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장원영] 지난 3월, 야구공작소는 ‘투수여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라’라는 글을 발행했다. 2018시즌의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된 이 글은 오늘날의 KBO 리그에서도 하이 패스트볼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을 담았다.
근래 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을 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타자들은 실제로도 낮은 코스의 패스트볼을 어렵지 않게 장타로 만들어낸다. 타자들이 어퍼 스윙이라는 전략을 통해 투수들의 로우 패스트볼에 적응을 마쳤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투수들이 전략을 바꿀 차례가 아닐까? 투수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하이 패스트볼의 구사 비중을 높일 적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빠르게 변화를 감지한 투수들이 벌써부터 하이 패스트볼의 구사를 늘려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실제 KBO 리그 투수들의 하이 패스트볼 비중 변화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하이 패스트볼’의 정의는 스트라이크 존을 위아래로 이등분한 지점의 평균 높이인 79.2cm(2.6피트)보다 높게 들어온 포심, 투심, 커터, 싱커다.
하이 패스트볼은 이미 증가하고 있다
KBO 리그의 하이 패스트볼 구사율은 이미 지난 4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패스트볼 투구 가운데 하이 패스트볼이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전체 투구 가운데 하이 패스트볼이 차지하는 비중도 뚜렷한 상승 추세를 보였다. 특히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의 증가 폭이 3%p로 눈에 띄게 컸다. 투수들은 어쩌면 이미 작년부터 더 많은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하이 패스트볼을 믿는 팀
그렇다면 KBO 리그의 하이 패스트볼 유행에 앞장서고 있는 팀은 어디일까? 팀별 하이 패스트볼 비중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작년과 올 시즌의 기록을 비교해 봤다.
대부분의 구단들은 작년과 올 시즌의 하이 패스트볼 구사 비중에 별 차이가 없었다.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는 2년 연속으로 50% 이상의 패스트볼을 높은 코스에 던졌다. 넥센-키움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는 한결같이 낮은 하이 패스트볼 구사율을 유지했다. 다른 팀에 비해 유난히 높거나 낮은 구사율을 기록한 팀도 없었다.
하지만 한 해 사이 극적인 변화를 보인 팀이 한 팀 있다. 바로 SK 와이번스다. SK는 지난해 리그에서 세 번째로 적은 45.6%의 비율로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했지만, 올 시즌에는 이를 무려 6.5%p 이상 끌어올렸다. 단순히 시즌 초의 적은 샘플 사이즈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큰 증가 폭이다.
4월까지 헛스윙 유도 비율 (헛스윙/스트라이크) 17.5%로 해당 부문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SK 투수진의 초반 활약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다익손, 서진용, 하재훈 등 패스트볼 회전수에 강점을 지닌 투수들이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표본이 적어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 중에서도 서진용은 하이 패스트볼의 비중을 한 해 사이에 48.1%에서 67.6%까지 무려 20%p 가량 끌어올렸다.
하이 패스트볼은 더 늘어날 것이다
KBO 리그의 하이 패스트볼 비중은 당분간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이 패스트볼 구사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 지난해, KBO 리그의 투수들은 15.8%의 리그 평균 헛스윙 유도 비율을 합작해냈다. 기록 열람이 가능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작년과 비슷한 하이 패스트볼 비중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도 리그 전체 헛스윙 유도 비율은 15.5%에 이른다.
한편 올 시즌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공인구 변화는 아직까지 투수들의 하이 패스트볼 전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즌 중반 들어 ‘공인구 효과’가 유의미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 리그의 하이 패스트볼 비중 변화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이 패스트볼의 비중이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같은 현상이 KBO 리그 타고투저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자그마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타자가 투수의 변화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이 패스트볼이 언제까지나 허를 찌르는 선택일 수는 없을 것이다. 타자들이 하이 패스트볼에 대응하기 시작하는 순간, 하이 패스트볼의 비중은 다시 줄어들 공산이 크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타자들은 언제나 투수들의 변화에 대처해왔다. 야구가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서주오, 이의재
표지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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