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양키스가 돌아왔다 – 더욱 젊게, 더욱 강하게

(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원영)

팬그래프 시즌 예상 성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5위 (79승 83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 (91승 71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홍기훈] 76승 86패를 기록한 1992년 이후 무려 24년 연속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양키스. 올해야말로 그 기록이 중단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4년간 가을야구라고는 2015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 한 판이 전부였고, 작년에도 84승(78패)을 거두긴 했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4위를 기록했다. 역시 199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에는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 부임 이후 처음으로 “셀러”를 선언하며 팀의 주축 선수들을 유망주와 바꿨다. 덕분에 팜 시스템은 리그 1, 2위를 다투게 되었지만 양키스가 예전처럼 우승권에서 경쟁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마사히로 다나카 외에는 믿음직한 선발투수도 부족했다. CC 사바시아는 전성기가 한참 지났고 마이클 피네다는 언제나처럼 갖고 있는 스터프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팀의 최고 유망주 루이스 세베리노는 최악의 한 해를 보낸 후였다. 5선발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2017시즌을 앞두고 양키스는 트레이드로 떠나보냈던 아롤디스 채프먼을 다시 FA로 영입했으며, 지명타자 자리는 맷 홀리데이로 채웠다. 어깨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했던 그렉 버드의 백업을 위해 내셔널리그 홈런왕 출신의 크리스 카터도 데려왔다. 마무리 투수에 5년간 8600만달러라는 큰 돈을 쓴 점, 지난 2년간 홀리데이는 상당 기간을 결장하며 내리막길의 생산력을 보였던 점, 카터에게는 홈런 파워 빼고는 기대할 것이 거의 없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크게 의미 있는 영입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개리 산체스를 주전 포수로 쓸 요량에 브라이언 맥캔도 트레이드로 떠나보냈다. 작년 산체스는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20개의 홈런을 때리며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풀시즌을 무사히 치러 낼 수 있을지 물음표가 있었다. 실제로 산체스는 시즌 초 이두근에 부상을 입으면서 한 달 가까이 결장했다. 주전 유격수 디디 그레고리우스도 WBC에 출전했다가 입은 어깨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시범경기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양키스를 높이 평가하는 전문가는 드물었다.

하지만 양키스는 시즌 초반 8연승을 달리면서 모두를 놀라게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가 복귀한 첫 경기인 4월 2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8대1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산체스의 자리는 오스틴 로마인이, 그레고리우스의 빈 자리는 로날드 토레예스가 완벽히 메워주었다. 기대하지 않던 다른 선수들도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활약을 보인 것은 연일 맹타를 날리는 애런 저지였다. 델린 베탄시스는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점의 자책점도 허용하지 않았고 채프먼이 잠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을 때는 마무리 역할까지 해줬다.

겁 없는 젊은 선수들의 활약에 고무된 양키스는 칼을 뽑아 들었다. 탑 유망주 블레이크 러더포드를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넘기며 데이빗 로벗슨, 타미 케인리, 토드 프레이저를 데려왔다. 로벗슨과 케인리는 불펜의 든든한 축이 되었고 뉴저지 출신으로 양키팬으로 자란 프레이저는 베테랑다운 리더십을 보이면서 좋은 팀 분위기 형성을 주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트레이드를 하나 더 했는데, 유망주 셋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주고 선발 투수 소니 그레이를 데려왔다. 이들의 활약이 더해져 양키스는 결국 팬그래프의 예상보다 12승이나 더 추가된 91승을 기록했다. 동부지구 2위를 차지했고 2년만에 가을 무대도 밟았다. 90승을 기록한 것도 2012년 이후 처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역전승을 거뒀으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디비전 시리즈도 0승 2패의 탈락 위기에서 세 경기를 연거푸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휴스턴과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패배해 시즌을 마감했지만, 양키스의 2017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훌륭한 시즌이었다. 애런 저지, 개리 산체스를 비롯한 뉴페이스의 등장은 성적뿐 아니라 인기면에서도 큰 성공을 불러왔다.

 

최고의 선수 – 애런 저지

84타석 42삼진, 0.179/0.263/0.345의 타율/출루율/장타율. 저지의 2016년 성적이다. 첫 타석에서 커다란 홈런을 때려내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너무 많은 삼진이 문제였다. 사람들의 기대도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시즌 AAA에서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던 그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막전부터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찼고, 역사에 남을 만한 멋진 시즌을 보냈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스윙, 그에 걸맞은 타구속도와 비거리로 세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그는 결국 52개의 홈런을 치며 1987년 마크 맥과이어(당시 오클랜드)가 세운 신인 최다홈런 기록(49개)도 경신했다. 올스타전에는 내로라하는 강타자들 사이에서 3번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홈런더비에서는 팬들에게 엄청난 비거리의 타구들을 선사하며 우승했다. 후반기 잠시 부침을 겪었지만 9월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 OPS는 1을 훌쩍 넘겼으며 8이 넘는 WAR도 기록했다.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MVP 투표에선 호세 알투베(휴스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홈런더비에서 저지가 날린 홈런 타구 (출처: 베이스볼 서번트)

 

저지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파워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뛰어난 것은 볼을 골라내는 능력이다. 그는 18.7%의 BB%를 기록했는데 올 시즌 규정타석 이상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 중 신시내티 레즈의 조이 보토에 이어 2위다. 출루율과 타율의 차이도 0.138로 세인트루이스의 맷 카펜터에 이어 2위. 그가 존 밖의 공을 때려내는 데에는 별로 신통치 않다는 점, 그리고 그와 같은 강타자들에겐 투수들이 좋은 공을 잘 주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트라이크에만 스윙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요소다. 공을 볼 줄 안다는 것은 슬럼프를 이겨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8월 0.185의 타율로 극심한 부진을 겪을 때에도 출루율은 0.353였다. 우익수 수비에서도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몸집이 워낙 크기에 수비를 잘 못할 것이라는 오해도 받는데, 그는 준수한 주력을 갖고 있으며 강력한 어깨로 정확한 송구를 한다. 특히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홈런성 타구를 걷어내는 등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 만한 플레이를 여럿 남겼다.

 

프란시스코 린도어(클리블랜드)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저지 (출처: AP Photo/Kathy Willens)

 

내년 저지가 올해만한 성적을 또 올리긴 힘들 것이다. 워낙 역대급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맥과이어도 루키 시즌에 49개의 홈런과 더불어 0.618의 장타율을 기록했지만 다음 시즌엔 32개의 홈런과 0.478의 장타율로 떨어졌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볼을 골라내는 능력만 유지한다면 팀 타선의 구심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특히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영입은 상당한 동기부여와 함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기대된다.

저지의 눈부신 활약에 가렸지만 베스트 플레이어로 꼽힐만한 성적을 기록한 다른 선수들도 있다. 산체스는 팀내 2위인 33개의 홈런을 치며 4.4의 WAR를 올렸으며, 그레고리우스도 시즌을 DL에서 시작했지만 25홈런을 기록하면서 데릭 지터가 갖고 있던 팀내 유격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도 고비마다 알토란 같은 홈런을 선물했다. 투수진에서는 세베리노의 활약이 단연 발군이었다. 그는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루키 조던 몽고메리도 기대 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실망스러웠던 선수 – 마사히로 다나카

178.1이닝, 이닝보다 많은 탈삼진, 13승 12패. 얼핏 보기엔 준수하지만 다나카의 이름값에는 분명 못 미치는 성적이다. 4.74의 평균자책점, 2.07의 BB/9, 1.77의 HR/9는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지난 4년 중 최악이다. 올 시즌 전 사이영상 후보로도 꼽히던 그는 개막전부터 2.2이닝 동안 7실점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5월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섯 경기에 등판한 5월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8.42.

시즌 내내 그를 괴롭힌 가장 큰 문제점은 피홈런이었다. 호투하던 경기에서도 뜬금포를 맞았으며, 예년만 못한 커맨드로 늘어난 볼넷 때문에 그 홈런들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5월 14일 휴스턴과의 경기에서는 1.2이닝 4피홈런 8실점하고 강판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플라이볼 타구 중 홈런이 되는 비율(HR/FB)은 투수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본다. 땅볼이나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투수의 능력에 달렸지만 플라이볼을 계속 허용하면서 그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다. 우측 외야까지의 거리가 짧은 양키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는 그이지만 21.2%의 HR/FB는 운이 정말 없었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보정한 xFIP은 예년과 비슷한 3.44다.

다행히 그의 후반기는 훨씬 좋은 모습이었다. 7월 28일 탬파베이전에서는 삼진 14개를 잡으며 8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9월 29일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토론토전에서는 7이닝 동안 개인 최다인 삼진 15개를 잡으며 역시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세 경기에 등판해 20이닝동안 단 2실점만 허용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는 7이닝 무실점으로 1대 0의 승리를 이끌었다.

다나카는 옵트아웃 권리를 포기하고 양키스에 남았다. 의외의 선택이다. 올 시즌 부진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발투수고 나이도 29세로 적당하다. 그가 FA 시장의 문을 두드릴 경우 3년간 6700만달러의 잔여계약보다는 더 큰 계약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2년전 다나카와 같은 118의 평균조정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던 조던 짐머맨은 지금의 그보다 당시 한 살이 많았음에도 5년 1억1000만 달러의 계약을 따냈었다. 에이스로 성장한 세베리노와 역시 에이스급 포텐셜을 가진 그레이가 있는 양키 선발진에서 다나카는 더 이상 1선발의 부담을 지지 않아도 좋다. 남은 3년간 한결 편한 마음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가장 중요했던 순간 – 와일드카드 결정전, 1회초 1사 2, 3루

2년 만의 가을무대를 맞아 1년 내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준 세베리노가 선발 등판했다. 브라이언 도지어가 선두타자 홈런을 때렸다.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았지만, 볼넷 이후 에디 로사리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3대0. 이어 나온 두 타자도 잘 맞은 안타와 2루타를 때려냈다. 양키 스타디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양키스의 승리확률은 18% 근방까지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 지라디는 용단을 내린다. 어차피 오늘 지면 시즌도 끝난다. 세베리노를 내리고 채드 그린을 올렸다.

 

삼진, 삼진.

 

올시즌 69이닝 103개의 삼진을 잡아낸 그린은 그 특기를 발휘하며 기대치에 100% 부응했고, 양키스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어 1회말에서 브렛 가드너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고 저지 또한 풀카운트에서 중전 안타를 뽑아냈다. 1사 1,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그레고리우스의 빨랫줄 같은 타구는 담장에 꽂혔다. 이 타구도 풀카운트에서 나왔다. 결국 경기는 8대 4로 미네소타를 꺾은 양키스의 승리.

개인적으로 이 경기가 올 시즌 양키스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경기라고 생각한다. 이날 8.2이닝 단 한 점만을 내주며 삼진 13개를 잡아낸 철벽 불펜은 시즌 내내 팀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레고리우스 외에도 가드너와 저지는 홈런을 기록했는데 시즌 내내 양키스 타선의 홈런포는 위기마다 팀을 몇 번이고 구해냈다. 3대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한 타석, 한 타석 침착하게 풀카운트까지 몰고 간 것도 칭찬할 만하다.

이 역전승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수년간 양키스의 에이스 노릇을 해야 할 세베리노는 부진을 털어낼 기회를 얻었고 실제로 다음 등판에서 7이닝을 투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세베리노를 비롯한 여러 젊은 선수들에게 이 승리는 포스트시즌 경험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도 첫 두 경기를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으나 포기하지 않고 역스윕에 성공했으며, 월드시리즈 우승팀 휴스턴도 7차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총평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양키스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바쁜 겨울을 보내며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10년간 양키스를 이끈 조 지라디 감독과 결별한 후 새 사령탑에는 애런 분을 선임했다. 분은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 연장 11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5년 연장계약을 맺은 캐시먼 단장은 올 시즌 59개의 홈런을 치며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지안카를로 스탠튼을 트레이드로 영입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베테랑 사바시아와도 1천만달러의 금액으로 단년계약을 맺었다. 그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재계약이 유력했었다. 특히 올 시즌 팀이 진 다음 경기에 그가 등판했을 때 양키스는 10승 1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양키스를 2018년 우승후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면이 보인다. 저지가 내년에도 올해 같은 활약을 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산체스의 수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감독 경험이 없는 분의 용병술도 아직은 미지수다. 스탠튼 트레이드의 반대급부로 주전 2루수 스탈린 카스트로를 마이애미 말린스에 내주면서 생긴 빈 자리는 특급 유망주 글라이버 토레스가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그가 빅리그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외야수 교통정리도 필요하고 선발 투수 하나 정도는 더 추가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양키스는 한층 더 흥미로운 팀이 되었다. 저지-스탠튼-산체스의 중심타선은 양키스를 상대하는 투수들에겐 악몽과도 같다. 올해 양키스는 241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역대 최다 기록은 1997년 시애틀 매리너스가 기록한 264개이다. 2018년의 양키스가 단일시즌 최다 팀홈런 기록을 깰 수 있을까? 팬들은 2018년 개막전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기록 출처: Baseball-Reference,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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