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me ①편: 중간계투 명예의 전당


2020년 현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235명의 선수가 헌액돼 있다. 명예의 전당 헌액은 메이저리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150년에 달하는 메이저리그의 역사 동안 각 포지션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여럿 배출되었는데, 포지션별로 입회자 수에 약간의 편차가 존재한다. 빅리그 로스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투수가 83명으로 가장 많고, 전통적으로 우수한 선수가 많았던 유격수와 우익수에는 각각 26명의 입회자가 존재한다. 한편 3루수는 17명으로 상대적으로 수효가 적으며, 역사가 짧은 지명타자는 명예의 전당 입회자를 2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위의 명예의 전당 입회자 통계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상하리만치 과소대표되고 있는 세부 포지션이 몇 개 있음을 알 수 있다. 83명의 명예의 전당 투수 중 불펜투수는 8명인데, 이들은 모두 주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따라서 순수 중간계투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선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또한 유격수, 2루수, 3루수 등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의 빈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유틸리티 야수들 역시 명예의 전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입회자 중 스탠 뮤지얼(1루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과 크렉 비지오(포수, 2루수, 중견수, 좌익수)처럼 커리어 동안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던 선수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유틸리티 야수는 아니었다.

중간계투와 유틸리티 야수 중 명예의 전당 입회자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대부분 선발투수나 주전 야수 경쟁에서 밀려나 해당 포지션에 자리를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계투와 유틸리티 야수 중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주연보다는 조연이, 필드 위보다는 벤치 위(혹은 불펜)가 어울리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도 역사는 만들어진다. 중간계투와 유틸리티 야수는 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The Fame 시리즈는 이들의 공헌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가상의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입회자들을 선정해 보았다. 이 글은 그중의 1편,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간계투들에 대한 글이다.


선정 기준

중간계투라는 역할을 정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우수한 불펜투수는 대부분 셋업맨과 마무리를 오가기 마련이며, 선발로 뛰다가 커리어 황혼기에 중간계투로 전향한 경우도 여럿 존재한다.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나누는 가장 정확한 기준은 몇 회에 주로 등판하는지일 것이다. 선발투수는 1~5회의 소화 이닝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마무리투수의 경우 대부분 9회에 등판한다. 한편 중간계투들은 6회부터 8회 사이에 차례로 등판하여 상대 타선을 틀어막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중간계투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은 커리어 통산 소화 이닝 중 6~8회의 이닝 비율이 50%가 넘는 투수로 한정했다. 또한 실제 명예의 전당과 동일하게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을 활약하고, 은퇴한 지 5년 이상이 지난 선수만을 대상으로 했다.

위 자격을 갖춘 중간계투들 중에서 어떤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지를 결정하기 위해 심사 기준을 정했다. 선수의 통산 기여도를 보여주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여러 통계 사이트 중에서도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WAR이 불펜투수의 공헌도를 가장 정확히 측정한다고 판단해 bWAR(레퍼런스 승리기여도)을 사용했다. 통산 bWAR로 순위를 매긴 다음에는 한 선수의 통산 bWAR과 가장 좋은 7시즌의 bWAR을 평균 낸 값인 JAWS(Jaffe WAR Score system)를 참고해 전성기의 임팩트가 컸던 선수를 추려냈다. 이 외에도 WPA(승리 확률 기여도), 홀드 수,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 등을 종합해 중간계투 명예의 전당 입회자들을 선정했다. 그 영광의 이름들을 한 명씩 소개한다.


1. 제시 오로스코(좌투우타/1957년 출생/MLB 경력 1979년~2003년)

통산 성적: 1252경기 1295.1이닝 87승 80패 185홀드 144세이브 ERA 3.16 FIP 3.61 bWAR 23.2 JAWS 20.4

주요 업적: 올스타 선정(1983, 1984), 월드시리즈 우승(1986, 1988), 아메리칸리그 출장 경기 1위(1995),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3위(1983), 통산 출장 경기 1위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20년 넘게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놀란 라이언은 불 같은 강속구로 두 세대에 걸쳐 마운드를 지배했고, 그렉 매덕스는 자로 잰 듯한 제구력으로 타자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었다. 역사상 최고의 너클볼러 필 니크로처럼 자신만의 마구를 던진 투수도 있다. 제시 오로스코에게는 라이언의 강속구도, 매덕스의 컨트롤도, 니크로의 너클볼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이 주신 건강함, 그리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는 적응력이 있었다.  

전성기였던 20대 중반까지 오로스코는 당시로서는 강속구였던 시속 91~93마일의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하는 투수였다. 삽십 세를 전후해 패스트볼 구속을 잃은 후에는 슬라이더의 사용 비중을 늘렸고, 선수 생활 말년에는 스플리터로써 경쟁력을 유지했다. 보직도 데뷔 초기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다가 83시즌부터 완전히 불펜에 자리를 잡았고, 마무리로써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좌완 원포인트로 전향했다. 그렇게 오로스코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깔을 바꿔가며 25년간 1252경기에 출장했다.

1252경기.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록인가. 2위인 마이크 스탠튼(1178경기)의 기록과는 74경기 차이가 나고 NPB 최고 기록(1002경기)보다는 250경기, KBO 최고 기록(901경기)보다는 351경기가 많다.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도 빅리그에서 1252경기에 출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타자 룰’의 도입으로 좌완 원포인트가 사실상 멸종한 지금, 오로스코의 1252경기 출장은 깨질 수 없는 기록으로 남았다.

마운드 위의 ‘할아버지 투수’는 올해로 만 63세,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다. 2020년 메이저리그에서는 그가 뛰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야구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오로스코는 육십줄이 넘은 지금 마운드로 복귀한다 해도, 괴력의 젊은 타자들을 아웃시킬 방법을 찾아낼 것만 같다. 세월을 거스르는 적응력, 그것이 바로 오로스코가 야구 팬들에게 남긴 인상이고, 유산이다.


2. 마크 아이크혼(우투우타/1960년 출생/MLB 경력 1982년~1996년)

통산 성적: 563경기 885.2이닝 48승 43패 75홀드 32세이브 ERA 3.00 FIP 3.18 bWAR 19.1 JAWS 19.5

주요 업적: 월드시리즈 우승(1992, 1993), 아메리칸리그 홀드 1위(1991),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6위(1986)


마크 아이크혼은 1979년 1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된 촉망받는 선발 유망주였다. 빅리그 데뷔도 만 21세로 상당히 이른 편이었다(1982년). 그러나 어깨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큰 무대의 맛을 잠깐 본 뒤 다시 마이너에 내려가 사이드암 투수로 스스로를 개조한 아이크혼은, 4년 만에 빅리그에 복귀해서 불펜투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다음은 그의 86시즌 성적이다.


69경기 157이닝 14승 6패 7홀드 10세이브(4블론) 166탈삼진 ERA 1.72 bWAR 7.3


69경기에 출장해 157이닝을 던졌으니, 등판할 때마다 약 2와 3분의 1이닝을 던진 셈이다. 그렇다고 그가 소위 ‘맙업맨(크게 뒤지거나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경기 후반 남은 이닝을 막는 투수)’의 역할을 한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해 아이크혼의 평균 gmLI(불펜투수가 등판한 시점의 레버리지)는 1.67이었는데, 이는 평균적인 마무리투수가 기록하는 수치와 비슷하다. 아이크혼은 팀이 요구할 때면 언제나 마운드에 올랐고, 매번 자신의 몫 이상을 해냈다. 그의 독특한 투구폼은 특히 우타자들을 상대로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해 우타자들은 아이크혼을 상대로 타/출/장 .135/.186/.165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아이크혼의 혹사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많은 89경기에 출장하며 127.2이닝을 투구했다. 혹사 후유증으로 아이크혼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콤보는 점점 날카로움을 잃어갔다. 88시즌이 끝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다분히 플루크가 섞인 91시즌을 제외하면 전성기 때의 모습을 재현하지 못했다.

아이크혼을 버렸던 블루제이스는 92시즌 중반에 트레이드로 다시 그를 데려오게 된다. 그의 역할은 더 이상 전천후 소방수가 아닌 패전처리에 가까웠지만, 블루제이스의 92~93시즌 월드시리즈 2연패에 나름대로 기여를 해낸다. 이후 부상과 노화로 인해 저니맨 신세가 된 아이크혼은 96시즌 이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불꽃은 00시즌이었는데, 블루제이스와 다시 한번 계약을 맺은 뒤 마이너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21.2이닝 ERA 0.83). 그러나 블루제이스는 끝내 팀의 레전드 투수를 콜업하지 않았다.

아이크혼의 86시즌 이후 순수 불펜투수로서 15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블루제이스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아이크혼의 투혼을 중간계투 명예의 전당 헌액으로 기념해 본다.


3. 아서 로즈(좌투좌타/1969년 출생/MLB 경력 1991년~2011년)

통산 성적: 900경기 1187.2이닝 87승 70패 254홀드 33세이브 ERA 4.08 FIP 3.84 bWAR 15.1 JAWS 14.6

주요 업적: 올스타 선정(2010), 월드시리즈 우승(2011), 아메리칸리그 홀드 1위(2001), 통산 홀드 2위, 통산 출장 경기 2위


메이저리그에서 홀드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었다. 그 전에는 중간계투들도 구원승과 세이브 개수, 평균자책점 등으로만 기여도를 평가받았다. 홀드의 등장으로 중간계투들도 독자적인 평가 기준을 갖게 되었지만, 2020년 현재까지도 홀드는 메이저리그 공식 시상 부문이 아니다. 그 때문에 통산 홀드 기록 보유자들을 알고 있는 팬은 많지 않다. 통산 세이브 1, 2위인 마리아노 리베라와 트레버 호프만이 각각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최고의 불펜투수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은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통산 홀드 1위는 집계 시기를 언제부터로 잡는지에 따라 아서 로즈와 마이크 스탠튼으로 갈린다. 메이저리그에서 홀드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부터의 기록만 인정하면 로즈가 231개로 1위, 그 이전의 기록들까지 소급해서 집계하면 스탠튼이 266개로 1위다. 이 글은 공헌도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중간계투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스탠튼은 2007년 미첼 리포트에서 성장 호르몬을 복용한 것으로 지목되며 모든 명예를 잃고 말았다. 따라서 금지약물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선수 가운데서는 로즈가 통산 홀드 1위라고 할 수 있다.

로즈는 88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91시즌에 선발로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지만 95시즌까지 거의 매년 5개가 넘는 BB/9을 기록하는 등 컨트롤 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96시즌에 오리올스는 로즈를 불펜투수로 전향시킨다. 이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해 로즈는 오리올스 불펜의 ‘믿을맨’으로 거듭난다.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한 2001년이었는데, 71경기에서 68이닝을 투구하며 31홀드/3세이브/ERA 1.72/bWAR 2.5를 기록했다.

로즈는 여러 팀을 떠돌아다니며 셋업맨으로 활약을 이어가다가 2007년 왼팔 인대 파열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37세였기에 로즈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로즈는 2008년, 수술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마운드에 돌아왔다. 비록 역할은 좌완 원포인트로 제한됐지만, 그는 2010년까지 해마다 20개 이상의 홀드와 2점대의 ERA를 기록하며 노장 투혼을 발휘했다. 로즈의 커리어는 2010년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정과 2011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2011년 포스트시즌에 나선 로즈는 8경기 동안 실점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8경기에서 아웃시킨 타자의 수는 정확히 8명이었다.


4. 마이크 팀린(우투우타/1966년 출생/MLB 경력 1991년~2008년)

통산 성적: 1058경기 1204.1이닝 75승 73패 172홀드 141세이브 ERA 3.56 FIP 3.94 bWAR 19.0 JAWS 16.3

주요 업적: 월드시리즈 우승(1992, 1993, 2004, 2007), 아메리칸리그 출장 경기 1위(2005)


야구 선수들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 FA 대박을 터뜨리는 것? 누구도 깨지 못할 기록을 세우는 것?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현실적이고도 가치 있는 목표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서 캐치볼을 하며 미래에 월드시리즈에서 플레이하는 꿈을 꾸고 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타자로 불리는 배리 본즈는 끝내 우승반지 없이 은퇴했는데, 많은 평론가들은 이 점 때문에 GOAT(Greatest of All Time) 리스트에서 베이브 루스를 본즈보다 앞순위에 놓는다. 현역 선수 중 투타에서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클레이튼 커쇼와 마이크 트라웃도 우승반지를 얻기 전에는 GOAT 논쟁에 끼워줄 수 없다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는 종종 제기된다. 그만큼 메이저리그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이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여기 한 명의 불펜투수가 있다. 18년의 긴 메이저리그 경력을 보냈지만 올스타에 한 번도 선정되지 못했고, 통산 세이브 개수는 141개로 역대 100위 안에 겨우 드는 수준이다.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한 표도 얻지 못한 채 1년 만에 탈락했다. 그러나 이 선수는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네 번이나 이뤘다. 인생의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선수의 이름은 바로 마이크 팀린이다.

팀린은 위에서 언급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92~93시즌 연속 우승 멤버 출신이다. 이후 10년 동안 여러 팀을 떠돌았지만 우승을 하지 못하다가, 2003년 새롭게 둥지를 튼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두 개의 우승 반지를 더 따냈다(2004, 2007). 냉정하게 보면 네 번의 월드시리즈 중 팀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만한 시리즈는 한 번도 없었다. 월드시리즈 통산 ERA도 4.00으로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러나 팀린은 중요한 순간마다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본인의 몫을 해냈다. 월드시리즈 통산 0.49의 WPA를 기록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팀린은 우완 불펜투수로서는 평범한 구속과 구위를 가진 선수였다. 그의 긴 커리어 동안 9개가 넘는 K/9을 기록한 시즌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팀린은 다양한 변화구와 좋은 커맨드, 땅볼유도능력으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렇게 오래 살아남다 보면, 중간중간 월드시리즈 우승과 같은 행운도 따르기 마련이다.


5. 마이클 잭슨(우투우타/1964년 출생/MLB 경력 1986년~2004년)

통산 성적: 1005경기 1188.1이닝 62승 67패 179홀드 142세이브 ERA 3.42 FIP 3.96 bWAR 18.9 JAWS 16.3

주요 업적: 내셔널리그 홀드 1위(1993), 내셔널리그 출장 경기 1위(1993)


작고한 팝의 황제와 똑같은 이름과 성을 가진 이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저평가된 투수 중 한 명이다. 18.9의 통산 bWAR은 아이크혼, 팀린 등과 함께 역대 중간계투 중 2위권에 해당하며, WPA로 따졌을 때는 이 글에서 언급된 모든 중간계투는 물론이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마무리투수인 데니스 에커슬리와 롤리 핑거스도 뛰어넘는다. 그러나 2010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잭슨이 얻은 표는 0표였다. ‘Underrated’라는 영어 단어는 잭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잭슨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거나 셋업맨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꾸준한 선수였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17시즌 동안 음수의 bWAR을 기록한 해가 딱 한 시즌뿐(1990)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토록 꾸준했던 잭슨이 커리어 내내 저평가를 당한 것은 그가 주로 활약했던 팀들이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상대적으로 스몰마켓에 속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스몰마켓 팀들은 언론에의 노출이 적고, 따라서 팬들의 관심 역시 덜할 수밖에 없다.

잭슨의 커리어 하이라이트는 신시내티 레즈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3대0으로 셧아웃시킨 1995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였다. 그 시리즈에서 잭슨은 레즈의 셋업맨으로 세 경기에 모두 등판해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특히 3차전에서는 팀이 7대1로 앞선 7회말 2사 만루에서 직접 3타점 2루타를 날리며 레즈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커리어 내내 안타가 5개, 타점이 1개밖에 없었던 잭슨이기에 이날의 2루타는 더욱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즈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4대0 패배를 당하고 만다.

우리는 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하지만 많은 월급을 받는 것 못지않게 기분 좋은 일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야구 선수들 역시 돈과 함께 명예를 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세이버메트릭스를 활용한 선수 평가 기법이 더욱 발전하여 잭슨처럼 본인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가 줄어들기를 빈다.


+입회가 유력한 현역 선수

1. 대런 오데이(우투우타/1982년 출생/MLB 경력 2008년~현재)

통산 성적: 589경기 564이닝 37승 19패 154홀드 21세이브 ERA 2.56 FIP 3.46 bWAR 16.5 JAWS 15.9

주요 업적: 올스타 선정(2015)


때는 2005년, 플로리다 대학의 사이드암 투수인 대런 오데이는 진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의과대학 입학 시험인 MCAT에 합격한 것이다. 불확실한 야구 경력을 계속 추구해야 할지, 아니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성형의의 길을 걸어야 할지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오데이는 한 번도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적이 없었다. 2005년 당시 오데이는 대학팀에서 마무리투수로 뛰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작은 체구에 괴상한 동작으로 공을 뿌리는 그에게 구단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오데이는 스스로와 약속을 맺었다. MCAT 점수의 유효기간인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면 야구를 깨끗이 포기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하기로 한 것이다. 3년의 시간이 흘러 2008년 3월 31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8회말 에인절스의 마운드에는 긴장된 표정의 신인 투수가 서 있었다. 그날 이후 8회는 영원히 오데이의 무대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이드암 투수가 타자를 공략하는 방법은 스트라이크 존 낮은 곳에 싱커나 브레이킹 볼을 던져 땅볼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오데이도 낮은 존을 자주 활용한다. 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공은 싱커나 브레이킹 볼이 아니라 포심이다. 오데이는 면도날 같은 제구력으로 타자의 가슴 높이에 끈질기게 포심을 집어넣어 스윙을 이끌어낸다. 최대 시속 90마일밖에 되지 않는 구속으로 통산 9.29개의 K/9과 2.5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은, 여느 사이드암 투수와 다른 그의 어프로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커맨드 덕분이었다.


2. 타일러 클리파드(우투우타/1985년 출생/MLB 경력 2007년~현재)

통산 성적: 757경기 823이닝 53승 46패 218홀드 68세이브 ERA 3.13 FIP 3.86 bWAR 15.4 JAWS 13.8

주요 업적: 올스타 선정(2011, 2014), 내셔널리그 홀드 1위(2014), WBC 우승(2017), 통산 홀드 3위


1999년 보로스 맥크라켄이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은 사람들이 야구를 보는 시각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이론 하나를 발표한다. ‘투수는 인플레이 볼이 안타가 될 확률(BABIP)을 통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BABIP 이론은 투수의 성적에서 운과 실력을 분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BABIP가 세상에 나오고 8년 뒤에 데뷔한 타일러 클리파드라는 투수를 알았다면 맥크라켄은 그의 이론을 대폭 수정해야 했을 것이다. 클리파드가 2007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기록한 BABIP는 0.238(정규시즌 0.239, 포스트시즌 0.200)로,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 평균과 비교해 6푼 가까이 낮다. 투수의 BABIP이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약 900이닝이 필요하다고 한다. 클리파드는 지금껏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합쳐서 835.2이닝을 투구했다. 클리파드가 2016년 팬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암시했듯, 10년 이상 꾸준히 통계적 아웃라이어에 든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이 아니다.

클리파드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BABIP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 최상위권의 수직 무브먼트를 가진 포심을 다양한 변화구와 조화시켜 정타 허용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공을 배트 중심에 잘 맞혀주지 않는 대신 헛스윙 유도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때문에 클리파드가 거쳐간 10개의 팀 중 그를 마무리로 기용한 팀은 많지 않았다(통산 68세이브). 하지만 그는 선발투수와 마무리투수 간의 다리를 218차례나 성공적으로 놓으며 토니 왓슨과 함께 현역 선수 중 홀드 1위에 올라 있다. 만 3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주고 있는 클리파드이기에 은퇴할 즈음엔 마이크 스탠튼의 266홀드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구공작소 나상인 칼럼니스트

참조= 베이스볼 레퍼런스, 팬그래프, 위키피디아, 미국야구연구학회

사진 출처= marinersblog.mlblogs.com, flickr.com, amazingavenue.com, bluebirdbanter.com, vivaelbirdos.com, bosoxinjection.com, fromthecorn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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