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순재준] 2019년 KBO리그는 바야흐로 두산표 포수 전성시대다. 4년 125억이란 역대급 계약으로 두산에서 NC로 팀을 옮긴 양의지는 지난해 10위로 추락했던 NC의 5위 도약을 이끌며 포수로서 35년 만의 타격왕 자리에 올라섰다. 양의지의 이탈로 두산의 주전 포수자리를 꿰차게 된 박세혁은 꿈에 그리던 우승 포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대표로서 다시 한 팀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 두 포수와 함께 했던 또 다른 두산 출신 포수도 조용히 성장해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수로 우뚝 섰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주전 포수 최재훈이다.
2017 시즌 도중 한화는 주전 포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성현과의 트레이드로 최재훈을 영입했다. 한화는 최재훈이 두산에서 보여줬던 안정적인 수비 능력과 투수 리드를 기반으로 마운드의 안정화를 꾀하고자 했다. 그리고 최재훈이 풀타임 출장한 2018년, 한화는 1위 SK에 이어 투수 WAR(19.69)과 평균자책점(4.95) 2위를 기록했고 11년 만에 가을야구에도 진출했다.
박종훈 전 한화 이글스 단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재훈은 비교적 젊고, 두산에서 양의지의 이은 백업 포수로 경험도 꽤 많이 쌓았다. 타격 능력도 있고, 볼 배합도 영리하게 한다”며 “내가 두산 2군 감독으로 일할 때부터 최재훈을 눈여겨봤다. 한화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예상대로 지난해 최재훈은 마운드 안정화에 일조했고, 올 시즌엔 타격에서도 알을 깨고 나와 공수겸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지난 3년간 최재훈의 연도별 타격 성적이다.
올 시즌은 공인구 조정으로 투고타저에 접어들며 리그의 전반적인 타격 성적이 하락했다. 하지만 최재훈은 이 흐름을 역행하며 공인구 조정 효과를 비웃는 듯한 성적을 기록했다.
최재훈은 올 시즌 타격 전 부문에서 본인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했으며, 시즌 중반에는 3할 타율을 유지했을 정도로 정교함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수비뿐만 아니라 타석에서도 뛰어난 생산성을 얻게 된 최재훈은 3.49의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을 기록하며 한화 야수 중에서는 호잉에 이은 2위, 팀 전체에서는 채드벨(4.49)–서폴드(4.22)-호잉(4.19)-정우람(3.82)에 이은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출루율이다. 올 시즌 최재훈은 0.398의 출루율로 박건우와 샌즈를 제치고 리그 8위를 기록했다. 원래도 볼넷을 많이 골라내는 선수이고 타격 능력이 향상됐다고는 해도 4할에 육박하는 출루율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최재훈을 뛰어난 출루 능력을 지닌 타자로 진화하게 만든 것일까?
타자의 출루율에 영향을 미치는 타자의 능력은 크게 두 가지, 선구안과 컨택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올 시즌 최재훈에게 선구안과 컨택 능력에 얼마나 발전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자.
먼저 최재훈의 선구안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시즌별 IsoD를 통해 단편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최재훈의 연도별(2017~2019) IsoD(절대 출루율) 변화
[2017] 0.083
[2018] 0.076
[2019] 0.109
최재훈의 기록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최재훈이 장타로 위협해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슬러거 타입의 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IsoD 상위 10명 중 김재호(3위), 최재훈, 이창진(9위)을 제외한 7명은 박병호, 최형우, 한동민, 최정, 러프, 로맥, 샌즈 등 모두 한 방이 있는 선수들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최재훈은 리그 정상급의 선구안을 가지지도, 그 선구안을 뒷받침할 정확도를 가진 선수도 아니었다. 최재훈의 선구 능력이 한 시즌 만에 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한 배경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최재훈의 컨택 능력 변화이다.
최재훈의 Contact%를 보면 첫 풀타임 활약을 했던 지난해는 컨택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체력적인 문제의 여파라고 감안하더라도 2017년과 2019년을 비교했을 때, 최재훈의 컨택 능력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컨택 능력과는 별개로 적극성에 변화를 주면서 성적 변화를 이끌어 냈을 수도 있다. 최재훈의 타석에서 적극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Swing%도 함께 확인해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전반적인 Swing%가 감소하며 타석에서의 적극성을 억제하는 모습은 보인다. 특히 지난해와 올 시즌의 Swing%를 비교하면 확실히 Zone의 안팎 모두 적극성이 감소했다. 최재훈은 타석에서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기 보다 신중하게 더 많은 공을 지켜보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최근 최재훈의 타격폼에서도 눈에 뛸 만한 변화는 찾기 어려울뿐더러, 더 뛰어난 정확성을 갖췄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위의 Swing%를 참고하면 과거에 비해 타석에서 더 많은 공을 보고 있다는 변화는 있다. 하지만 그저 공을 더 오래 보고 있다는 것만으론 성적 상승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경우의 수는 최재훈이 타석에서의 접근법을 달리 가져간 경우이다. 이를 알아보고자 최재훈의 구종별 타격 성적을 비교해봤다.
평범했던 지난 2년과 올 시즌을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패스트볼 계통(포심, 투심)의 타율이다. 물론 2017년에도 패스트볼 계통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허나 올 시즌 최재훈은 하이패스트볼과 변형 패스트볼이 판을 치는 KBO 리그에서 패스트볼을 상대로 3할 중반에 가까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과거에 강점을 가졌던 브레이킹볼에 대한 대처가 상당히 미흡해졌고, 체인지업과 스플리터 같은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는 여전히 약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최재훈은 패스트볼 공략에 대하여 어떤 해법을 찾아낸 것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최재훈이 패스트볼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지난 3년간 포심에 대한 zone별 swing%를 비교해 봤다.
한화로 온 2017년부터 최재훈은 높은 코스에 공에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Swing%를 보면 두가지의 눈에 띄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바로 낮은 코스의 공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 그리고 좌우 존을 더 좁혀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높은 코스의 공에 많은 배트를 낸 최재훈은 한가운데 높은 공에 대해선 거의 무조건 배트를 낸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86.8%→81.18%→93.5%). 하지만 높은 존이라도 좌우 코스에 대해선 상당히 적극성을 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좌우 코스에 대해 적극성이 낮아진 것은 비단 높은 코스에 한정되지 않았다. 최재훈 기준으로 가장 바깥쪽 코스에 대한 작년과 올해의 Swing%는 31.2%에서 14.8%로, 절반으로 떨어진 Swing%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낮은 코스에 대한 부분에 대한 대처이다. 지난해 47.8%였던 S존 하단의 Swing%는 올 시즌 38.8%까지 떨어지며 낮은 공을 공략하지 않는 전략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S존 바깥으로 떨어지는 공에 대한 Swing%도 9.6%에서 7.4%까지 떨어졌고, 심지어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포심에는 단 한번도 배트를 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최재훈은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높게 설정한 가운데, 올 시즌부터는 낮은 공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좌우 존을 더 좁게 가져가는 전략을 세웠다. 최재훈은 본인이 강점을 가지는 하이 패스트볼과 몰리는 공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물론 낮은 공을 철저히 포기하고 좌우 존을 좁히면서 유인구에 대한 스윙도 줄어들었지만 타율도 악화되었다. 하지만 유인구를 참아낸 만큼 더 많은 출루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고, 아래의 포심 히트맵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최재훈의 존 세팅은 성공적이었다
원래도 가운데 높은 코스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지만 낮은 코스의 공을 철저히 배제하고 높은 코스의 포심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존 상단 타율이 4할 중반까지 높아졌다. 달라진 타격 접근법이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이다.
최재훈은 올 시즌 낮은 공을 철저히 버리고 하이 패스트볼을 공략하는 새로운 타격 접근법으로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비록 팀은 지난해 반짝 활약 이후 침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올 시즌 최재훈은 현재 역대 한화 포수 WAR 6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최재훈과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두 포수는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수로 프리미어 12에 승선했다. 한때 그 두 선수를 밀어내고 두산에서 주전 자리를 위협했던 최재훈은 긴 세월을 지나 한화에서 주전 포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올 시즌의 최재훈은 단순히 플루크였던 것인지, 아니면 양의지, 박세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공수겸장 포수가 될 것인지 지켜보자.
에디터= 야구공작소 이도삼, 이청아
기록 출처= 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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