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하는 구승민

구승민도 2019시즌 롯데의 추락은 막지 못했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순재준] 롯데 자이언츠는 2018시즌 7위를 기록했다. 순위는 낮았을지 몰라도 리그 상위권으로 평가받은 타선과 젊은 투수들이 주축이 된 마운드는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2019시즌 롯데는 바닥 없이 추락했다.

공인구 조정과 함께 타선의 파괴력은 약해졌고, 18시즌에 이미  더 나빠지기 어려워 보였던 포수진은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 현재와 미래가 모두 찬란하다고 생각했던 마운드는 노경은의 이탈과 주축 선수들의 부진 부상으로 무너졌다. 18시즌 롯데 불펜의 주축이었던 오현택과 이명우는 사실상 경기를 뛰지 못했고, 가장 믿을 수 있던 마무리 손승락도 무너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은 바로 구승민의 부진이었다.

2018, 2019시즌 구승민 투구성적

18시즌 구승민은 64경기에 등판, 73.2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에서 마당쇠로 활약했다. 지금까지 롯데에는 이렇다 할 우완 강속구 불펜이 없었기 때문에 구승민의 등장은 더욱 의미 있었다.

KBO는 2019시즌을 앞두고 공인구 반발력을 조정했고, 그 결과 많은 투수들이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구승민도 바뀐 공인구의 효과를 받아 성적이 더 좋아질 수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18시즌과 비교해 제구 난조를 보이고 타자에게 쉽게 공략당하면서 피안타율과 9이닝당 볼넷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공인구 효과를 본 부분도 있었다. 18시즌과 비교해서 9이닝당 피홈런과 장타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즉, 공인구와는 별개의 문제로  부진에 빠진 것이다. 구승민은 무엇이 바뀐 것일까?


투구폼 수정

시간은 2018시즌을 마치고 롯데가 마무리 캠프를 떠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롯데 선수단은 양상문 감독과 상견례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양상문 감독은 김원중과 구승민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다.

구승민은 “감독님께서 투구폼 쪽에서 ‘공을 던지기 직전 상체와 하체가 많이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저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상체와 하체가 가라앉으면 자연스럽게 팔 각도도 낮아질 것이고 타자들에게 공도 잘 보일 것이다. 그런 부분을 좀 더 수정할 것이다. 비시즌 동안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구승민은 2018년에 상당히 깔끔하고 부드러운 투구폼을 지니고 있었다. 독특한 점이라면 스트라이드 과정에서 축 다리의 무릎을 굽히고, 무게중심이 낮은 자세로 신체가 전진했다는 것이다. 양상문 전 감독은 아마 구승민의 이런 모습을 보고 몸이 많이 가라앉는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구승민은  조언을 받아들이며 변화를 선택했다.

2018시즌 구승민의 투구폼 / 출처 : SPOTV
2019시즌 구승민의 투구폼 / 출처 : SPOTV

2018시즌의 구승민은 디딤발을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하지만 19시즌엔 디딤발을 더 높이 들면서 무릎이 몸의 안쪽을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뒤이어 설명하는 구승민의 오른발 움직임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왼쪽부터) 2018, 2019시즌 와인드업에서 디딤발(왼발)을 든 모습. / 사진 = SPOTV 중계화면 캡쳐

2018시즌 구승민의 투구폼을 보면 디딤발의 발바닥은 거의 보이지 않고, 디딤발 발바닥의 옆선이 지면과 평행에 가깝다. 이에 반해 19시즌의 투구폼은 신발의 바닥 면이 더 많이 보이며, 디딤발의 옆선이 지면과 각을 이루며 더 대각선으로 있다.

이는 2019시즌의 구승민이 더 높게 디딤발을 들고, 무릎을 수직이 아닌 몸 안쪽을 향해 들어 올려 몸을 안쪽으로 비틀면서 공을 던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에 힘을 싣기 위해 골반을 비틀어 회전을 만들고 하체를 더 많이 활용하려 한 것이다. 이 변화를 통해 구승민은 구위의 향상과 더불어 높은 위치에서부터 힘을 모아 몸이 가라앉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구승민의 도전이 2019년도의 투구 밸런스를 흔들리게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렇게 몸을 좀 더 비틀어 투구하는 자세를 ‘트위스트 딜리버리’라고 한다. 트위스트 딜리버리와 높은 키킹은 투수가 더 많은 힘을 모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높은 키킹과 마찬가지로 필요 이상의 트위스트 딜리버리는 필요 이상의 힘을 제공하여 투구 밸런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한 트위스트 딜리버리는 달라진 투구 분포로 나타나기도 한다. 투수가 트위스트 딜러버리로 인한 회전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우투수의 기준에서 투구 후 몸이 1루 쪽으로 과하게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투구 로케이션이 좌편향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구승민의 투구 로케이션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다음은 2018, 2019시즌 구승민의 포심, 슬라이더 히트맵이다.

(왼쪽 위에서부터)2018, 2019시즌 구승민 포심, 슬라이터 로케이션

18시즌 구승민은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을 주로 공략했고, 그 중에서도 낮은 좌우 코너에 집중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투구폼에 변화를 준 19시즌의 포심 로케이션은 18시즌과 상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8시즌 구승민이 가장 빈번하게 공략했던 우측 하단 코스의 빈도가 줄어든 것이다. 거기에 낮은 코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18시즌과 달리 전체적으로 높은 코스의 구사 비율이 올라갔다. 왼쪽 낮은 코스에선 스트라이크 존 안보다 바깥쪽으로 더 많이 형성되고, 탄착군 또한 상당히 넓어졌다. 전체적으로 투구 로케이션이 우타자 바깥쪽, 그리고 높은 쪽을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눈에 띄는 점은 구승민의 투구 방식 변화다. 대부분의 투수는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투구폼을 크게 가져가 힘을 모으는 와인드업으로 투구하고,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세트 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으로 간결하게 투구한다. 하지만 2018년 구승민은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볼카운트나 구종에 얽매이지 않고 와인드업과 슬라이드 스텝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왔다.

한마디로 구승민은 타자를 두 가지 타이밍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투수의 역할이라면, 2가지 타이밍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구승민은 타자를 상대하는 최고의 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투구폼의 변화와 함께 구승민의 투구 템포 또한 단조로워졌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두 가지 템포로 투구했던 18시즌과는 달리 19시즌엔 힘을 모으는 방식을 바꾸면서 와인드업으로만 투구했다. 투구폼의 변화가 타자를 다양한 타이밍으로 상대할 수 있던 구승만의 장점을 무디게 만든 것이다.


2019년 구승민의 부진에는 투구폼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구승민은 2018 시즌 많은 공을 던지며 피로가 누적되었고, 시즌 중반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부진에는 좋지 않은 몸 상태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2018시즌과 비교해 투구 로케이션이 좌편향되고 제구가 흔들리게 된 것에는 투구폼 변화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상문 감독이 구승민에게 건넨 조언은 합리적이었다. 투수의 구속과 제구력은 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다. 하지만 투수에게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투구폼이 있고, 자신의 장점을 무마시키는 변화는 불필요할 수도 있다.

구승민은 한 발 더 앞서 나가기 위해서 변화를 택했지만 이는 좋은 결과를 선사하지 못했다. 구승민에게 2019년은 내년을 준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분명히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번 겨울을 다시 준비해서 2020년의 구승민이 다시 롯데 불펜의 중심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에디터= 야구공작소 박기태, 오연우

기록 출처= 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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