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스무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엘비스 앤드루스(사진 출처=Wikipedia Commons)
[야구공작소 오정택] 9년째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격수를 맡고 있는 엘비스 앤드루스는 어느덧 추신수의 팀 동료로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어쩌면 그를 ‘역적’으로 만들었던, 2015년 ALCS에서 보여준 3연속 실책이 그를 수비가 서툰 유격수로 각인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간 팬들에게 골칫거리였던 그의 수비는 사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장점이었다.
텍사스의 미래를 책임질 유격수
앤드루스는 2007년 애틀랜타의 마크 테세이라 트레이드로 인해 텍사스에 합류한다. 이후 그는 하이싱글A와 더블A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최고의 내야수비상을 받게 되었고, 팀내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그를 기용하기 위해 텍사스는 팬들이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마이클 영의 주 포지션을 유격수에서 3루수로 전환하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영이 당해(2012년) 유격수 골드글러브 수상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팀의 기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였다. 2009년 데뷔 후 2013년까지 그는 수비로 약 32점 가량을 막아내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누적 DRS 32, 해당기간 유격수 중 5위). 텍사스가 2013시즌 종료 이후 8년 1억2천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안겨준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앤드루스의 수비불안이 보이기 시작한다.
<표1> 2013년 이후 하락세인 앤드루스의 DRS
긴 설명이 필요 없이 DRS만 보아도 그의 수비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1>). 최고의 장점이었던 수비가 사라진 그는 2014년부터 평범한 유격수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논란의 3연속 실책도 이 순간에 나왔다.
수비력이 떨어지는 중에도 빠른 발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그의 무기였다. 2009년 데뷔 후 지금까지 매 시즌 20도루 이상을 기록해왔으며, 동기간에 기록한 261개의 도루는 유격수 최다이자 메이저리그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이러한 빠른 발과 함께 준수한 타격이 어우러지는 날을 텍사스 팬들은 간절히 바랐지만, 앤드루스와 타격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슬러거처럼 스윙하기
2015년부터 발효되는 8년 1억2천만 달러의 계약을 맺은 뒤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을 뻔한 앤드루스에게 2016년은 의미가 깊은 시즌이었다. 항상 수비에 비해 타격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그가 커리어 최초로 3할 이상의 팀내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절대장타율(ISO)도 1할을 넘기며 ‘똑딱이’라 평가 받던 장타력도 개선의 여지를 보였다. 그리고 올 시즌 그는 3할대의 타율과 1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지난 2년간의 변화가 플루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시즌 달라진 컨택트 능력을 보여준 그는, 올 시즌 장타력의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가 기록한 11개의 홈런은 본인의 단일 시즌 최다홈런을 이미 뛰어넘은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가 똑딱이에서 슬러거로 거듭난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302 8홈런 24도루 / 2017년 .300 11홈런 20도루 (84경기)
먼저 그가 퍼올리는 뜬공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그가 ‘플라이볼 혁명’에 일조한 다른 선수들처럼 이전보다 많은 뜬공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올해 기록하고 있는 31.6%의 뜬공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3%p정도 더해진 수치이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뜬공의 질이 달라졌다.
<표2> 앤드루스의 최근 3년 플라이볼 타구속도와 절대장타율
최근 3년 동안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뜬공을 살펴보자(<표2>). 시즌을 거듭할수록 타구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는데, 그에 따라 장타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렇다면 타구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전보다 더 공격적인 스윙을 시도하고 있다. 올 시즌 그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스트라이크 존 바깥에서의 스윙(O-Swing%, 26.9% → 33.5%)과 헛스윙(SwStr%, 6.4% → 9.4%)이 모두 크게 증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적극적인 스윙으로 인한 삼진의 증가라는 단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장타의 증가라는 이점이 이를 상쇄한다. 또한 그가 레그킥을 장착하며 힘을 실어 당겨치는 타구를 더 많이 생산하는 점도 좋은 타구를 만드는데 영향을 준다(당겨친 타구 전년 대비 5.5%p 증가). 그 결과 강한타구 비율(Hard%)이 29.4%로 커리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림1> 앤드루스의 타구 히트맵 2016(좌)/2017(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림1>이다. 굳이 세부기록을 찾지 않아도 그가 작년에 비해 더 강한 타구를, 더 멀리 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홈런 개수 외에도 그가 현재 기록하고 있는 절대장타율(.171), OPS(.816) 역시 커리어 최대치라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충분해 보이는 대기록 달성
여기서 의문점 하나, 과연 이 페이스가 후반기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답은 ‘YES’일 확률이 높다. 우선 앤드루스는 커리어 전/후반기의 활약이 거의 유사하다(전 .272 / 후 .280). 하지만 범위를 조금 좁혀보자면 그는 2015년부터 두 시즌 연속으로 후반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5년에는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3푼 이상, 작년에도 2푼 이상 높은 타율을 기록하였다. 그가 전반기의 활약을 뛰어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전반기만큼은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몇 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할까? 큰 부상과 같은 악재가 없는 이상 그에게 20홈런이라는 목표는 그리 먼 고지가 아닐 것이다. 역대 텍사스의 유격수 중 단일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유격수는 6명, 그 중 20도루 이상을 기록한 유격수는 토비 해라(1975, 77년)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과연 그가 40년만의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미 그는 전반기를 20도루로 마친 상태이다. 그가 시즌 20홈런 달성과 함께 후반기에 도루를 10개만 더 기록해도 팀 창단 최초로 20홈런-30도루 유격수가 될 수 있다.
<표3> 역대 텍사스 20+홈런 유격수. 어쩌면 앤드루스는 A-ROD도 못해 본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텍사스의 미래다
데뷔 한지 어느덧 9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텍사스의 미래를 짊어져야 한다. 그의 자리를 장기적으로 대체해주리라 예상했던 특급 유망주 주릭슨 프로파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도 그가 유격수 자리를 유지할 확률이 높다. 텍사스에게는 앞으로의 5년이 그를 포함해 추신수, 애드리안 벨트레, 콜 해멀스 등의 준수한 자원을 데리고 우승을 노려야 할 마지막 적기일 것이다. 과연 그가 언제까지 이렇게 뜨거운 모습을 보여 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지난 2년간의 변화는 미래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이번 시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2년 전 수비 실책으로 팀을 우승과 멀어지게 한 주역이 과연 우승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출처: Fangraphs, Baseball Sav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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