 스카우팅 시스템과 세이버메트릭스는 화합을 통해 공존할 수 있었다. 세이버메트릭스도 기존의 인사이트와 통계적 기법이 새로운 기술에 매몰되기보다는 다음 세대로의 진화를 이끌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세이버메트릭스는 숫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마법사도, 통계학 연구자도 아닌 야구에 대한 객관적 진실의 추구(“the search of objective knowledge of baseball”)를 꿈꾸는, 야구를 사랑하는 탐구자들이기 때문이다.

 

“It’s unbelievable how much you don’t know about the game you have played all your life.
당신은 자신이 평생 동안 해오던 게임에 대해서 놀랄 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미키 맨틀”

이 한마디 질문에 대한 지난40년간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대답은 새로운 세계와 방법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때로는 그들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주관적인 인식들이 또 다시 새로운 객관적 진실로 닿게 하는 다리를 놓아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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