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알렉스 브레그먼 트위터>
[야구공작소 이창우] 2019년 메이저리그에는 연일 새로운 기록들이 쓰였다. 2할대 팀 승률, 4개의 100승 팀과 100패 팀, 특정 팀 상대 1승 18패, 특정 팀 상대 17연패 등. 기록은 기록이지만 썩 좋지만은 않은 것들의 향연이다.
압권은 위의 모든 기록에 엮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다. 특정 팀 상대 17연패는 순종 2년인 1908년 이후 최다연패 기록이다. 시즌 114패도 162경기 체제가 도입된 1961년 이래 역대 4위 기록이다.
2018시즌 메이저리그에선 3개의 100승 팀과 3개의 100패 팀이 나왔다. 한 시즌에 각각 3개의 100승 팀과 100패 팀이 나온 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기려는 팀과 지려는 팀이 명확하게 드러나다 보니 야구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었고, 경기장을 찾는 발걸음도 잦아들었다. 2018시즌 메이저리그 총 관중 수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7,000만 명의 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새로운 기록이 쓰였다. 2019 시즌 각각 4개의 100승 팀과 100패 팀이 출현한 것이다. 전력 불균형이 워낙 심각한 탓에 팀 간의 상대전적도 괴이하기 그지없다. 올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또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18승 1패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관중 117만여 명이 줄어든 것은 덤이다.
탱킹, 리빌딩 등 제각각 이유가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의 전력 균형에는 적색 신호가 나타났다. 지나친 전력 양극화는 경기의 수준 하락을 초래한다. 관중들은 질적으로 저하된 경기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경쟁력을 갖춘 팀이 박 터지게 싸우는 경기와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운 경기를 고르라면 대다수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전력 불균형은 용인될 수 있겠지만 메이저리그의 전력 무게추는 너무나도 기울었다. 최근 유행하는 모 방송인의 캐릭터마냥, 선을 넘어버렸다.
지나친 전력 양극화의 실태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인구 피라미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인구 피라미드에선 중간층의 비율이 가장 높고 중상층과 중하층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는 ‘타원형’을 이상적인 사회구조로 여긴다. 반면 중간 계층이 상대적으로 적고 중하층과 하위층이 많은 ‘표주박형’을 사회 양극화로 인한 불안정이 가장 심각한 형태로 간주한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전력으로 치열하게 다투는 중하~중상위권의 팀이 많아야 흥미를 끄는 법이다. 하지만 승패가 뻔하게 예상되는 게임은 팬들의 관심을 얻기 힘들다. WBC에서 한국과 미국의 대결이 한국과 중국의 대결보다 인기 있듯이 말이다.
어떤 팀이 맞붙든 치열한 경기가 예상되는 스포츠를 ‘건강한 스포츠’라 한다면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병든 스포츠’다. 30개 구단 모두가 프로라는 미명 하에 그라운드로 나서지만 전력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이는 팀 성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위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팀들을 승률 기준으로 분류한 표다. A와 D그룹을 양극단, B와 C그룹을 중간으로 묶어보자. 내셔널 리그는 양극단에 8개, 중간에 7개 팀이 있다. 내셔널 리그는 시즌 말미까지 와일드카드를 향한 경쟁이 치열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마이애미 말린스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7월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는 등 시즌 내내 흥미진진한 구도가 이어졌다.
반면 아메리칸 리그는 양극단에만 무려 13개 팀이 포진되어 있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B그룹과 C그룹에 속한 팀은 각각 보스턴 레드삭스와 텍사스 레인저스다. 텍사스는 시즌 전부터 리빌딩을 천명했지만 생각보다 시즌이 잘 풀려 성적이 잘 나온 경우다.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의 전력 불균형은 상당히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최다승을 기록한 휴스턴과 나란히 100패 이상을 기록한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애미,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연합한 전력을 비교한다면 어떨까? 모든 포지션에서 각각 가장 높은 Fwar를 기록한 선수를 선정해봤다.
휴스턴의 주전 선수 10명은 무려 41.4승을 기여했지만, 100패 이상을 기록한 ‘4개 구단 연합 올스타’는 도합 23.3승에 그쳤다. 4개 팀의 최고 선수만 모은 라인업이 단일팀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범위를 넓혀 90패 이상을 기록한 팀까지 포함해보자.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90패 이상 10개 구단 연합 올스타를 비교한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패 이상 구단 6개까지 포함하고 나서야 익숙한 이름이 몇몇 보인다. 비로소 휴스턴과의 전력 비교도 균형을 이룬다. 혼자 8.6의 승리기여도를 쌓은 트라웃마저 없었다면, 휴스턴이 무려 ‘10개 구단’ 연합 올스타보다 높은 Fwar을 기록할 뻔했다. 30개 팀이 뛰는 리그에서 단일팀의 전력이 10개 팀의 올스타 라인업과 비슷하다는 것은 리그 양극화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단적인 예시다.
팬들은 양극화된 리그를 원하지 않는다
전력 양극화는 흥행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다. 올 시즌 KBO 리그는 상위 5개 팀과 나머지 팀이 일찌감치 갈렸고, 이는 800만 관중 시대가 깨지는 데 상당 부분 기여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시즌 막판까지 중위권 팀들이 와일드카드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장관을 연출했던 내셔널 리그는 팬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포스트시즌 구도가 일찍이 드러난 아메리칸 리그는 자연스럽게 관중의 외면을 받았다. 실제로 올 시즌 총 관중 하위 10개 팀 중 8개 팀이 아메리칸리그 소속이다.
심각한 전력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이미 여럿 제기되었다. 류현진의 에이전트로 잘 알려진 스캇 보라스는 특정 팀이 일정 승수를 넘지 못하면 전체 5순위 안에 드는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나 로터리 픽* 시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페이롤 하한선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제도가 실시되기까지는 많은 논의와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메이저리그가 전반적으로 전력 양극화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올 시즌 시애틀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에드윈 엔카나시온은 줄무늬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 팀이 많이 이기겠네요.” 시애틀 팬과 선수단에겐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엔카나시온의 말처럼 팬들은 이기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 팀과 팽팽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기대한다. 하지만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메이저리그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로터리 픽: 미국 프로농구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하위 팀끼리 ‘추첨’을 통해 신인 지명권을 가지는 제도. 시즌 최하위 팀이 무조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지도록 한다.
에디터= 오연우, 도상현, 조예은
기록 출처= 팬그래프 닷컴, 베이스볼 래퍼런스, ES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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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해오던 포인트를 잘 찝어준 좋은 기사네요
앞으로 좋은 칼럼니스트가 되실거 같아요 ㅎㅎ
저도 야구에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