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사직구장에서 보이는 주변 고층 주거시설들(사진=Wikipedia)
[야구공작소 김가영] 2015년 광주 챔피언스필드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빛 공해로 겪은 피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야구장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구단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었다. 야구장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불만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피해자(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소송을 준비하고 자신들의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리고자 한 적은 없었다. 약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주민들은 패소를 했고 이듬해 다시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이 주민들의 소송을 기각한 이유는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수인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과 입주 당시 이미 주민들은 소음 및 빛 발생을 예상했으며, 광주시와 구단이 소음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기각의 근거였다.
1. 야구장과 소음
‘배상’에 대한 의무가 없다는 점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라는 판결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쾌적한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주거환경은 주거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피해상황을 ‘참을 수 있다’는 독단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앞으로 구단과 광주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과 방향성의 제시가 없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의 프로구단이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구장은 모두 주거지역과 인접해 있다. 야구는 4월부터 시작해서 9월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10월까지도 지속된다. 일년의 1/2이상을 차지하는 기간이다. 한 시즌에 치러지는 야구 경기는 144경기로 두산과 LG가 함께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잠실구장의 경우 100경기 이상이 이뤄지고 있으며, 다른 구장들도 최소 70경기 이상 경기가 치러진다. 그렇다면 최소 6개월동안 평균적으로 1달에 12번, 2~3일에 한번 꼴로 소음을 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경기는 연전으로 이루어지므로 만약 경기일정이 홈구장으로 연달아 잡히면(3연전 기준시) 6일동안 계속 소음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야구가 이뤄지는 시간도 오후 6시 30분 이후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대이다.
주민들이 가장 크게 불편함을 호소했던 부분은 소음이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챔피언스필드 인근 주민들은 야구장에서 나오는 소리로 인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소음으로인해 주민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고 TV를 시청하거나 통화를 함에 있어서도 음성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학생들의 경우 공부를 하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으며 유아기의 아동은 안타 함성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최대한으로 보장 받아야 할 공간에서 주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2014년, 사직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측정해보니 2만 8000명이 넘는 관중이 한번에 소리를 지를 때 107dB까지 올라갔다. 수원야구장 주변의 주거지에서 측정한 결과는 65dB을 넘었다. 한국에서의 주거지 소음 기준은 65dB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거지 내 소음의 한도는 30dB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진공청소기의 소음이 70dB인 것을 감안할 때 야구장 소음을 가벼운 소음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 소음과 도시(주거)환경
‘소음’은 도시환경적 차원에서 관리돼야 할 공해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도시를 활기차게 보이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소음은 심리적으로, 건강상으로, 그리고 개인의 일상생활과 바이오리듬을 이어가는데 방해가 된다. 이는 주거환경에서 ‘소음’이 보다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일부 도시에서는 소음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인간에게만 한정 짓지 않고 동물이나 식물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청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다른 감각에 비해 그 자극을 수용하는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시각은 시야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만 청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은 앞, 뒤, 좌, 우 방향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후각과 비교해도 청각은 (일반적인 기상 조건에서) 1km 떨어진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다른 감각기능에 비해 예민한 수용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 중에서 청각은 쉽게 순응되지 않는다. 시각이나 후각으로 인한 반응과는 다르게 듣기 싫은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적 스트레스, 수면장애, 심장질환, 피로감을 불러 일으키고 정도가 심해지면 사람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다. 또한 청각으로 받은 자극은 그 잔상이 오래 지속되고 즉각적으로 감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데, 우리가 싫어하는 소리(가령,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그 예다.
분명 같은 소음임에도 불구하고 공사장과 공항, 도로의 소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모두가 예민하게 반응을 하면서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소음’에 대해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의 가해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지만 소음에 대해서 만큼은 관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소음・진동관리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소음이란 기계・기구・시설, 그 밖의 물체의 사용 또는 공동주택 등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장소에서 사람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소리’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음의 기준에 있어 ‘장소’가 첫 번째 판단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소음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거리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카페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또는 집에서도. 명동이나 홍대만 가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피곤함을 느끼지만 이러한 소음에 대해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소음에도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3. 해결 방안은 없을까
야구장의 소음은 줄이고자 노력하면 줄일 수 있는 문제다. 그 예로 수원야구장이 있다. 2014년 야구장의 개장을 앞두고 수원시는 앞으로 발생하게 될 소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조사를 했다. 수원시는 연구 용역을 통해 야구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예측 시물레이션을 했다. 조사는 시간대, 지형, 교통상황 등 여러 가지 변수요인을 고려해 진행됐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결과 주거지에서의 소음기준을 초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수원시와 KT는 개선방안을 단기적인 방안과 장기적인 방안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단기적인 방안으로는 스피커 앰프의 음량 조절과 위치를 옮기는 것이었고 장기적인 방안으로는 야구장 자체에 소음감소를 위한 구조적인 시설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야구장 내 실시간 소음모니터링 시스템을 구비해서 일정 단계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연구 용역을 발주한 수원시는 단기적인 개선책으로도 큰 소음 감소 효과를 보았으며, 소음뿐만이 아니라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NC 다이노스도 새구장을 지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새구장을 지으면서 설계초기에서부터 인근 거주민들의 항의를 받아왔다. 이러한 주민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경기장 내 소음에 대한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NC가 취한 방법은 스피커를 여러 곳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소수의 스피커에서 경기장 전체에 음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소리의 볼륨을 높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스피커를 야구장 곳곳에 설치하면 크지 않은 볼륨으로도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전달할 수 있다. 시설 내부적으로 경기장 내 음향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음향 시스템을 배치할 수 있도록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야구장 소음을 줄이는데 어느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구단이 야구장 인근 거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고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시도이다.
4.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야구를 위해
도시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공간이다. 특히 야구장의 소음 문제와 같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권리와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큰 틀에서 보면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개인의 기본권)이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다. 이러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감에 있어 뚜렷한 하나의 원칙은 없다. 논리나 근거는 존재하지만 경우에 따라 판단기준에 유연성을 가지게 되므로 결국 당시 사회가 어느 부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그리고 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어떠한 부분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문제를 풀어나가는지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비록 판결은 주민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지만 소음은 계속 참는다고 묵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야구장과 같은 대형 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현재 한국에는 스포츠 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방음시설에 대한 법적 규제와 지침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방음시설을 설치하더라도 이에 대한 적합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도시계획적 규제와 설계기준을 마련하여 시설물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프로구단차원에서의 문제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들의 애정과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전문스포츠구단이 야구장 주변의 주민들이 겪는 피해에 무관심한 것은 모순일 뿐이다. 구단과 시가 소음을 줄이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는한 야구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문제만 일으키는 시설, 혐오시설이라는 이미지만 남기게 될 것이다. 야구가 ‘진정한 국민 여가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구단과 시행정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해야 할 때다.
참고: 광주매일신문, 광주일보, 국제신문, 엠스플뉴스, 박동희의 Mailbag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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